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우금치 전적
공주 우금치 전적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 전적지는 공주시 금학동,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길목인 견준산 기슭 우금치 일대로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최후 격전지이다. 이곳에는 1973년 동학혁명군 위령탑 건립위원회에서 동학혁명군 전적비를 세워 당시를 기리고 있다. 전봉준이 지휘하는 농민군은 1894년 9월 재봉기 이후, 논산에 머물며 공주를 첫번째 주요 공격 목표로 설정하는 작전을 세웠다. 당시의 공주는 충청도 감영이 소재하는 중부 지역의 거점으로서 전략상 공주를 확보하는 것은 향후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또 우금치는 공주의 치소에서 부여 방면으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이며, 일단 우금치를 장악하면 공주 점령의 기선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약 3만을 헤아린 농민군은 일본군 200명을 포함한 약 2,500명의 관군과 1894년 10월 23일부터 이인, 효포, 웅치에서의 싸움에 이어 11월 8일 드디어 우금치에서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그러나 수적으로 우세한 농민군은 고개 위로 진격하다가 연합군의 일제 사격에 겹겹이 쓰러져, 고개로의 진격 후퇴를 무려 40~50차례를 거듭한 끝에 거의 전멸하였다. 이 날 우금치 전투에 대해서 전봉준도 "2차 접전 후 1만여 명의 군병을 점고하니 남은 자는 3천 여명을 넘지 않았으며, 그 후 다시 2차로 접전한 후 점고하니 5백여명을 넘지 아니하였다." 하여 장렬한 싸움이었음을 회상하였다. 이 싸움 후, 재기를 노린 전봉준은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처형됨으로써 1년 동안 전개된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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