
금호강변에서 만나는 백 년의 역사
대구 동구의 동촌유원지와 망우당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숲길 사이에 자리한 붉은 벽돌 2층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922년에 건립된 국가등록문화유산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이다.
금호강변의 활기찬 풍경과 공원의 차분한 숲길이 이어지는 지점에서 조양회관은 단정한 외관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주변을 산책하던 시민들도 붉은 벽돌과 중앙 현관, 지붕 위 박공이 어우러진 건물 앞에서 걸음을 늦춘다. 이곳은 단순한 근대 건축물이 아니라 대구와 경북의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다.
| 시설명 |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
|---|---|
| 주소 | 대구 동구 효동로2길 94 |
| 운영시간 |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
| 관람료 | 무료 |
| 운영 문의 | 조양회관 053-951-0815 |
조선의 아침 해를 품은 이름
조양은 한자로 아침 조와 볕 양을 쓴다. 조선의 아침 해가 비치는 곳이라는 뜻에는 식민지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청년들에게 희망의 빛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1920년대 상당수 근대 건축물이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세워졌던 것과 달리 조양회관은 기획과 설계, 시공을 한국인의 힘으로 완성했다. 독립운동가 동암 서상일 선생은 개인 토지 500평과 사재를 내놓았고, 3·8 만세운동을 이끈 백남채 지사는 직접 생산한 붉은 벽돌을 공급했다. 설계는 대구 출신 건축가 윤학기 선생이 맡았다.
건물을 이루는 붉은 벽돌은 조양회관의 외관을 결정하는 재료이면서 건립에 참여한 이들의 뜻을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힘을 모아 세운 이 회관은 청년 계몽과 교육, 문화 활동이 이어지는 기반이 됐다.
영남 항일운동의 중심지
조양회관은 처음부터 현재의 망우당공원에 있었던 건물이 아니다. 원래 대구 중구 달성공원 앞에 세워졌으며 영남 지역 청년들의 계몽운동과 야학,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활동, 각종 문화 집회가 펼쳐졌다. 여러 사람이 모여 배우고 시대의 현실을 논의했던 영남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일제 말기에는 총독부에 징발돼 도서관과 일본군 병영으로 사용됐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에는 군 병영으로 쓰였고, 이후 원화여자고등학교 교무실로도 이용됐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용도가 달라졌지만 건물은 격동의 시간을 견뎌냈다.
1980년대 학교 이전 과정에서는 철거 위기를 맞았다. 대구 시민과 광복회의 노력으로 보존의 길이 열렸고, 1984년 현재의 동촌유원지 망우당공원으로 옮겨졌다. 건물을 해체한 뒤 원형에 맞춰 이전하고 복원하면서 조양회관의 역사적 가치도 이어질 수 있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가 만난 외관
조양회관은 서양의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신고전주의 절충형 건축물이다. 건물 중앙에는 아치형으로 돌출된 현관인 포치가 배치돼 있고, 지붕 위에는 삼각형 박공인 페디먼트가 놓여 있다.
중앙부를 기준으로 정돈된 형태와 붉은 벽돌의 차분한 색감이 어우러져 안정적이고 단아한 인상을 준다. 공원의 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건물 전면은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 균형 잡힌 구조와 절제된 기품을 보여준다. 서양 건축 양식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인 건축가의 손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조양회관의 의미는 더욱 뚜렷하다.
독립운동의 기록을 품은 1층
조양회관 1층에는 항일독립운동 사료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대구와 경북 독립운동가들의 유품, 독립운동 사료와 옥중 서신, 안창호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어록 등을 무료로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은 인물과 기록을 통해 지역 독립운동의 흐름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물건과 글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교과서의 문장으로 접했던 역사가 구체적인 기록으로 다가온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유품 앞에서 관람객들이 발걸음을 늦추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은 조양회관의 역사적 의미를 널리 나누는 기반이 된다. 가족 단위 방문객은 물론 청소년이 대구 지역 독립운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현장 체험 공간으로도 의미가 있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기념 서명포
1층 전시관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자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남긴 임시정부 요인 환국기념 서명포다. 백범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광복을 맞은 뒤 귀국하기 전 중경여사에 모여 함께 남긴 기록이다.
빛바랜 천에는 붓으로 쓴 한자와 한글 글귀, 임시정부 요인들의 자필 서명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유지자사경성이라는 글귀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전한다. 건국필성이라는 네 글자에는 나라를 반드시 세우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이 서명포는 27년에 걸친 타국 생활을 마치고 되찾은 조국으로 향하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감격과 자주독립 국가 건설을 향한 염원을 보여준다. 한 사람씩 남긴 필체가 한 폭의 천에 모여 있어 광복 직후의 결연한 뜻을 생생하게 전한다.
기둥 없이 넓게 열린 2층 강당
조양회관 2층 강당은 내부에 기둥을 두지 않고 백두산 낙엽송 대들보를 이용한 트러스 구조로 설계됐다. 수백 명이 모일 수 있도록 넓은 집회 공간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인 건축가 윤학기는 당시 서양의 합리적인 구조 기술을 건물에 접목했다. 기둥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강당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목조 트러스는 조양회관의 건축학적 가치를 보여주는 핵심 요소다. 나무의 묵직한 질감이 드러난 천장과 오래된 마루는 이곳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강당에서는 육당 최남선의 조선사 강의와 동경 유학생들의 시국 강연이 열렸다.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으며 대구청년총회와 대구노동총회 등 여러 민중 집회도 이어졌다. 밤에는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야학과 강습회가 열렸다.
이 강당은 강연과 집회,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밝히던 영남 민족운동의 현장이었다. 넓은 공간과 목조 구조는 건축적 특징을 넘어 당시 조양회관이 맡았던 사회적 역할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동촌유원지 산책과 함께 보는 문화유산
조양회관은 금호강을 따라 펼쳐진 동촌유원지와 망우당공원 안에 자리한다. 산책로의 자연 풍경과 근대 문화유산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공원을 걷다가 역사 공간으로 동선을 이어가기 좋다.
붉은 벽돌 한 장과 오래된 마루, 천장의 목조 트러스에는 조양회관이 지나온 시간이 남아 있다. 건물 외관을 살펴본 뒤 1층 전시실의 사료와 유품을 보고, 2층 강당의 구조와 역할을 이해하면 이곳이 영남 항일운동의 중심지로 불린 이유를 차례로 확인할 수 있다.
조양회관은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보존 노력으로 철거 위기를 넘기고 현재의 자리에서 역사를 전하고 있다. 동촌유원지의 산책길에 조양회관을 더하면 대구의 자연뿐 아니라 지역이 지켜낸 독립운동의 기억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