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말 못 하던 내가 작은 토론 습관을 바꿔봤더니

회의에서 말 못 하던 내가 작은 토론 습관을 바꿔봤더니

말은 하고 싶은데 타이밍을 놓쳤다

얼마 전 동네 모임에서 쓰레기 분리수거함 위치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속으로만 열심히 반대하고 있었다. 이유도 있었다. 지금 위치가 엘리베이터랑 가까워서 어르신들이 쓰기 편하고, 밤에 버리러 나갈 때도 덜 불편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이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으니 제 차례가 오기 전에 분위기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게 꼭 큰 회의나 학교 발표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가족끼리 여행지를 고를 때, 회사에서 점심 메뉴를 정할 때, 친구들과 돈을 어떻게 나눌지 이야기할 때도 비슷했다. 토론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일상에서는 ‘서로 생각이 다를 때 어떻게 말하느냐’에 더 가깝다.

그래서 한동안 일부러 작은 토론 상황을 관찰했다. 누가 말을 잘 끌고 가는지, 왜 어떤 사람의 말은 부드럽게 받아들여지는지, 왜 어떤 의견은 맞는 말인데도 분위기를 식게 만드는지 봤다. 솔직히 말투 하나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토론을 싸움처럼 만들던 말버릇

제가 제일 먼저 고친 건 첫마디였다. 예전에는 반대 의견이 있으면 바로 “그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방어 자세가 생긴다. 특히 3명 이상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 그렇다. 누군가의 의견을 바로 꺾는 느낌이 나면, 그다음부터는 내용보다 자존심이 앞서기 쉽다.

대신 “그 방향도 이해되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요”처럼 시작해봤다. 신기하게도 같은 반대인데 분위기가 덜 딱딱해졌다. 이건 말장난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였다. 상대 의견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내 걱정을 얹는 방식이라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제가 자주 쓰게 된 문장들

  • “그렇게 보면 장점은 확실히 있네요.”
  • “다만 실제로 해보면 이 부분이 불편할 수 있어요.”
  • “제가 겪은 경우에는 조금 달랐어요.”
  • “이건 찬반보다 기준을 먼저 맞추면 좋겠어요.”

특히 마지막 문장이 꽤 유용했다. 토론이 꼬일 때는 의견이 달라서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서로 다를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분리수거함 위치를 바꾸는 문제도 누군가는 ‘냄새’를 기준으로 보고, 누군가는 ‘이동 거리’를 기준으로 봤다. 이걸 먼저 확인하지 않으면 각자 맞는 말만 하다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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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토론은 자료보다 사례가 더 잘 먹혔다

처음에는 숫자나 근거를 많이 준비해야 말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주제에서는 자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일상 토론에서는 너무 딱딱한 자료보다 가까운 사례가 더 빨리 통했다. “전에 1층에 뒀을 때 여름에 냄새 민원이 두 번 있었어요” 같은 말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그림이 그려진다.

제가 써보니 가장 좋은 조합은 ‘짧은 경험 하나 + 예상되는 불편 하나 + 대안 하나’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번에 위치를 옮겼을 때 밤에 어두워서 불편하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이번에도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옮긴다면 조명 있는 쪽으로만 후보를 좁히면 어떨까요.” 이 정도면 반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해결하려는 사람처럼 들린다.

사실 토론에서 제일 피곤한 사람은 “안 돼요”만 반복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그건 어렵지만, 이 정도면 가능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의견이 달라도 덜 부담스럽다. 저도 이 차이를 알고 나서부터는 반대 의견을 낼 때 꼭 작은 대안을 붙이려고 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흐름을 잡는 사람이 유리했다

관찰해보니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제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간중간 흐름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나온 의견이 두 가지네요”, “비용 문제랑 편의 문제를 따로 봐야겠어요”처럼 대화의 상태를 짚어주는 사람이다.

이 방식은 가족 대화에서도 꽤 잘 먹혔다. 주말에 어디 갈지 정할 때도 각자 원하는 장소만 말하면 금방 피곤해진다. 그럴 때 “지금은 멀리 가자는 쪽이랑 가까운 데서 쉬자는 쪽으로 나뉘네요. 이동 시간을 1시간 안쪽으로 제한하면 선택지가 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대화가 훨씬 빨라진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흐름을 잡으면 내 의견을 조금 늦게 말해도 존재감이 생긴다는 점이다. 큰소리를 내지 않아도 대화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말을 잘 못 끼어드는 사람에게는 이 방법이 특히 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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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 편해지는 3가지 준비

제가 실제로 해보면서 가장 효과를 본 준비는 거창하지 않았다. 종이에 길게 쓰는 것도 아니고, 발표 자료를 만드는 것도 아니었다. 딱 3가지만 머릿속에 챙기면 훨씬 덜 흔들렸다.

  • 내가 원하는 방향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 상대가 걱정할 만한 지점을 하나 예상한다.
  • 완전한 찬성이나 반대 말고 조정안을 하나 준비한다.

예를 들어 “분리수거함은 지금 위치를 유지하되, 냄새가 심한 여름에는 뚜껑 있는 수거함으로 바꾸자”처럼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반대’가 아니라 ‘불편을 줄이면서 유지’라는 방향이 생긴다. 토론은 이길 사람을 가르는 자리라기보다, 서로 감당할 수 있는 선택지를 찾는 과정에 가까웠다.

물론 매번 매끄럽게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자기 말만 하고, 어떤 자리는 이미 답이 정해진 것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말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면 최소한 내 의견이 묻히는 일은 줄어든다. 요즘은 토론이라는 말이 예전만큼 부담스럽지 않다. 결국 일상 속 토론은 말솜씨보다 태도와 순서의 문제에 더 가까웠고, 그걸 알고 나니 작은 자리에서도 훨씬 덜 긴장하게 됐다.

회의에서 말 못 하던 내가 작은 토론 습관을 바꿔봤더니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