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사(부산)
청량사(부산)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도로 29
낙동강 7백리 끄트머리 명지동(鳴旨洞). 바로 이곳에 황금 닭이 알을 품는 듯 평안히 둥지를 이루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청량사가 있다. 풍수리지학적으로 명당중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이 땅은 실은 1백50여 년 전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할머니’를 모신 사당으로부터 연유된다. 수많은 전통사찰들이 천년고찰 또는 옛 폐사지를 근간으로 사력을 이어 가는데 반해 김해 명지동의 청량사는 마을 사당에서부터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겠다.우리 조상들은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조상신이나 수호신에게 마을사람들의 무병과 평온무사를 비는 제사를 올려왔다. 대체로 마을 입구에 있는 제단이나 길지를 골랐으며 우리민족의 신앙정신이 깃든 당산나무가 우뚝 서 있기도 하다. 바로 이 명지동 사취등 마을의 당산나무로 추정되는 250년 수령의 포구나무(팽나무) 여러그루가 소나무 숲과 함께 사찰 경내를 지키고 있고 이 나무
옆에 있는 당산각에서 해마다 12월 초하루부터 3일간 명지마을 사람들이 모여 성대한 당산제를 올리며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청량사가 위치한 명지동 사취등 마을은 이전에는 지도상에도 없던 마을이다. 지금의 청량사터 약 3백여평만이 바다속에 떠 있는 작은 섬이었던 이곳이 1864, 1865년 즉 갑자 을축(甲子 乙丑) 양년에 일어난 대홍수와 엄청난 산사태로 인해 일대 대변혁을 가져왔는데 다름아닌 대동, 대저, 명지라는 새 땅의 탄생이다.
바다였던 땅이 육지가 되고 현재의 김해평야를 이루었으나 청량사 부근 사취등(사취등)마을은 명지동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였고 그대로 낙동강의 모래가 홍수에 의해 쌓여져 모래톱으로 생긴 마을이라 물도 귀하고, 범람도 잦아 마을주민들의 민심은 자연 신앙적 기원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이 사취등 마을에는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마다 어딘가에서 변(變)을 예고하는 북소리와 목탁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 소리가 훗날 마을사람들의 불심을 자극, 1917년 부처님을 모시게 됐다고 하니 청량사의 창건은 사취등 사람들의 지극한 서원과 자연적 특성이 한데 어우러진 신앙적 결집임이 틀림없다.300여 평의 작은 섬, 외로운 포구나무 몇 그루가 1백년 후 생성된 작은 마을의 당산나무 사당이 되고, 1917년 장유암 교당이란 이름으로 창건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기까지 청량사는 숱한 세월을 자연의 힘과 맞서온 사취등 마을 사람들의 원찰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국에서 불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부산 강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 청량사. 새로운 개창의 기운으로 현재 대작불사가 한창인 청량사는 허물어진 전각과 당산각을 새로이 일으켜 세우면서 지역민들과 함께 전국최고의 불심을 드날리기 위한 만반의 준비로 여념이 없다.
* 청량사의 창건배경 및 역사 *
청량사의 창건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석가모니 후불탱화 뒷면에 상세히 기록된 명문의 내용을 미루어 1917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산각이 있던 자리에 인근 김해의 불모산 장유암(佛母山 長遊菴) 주지 금도(錦嶋)스님이 0장 교당(0張 敎堂)을 세우고 3년 후인 1920년 석가모니 후불탱을 모셨다고 한다. 또한 고산자 김정호 선생(1800~1864)이 30여 년간을 전국 각지를 두루 답사하고 백두산을 17번이나 올라가면서 만들었다는‘대동여지도’에도 이같은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있다. ‘낙동강 하구 쪽에 가면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그곳에서 마을 주민들이 지극정성으로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라는 대동여지도의 기록은 장유암 주지 금도스님이 장유암 교당을 세우기 전, 이곳이 당산할매를 모신 사당이었다는 구전의 설득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청랸사는 초창 당시 장유암 교당으로 불리다가 이후 연호사(蓮湖寺)로 개칭되었는데 이는 홍수때마다 사취등 일대가 물에 잠기어도 유독 사찰만은 홀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연꽃이 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을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1959년 근세 한국불교의 한 기둥이었던 홍경선사(弘經禪師)가 주석하면서 홍수피해가 많은 장마철에 맑은 날씨를 염원하는 마을사람들의 기원을 담아 61년 범어사 말사로 등록하면서‘청량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 청량사 관람 포인트 *
사찰 전체가 창건 이후 최대의 중창불사를 벌이고 있는 중(2005년 현재)이라 다소 어수선하긴 하지만 청량사의 창건배경이라 할 수 있는 당산각과 포구나무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개축한 극락보전 옆으로 자리한 당산각 내부에는 당산할머니 초상이 놓여 있는데 최근작품이기는 하나 오랜 세월 사취등 마을을 지켜온 수호자로서의 근엄하고 온화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 바로 인근 청량사 경내 중심에 역시 우리민족의 신앙으로 숭배되어온 포구나무 세 그루를 만날 수 있다. 250여 년이라는 오랜 수령답게 튼튼하고도 우람한 위용을 뽐내듯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https://www.visitbusan.net/k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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