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반남 고분군
나주 반남 고분군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의 동쪽에 위치한 자미산(紫薇山)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분포되어 있는 12기의 삼국시대(三國時代) 고분이다. 1917~1918년과 1938~1939년 동안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이래 현재까지 독무덤 ·돌방무덤[石室墳] 등 12기의 고분이 발굴되거나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4·8·9호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5·6·10·11·12호는 인멸되었다. 4호분은 1978년에 도로공사 과정에서 노출되어 전남대에 재직 중이던 최몽룡교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7세기대의 백제(百濟) 석실분(石室墳)으로 밝혀졌고 석실은 전남대학교에 이전 복원되었다. 3호분과 9호분은 1918년 일본인 야쓰이(谷井濟一)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8호분에서는 4기의 옹관(甕棺)과 단지·뚜껑·대접·유리옥 등이 출토되었다. 9호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큰칼·구리팔찌·유리구슬·토기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안리고분군의 분구 형태는 원형·방대형·사다리꼴 등이고, 규모는 길이 11m 내외(2호분)에서 47m 내외(9호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마한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 *
지금까지 1·2·3·4·7·8·9호분이 정비복원되었는데, 최근에 복원된 1·2·3호분에서는 분구 주변에서 모두 도랑이 확인됨에 따라 대안리고분군을 비롯한 반남고분군(潘南古墳群)의 다른 고분들도 대부분 도랑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분구 주변의 도랑은 묘역구분·배수·채토 등 다양한 용도에서 만들어졌다. 내부 매장시설은 4호분과 같이 석실인 경우도 있지만, 나머지 고분들은 여러 개의 옹관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목관(木棺)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된다. 대안리 고분군에는 4호분과 같이 7세기대의 백제 석실분이 섞여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고분들은 백제의 영산강유역 진출 이전에 자리잡고 있던 마한(馬韓) 토착 세력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중심연대는 반남고분군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4세기말 ~ 5세기초로 판단된다.
* 유물상으로 주목되는 4호분과 9호분 *
12기의 고분 중 매장 주체부의 구조나 유물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4호분과 9호분이다. 4호분은 파괴된 돌방무덤으로 부여 지역에서 보이는 백제 말기 형식인 판축조평천장식으로 되어 있다. 수습된 껴묻거리에 회색 연질의 긴목병, 적갈색 바리모양토기, 은장도자루, 관고리 및 널못 등이 있는데 이 중 긴목병은 출토예가 많지 않은 희귀한 것이다. 9호분은 그 규모가 동서 44.3m, 남북 34.94m, 높이 8.41~7.35m에 이르는 대형 방대형고분이다. 분구 정상의 평탄면에 9기의 독이 매장되어 있어서 12기의 독이 매장된 신촌리 9호분과 아울러 반남면 고분군 중 최대 고분에 속한다. 또, 분구의 규모가 장대할 뿐만 아니라, 껴묻거리가 많고 다양한 점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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