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대각석
청룡대각석
경상남도 창원시 가주동
청룡대는 부산과 경계를 이루는 가주동의 도로 아래에 있는 작은 바위이다. 이곳은 신라말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낚시를 즐기던 곳이라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 당시에는 조수가 드나들었다고 하나 지금은 뭍으로 변해버린 곳이다.2.4m×1.4m 정도의 화강암계 자연암석의 동남부에 60cm×35cm의 각자부를 마련 하여 음각으로『청룡대 치원서』라 새겼는데 최치원의 친필로 추정되며 후손들에 의해서 청룡대비가 건립되어 있다. 최치원은 신라 사량부(경주)의 육두품으로 수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한 최씨 가문에서 문성왕7년(857년)에 태어나 12살에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18살에 되던해 (874년) 예부시랑 배찬이주시로 관장한 제과에 급제하여 20살 약관의 나이에 외국인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라고 할수 있는 한 고을을 다스리는 선주의 율수 현위에 제수되었으나 2년만에 현위의 자리를 내놓고 물러났다.
종사관으로 있을 때 찬술한 모든 글들 (표表,장壯,서書,계啓,격문檄文)이 『계원필경』에 들어 있다. 진성여왕 8년(894년)나라가 혼란하고 백성이 도탄에 허덕이자 시정의 수습책인 시무책 10여조를 올리자 왕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찬의 벼슬에 올랐다.그러나 신라는 이미 기우는 달과 같은 국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상과 좌절을 털어 버리고 40세의 나이에 명산대해를 주유하다 지리산에 은거하였다고 한다.우리고장에는 언제 선생이 다녀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청룡대 외에 또 한 곳에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으니『웅천읍지』의 산천 조(條)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강선대가 그 곳이다.강선대는 선생이 배를 타고 달놀이를 즐겼던 곳이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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