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제천)
백련사(제천)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명암로5길 414
*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사찰, 백련사 *
백련사(白蓮寺)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감악산(紺岳山)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무염당·보응문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9년 중건되었다. 내부에 석가모니불 좌상을 모시며,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다. 불상은 조선시대 유물로 목조이며 높이 75cm, 어깨 너비 45cm이다. 이밖에 신중탱화와 나한을 그린 벽화 4점이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62년에 세워졌다.
“마음은 넓히면 허공도 삼키지만 좁히면 바늘끝 꽂기에도 모자라요”, “相에 집착 진리를 모르면 얼굴 맞대도 천리같이 멀고, 마음비워 도를 알면 천지가 한집입니다” 백련사를 40년간 지키며 수도하시는 노승 담월스님의 말씀이다. 스님은 손수 절터 닦고 돌을 나르며, 신도들의 시주금을 극구 마다하며 억척스럽게 지금의 백련사를 중창하였다. 담월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님을 청빈하고 수행에 철저한 스님이라고 말한다. 온갖 병고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지금도 좌선과 경전공부를 놓지 않을 정도로 용맹정진이 몸에 배여 있다.
신도들에게는 자상하지만 공부하는 스님들에게는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 상좌가 15명이나 되지만 모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여겨 아예 발걸음도 못하게 할 정도다. 한국전쟁 후 가람이 모두 소실된 천년 고찰을 지금의 정갈한 가람으로 만들기 까지 담월스님의 불사와 노력은 노승의 굽은 허리와 상처투성인 손에서 세월의 노고를 찾을 수 있다. 빈터에서 지금의 가람을 이루었듯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하얀 연꽃의 출현은 천 년전 의상이 보았던 불심의 종지가 지금 담월대선사에게 전달된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자주빛으로 물든 감악산을 찾을 때 하얀 백련처럼 정갈한 백련사를 찾아 가보자. 경내엔 언제나 가람을 가꾸는 노승의 손길과 음성을 느낄 수 있다.
* 백련사의 유래와 걸어온 길 *
662년(신라 문무왕 2) 의상이 백련지 동쪽에 백련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지었으나, 지은 지 30년만인 692년(효소왕 1) 큰 비가 내려 산사태로 매몰되었다. 이것을 819년(헌덕왕 11) 무착이 옛터에 중창하였다. 이후의 연혁은 1588년(조선 선조 21)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쓴 치악산백련사중창기문에 자세히 전한다. 이에 따르면 1008∼1016년 사이에 연화암이라는 초가가 있었으며, 1116년(고려 예종 11) 하의라는 도인이 이 초가에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1358년(고려 공민왕 7) 혜근이 여주 신륵사를 창건한 뒤 바로 이 절을 중수하였다. 1570년대 초반 벽운과 조당이 윤한필과 김유량이 함께 중창하고, 1577년(선조 10)에 자운, 1587년(선조 20)에는 벽운이 각각 중수하였다.
1798년(정조 22)에 처봉이 중수한 뒤 산 이름을 감악산이라 고치고 절 이름도 산 이름에 맞춰 감악사라 하였다. 1910년 유일이 중수하였으나 1916년 불에 타, 뒤에 윤인선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중창하고 이름을 백련사로 바꿨다. 1947년 태순이 중수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 파손된 것을 1957년에 중건하였다. 1976년 수해로 대웅전이 무너지자 이듬해 돌로 축대를 쌓았으며, 1979년 일운이 법당을 중창하였다. 이후 1995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때는 산내 암자로 미륵사와 신흥사·천수암·은적암·청련암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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