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서강학당
김기서강학당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사동길 40-160
* 후진양성을 위해 지어진 학당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로 원래 이 자리에는 전불사(典佛寺)의 불당이 있었다. 1548년(명종 3) 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었던 김기서(金麒瑞)가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해오다 거소를 겸하여 강학당을 건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 전불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강학당은 조선초기의 문신인 김기서가 기묘사화(1519년)에 연루되어 두문사제하면서 그의 선친묘역에 시묘막을 짓고 거처를 정하고 이와 함께 후학강론을 펼치기 위해 지어진 학당이다. 성종 10년에 고창읍 호동리에서 태어난 김기서는 광산인으로 아버지는 성종때 군기시부정을 지낸 명원(命元)이며, 어머니는 숙인(淑人) 의창황씨(義昌黃氏)로 자는 시견(時見) 호는 돈목재(敦睦齋)이다. 김기서는 효심이 깊어 상중에는 죽을 먹고 시묘를 하였으며 복을 마친 뒤에도 그 여막에서 지내자 그 효행을 높이 본받아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을 시묘동이라 하고 그 집을 돈목재라고 했다.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라가 어지러워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정암 조광조에게 학문을 배웠고 학포 양팽손과 더불어 경의를 강론했다. 기묘사화 이후 고향인 고창에서 은거하며 후학을 육성하였으며 그 때 건립된 돈목재 강학당이 바로 고창 고수면 전불산 기슭의 김기서 강학당이다. 그는 정암 조광조의 문인으로 중종 14년(1517)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신진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이곳에서 두문불출하고 후진양성에 뜻을 품고 이곳 전불사로 들어와 본 강학당을 짓고 후진양성을 위해 온갖 정열을 기울였다.
* 특이한 형태의 상량문
명종 3년(1548년) 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학당의 건축사적 특징은 이조 중기 이후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상량문을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거나 상량머리에 구멍을 파서 기름종이에 써넣고 봉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전불사의 김기서 강학당의 상량은 문안자체도 희귀 할 뿐 아니라 상량문이 직접 보일 수 있도록 측면에다 써놓은 것이 특징이다.
* 소박한 모습의 조선 전기건물 양식
건물은 정면 5칸 전퇴의 4량 단층팔각지붕으로 길이 12m측면4.7m 기둥높이는 2,37m로 되어 있으며 배기마루 대청의 중당 2칸과 좌협실 2칸, 우협실 1칸으로 되어 있는 이조 초기의 소박하고도 중후한 건축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밖에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팔작으로 되어 있으며 우협실 천정에는 계단을 올린 다락으로 처리되었으며 퇴마루 위 퇴량과 창방사이에는 2개의 소로가 받쳐 있다. 소박한 모습의 조선 전기 건물이다. 지난 81년 4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김기서 강학당은 지난 94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강당, 대문, 담장 등을 보수하고 체계적인 보존에 들어갔다.
http://tour.jb.go.kr/index.do
http://culture.goch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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