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심사(부산)
묘심사(부산)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671
묘심사는 부산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변에 위치한다. 묘심사 뒷산인 수정산 정상으로 동구와 부산진구의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엄광산과 접해 있고 남으로는 구봉산으로 이어진다. 부산일보 본사와 경남여고, 부산고등학교 등 이름난 명문학교가 산복도로 아래 큰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고 그 길 건너 부산진역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심을 가로 지르는 수정동 산복도로에 서면 부산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가까이엔 충혼탑이 있는 대청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오르면 비로소 부산이 한 눈에 보인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부산항 일대를 내려다 보기 위해 흔히들 용두산 공원 타워를 찾지만 그 높은 용두산 타워마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 있다.
부산항을 시야에 가득 담아낸 후 바다로부터 눈을 돌려 산 쪽을 바라보면 사람 사는 집들이 성냥곽 마냥 오밀조밀 연대를 이룬 광경을 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산 많고 사람 많은 부산의 대표적인 산동네 동구 수정동이다. 여타지역과 달리 산복도로 주거문화가 발달한 부산에서도 수정동 산복도로 주변은 서민생활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으로 자자하니 그 서민들의 삶과 함께 해온 묘심사의 역사도 그리 넉넉하지 만은 않은 듯하다. 묘심사는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 국권침탈 이후 개창된 탓에 오랜 세월 일본 스님에 의해 사격이 운영 유지되다가 해방 이후 우여곡절 끝에 한 기독교인에 팔리는 비극을 맞게 됐다. 이를 보다 못한 몇몇 신도들에 의해 묘심사의 성보가 대성사 즉 현재의 묘심사로 옮겨지게 된 것이 1960년대 무렵이었으니 절명의 순간을 슬기롭게 대처한 신도들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하겠다.
당시 신도들은 서구 토성동에 있던 절에서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 그리고 범종과 종각 등 많은 성보를 가지고 왔는데 이렇게 묘심사가 그 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부처님 도량을 지키고자 한 신도들의 큰 원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전에서 이르기를 부처님 도량과 불법을 수호하고 불상을 조성한 이들의 공덕은 수미산보다도 높다고 했다. 또한, 헤아릴 수 없는 복을 누리고 그 이름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성불을 이루리라 했으니 대성사와 묘심사 이 두 사찰의 운명을 이어간 공덕을 말로써 어찌 다 표현할 수가 있을까 싶다.
* 묘심사의 유래 *
묘심사는 1888년 창건되었으나 묘심사가 아닌 대성사란 사명으로 불렸다. 원래 대처승 사찰이었으나 1960년대 어느날 묘심사란 사명으로 재창건 된 이후 오늘에 이른다. 묘심사는 원래 이곳이 아닌 서구 토성동에 있던 사찰로서 1912년 임제종 포교당으로 개창된 사찰이다. 전해오는 문헌에 따라 현재의 보수동, 부민동, 초량 등으로 그 위치를 옮기고 있음이 보이지만 토성동이 마지막 정착지임을 알 수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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