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 일원
경주 대릉원 일원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9
* 경주 노동리 고분군
경주 중심부인 노동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고신라시대 무덤들로, 봉황대/식리총/금령총등이 포함되어 있다. 봉황대는 높이 22m, 지름 82m로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무덤이다. 봉황대 남쪽에 있는 식리총은 봉분 높이 6.5m, 지름 30m로 1924년에 조사한 결과 덧널(곽)을 설치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임이 밝혀졌다. 내부에서는 귀고리, 유리옥의 가슴장식과 은제허리띠, 은팔찌,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쌍룡 고리자루큰칼, 말갖춤(마구), 옷칠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관이나 금동관이 없는 대신 금동제신발 (식리)이 발견되었는데, 문양이 독특하고 매우 우수하여 이 무덤의 이름을 식리총이라 하였다. 봉황대의 남쪽에 있는 금령총 역시 1924년에 조사된 무덤으로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바닥에 냇돌과 자갈을 깐 높이 4∼5m, 지름 약 18∼20m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금관, 금제귀고리, 금팔찌, 금제허리띠, 동제신발, 철제솥, 옷칠그릇, 유리그릇,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 중 배모양 토기와 기마인물 토기가 특이하다. 이 무덤은 규모가 작으며, 금관과 장신구의 크기가 작고 순장의 흔적이 보여 신라 왕자의 무덤으로 추측된다. 식리총과 금령총은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봉황대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경주 노서리 고분군
경주시 서북쪽 노서동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현재 1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남아있다. 그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무덤은 노동동 고분군의 봉황대와 대칭을이루어 서봉황대라 불린다. 노서리 고분군의 내부구조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금관총/서봉총/호우총/은령총 무덤들은 신라 때의 것으로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 덧널(곽)을 설치하고 냇돌과 자갈로 쌓은 돌무지덧널무덤이다. 쌍상총·마총·우총 등은 내부에 깬돌로 사각형의 널방(석실)을 만들고 널길(연도)을 둔 굴식돌방무덤으로 통일신라 때의 것이다. 금관총은 1921년에 조사되었는데,금관과 금제허리띠를 비롯한 각종 호화로운 금공예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서봉총은 표주박 모양 쌍무덤의 북쪽 무덤으로, 봉황장식이 달린 금관이 출토되었다. 또한 연대를 새긴 은으로 된 뚜껑이 있는 그릇(은합)이 출토되어 5세기 전후에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은령총과 쌍무덤을 이루는 호우총은 광복 후 최초의 유적발굴로 광개토대왕을 기념하여 을묘년(451)에 만들었다는 글자가 쓰여진 동합이 출토되었다. 쌍상총·마총·우총 등은 통일신라 초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대부분 도굴되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쌍상총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이, 마총에서는 말뼈와 안장틀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노서리 고분군은 노동리 고분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돌무지 덧널무덤과 전기 돌방무덤이 밀집해 두 종류의 무덤 교체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경주지역의 무덤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시청 남쪽 건너편 일대의 고분군이며 미추왕릉(味鄒王陵)을 비롯한 약 250기(基)의 고분이 있으며 고분공원이 조성되었다. 1973년에는 천마총을 발굴하여 금관 및 천마를 채색으로 그린 백화수피장니(白樺樹皮障泥)가 나와 신라시대회화로서는 유일최고(唯一最古)의 것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였는데, 지금은 내부를 들어가 볼 수 있게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또한 고분중에 가장 큰 황남대총 98호은 1973∼75년 사이에 발굴 후 복원하였는데 통일신라 이전에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소형석곽분(小形石槨墳)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 경주황오리고분군
경주시내에 있는 평지 무덤들 가운데 동남쪽 황오동 일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이다. 일제시대에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70여기의 크고 작은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10여기의 무덤이 흩어져 남아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건물을 지을 때 자주 무덤 흔적이나 유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땅 속에 많은 무덤들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된 무덤은 1호분·4호분·5호분·16호분·33호분 등으로, 신라의 일반적인 무덤형식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판 뒤 덧널(곽)을 설치하고 냇돌과 자갈을 덮고 흙으로 쌓은 것이다. 황오동고분군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무덤들보다 규모가 작고, 출토유물도 적은편이다. 그러나 돌무지덧널무덤의 전 단계인 덧널무덤(토광목곽묘)를 비롯 다양한 무덤형식들이 조사되어 경주 무덤들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 경주인왕리고분군
경주시내 평지 무덤들의 동쪽 인왕동 일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이다. 일제시대의 자료에 의하면 10여 기의 무덤들이 모여 있었는데, 황남동이나 노동동·노서동 일대의 무덤들에 비해 규모가 휠씬 작았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도굴되었고, 땅 위에 봉분이 남은 것은 1기에 불과하다. 19호·20호·149호 무덤들이 발굴되었는데, 모두 신라의 일반적인 형태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이란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 덧널(곽)을 설치하고 냇돌과 자갈을 덮은 후 흙을 쌓은 것을 말한다. 조사에 의하면 지하에서는 독무덤(옹관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등 작은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금동관·금귀고리·은제허리띠·유리구슬 목걸이·굽은 옥 등의 장신구와 말갖춤(마구)·투겁창·은제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등 무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신라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연혁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안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 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전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天馬塚)과 황남대총(皇南大塚) 등이 있다. 1973년에 발굴조사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로 금관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당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말다래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천마총'이라 이름하여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조사된 황남대총은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무덤으로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과 남자의 뼈 일부 및 많은 유물이 나왔다. 북쪽 무덤에서도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있는 은제 허리띠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남쪽 무덤의 주인은 남자, 북쪽 무덤의 주인은 여자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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