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함양)
보림사(함양)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3길 32
보림사는 함양의 중심인 함양읍에 자리하고 있다. 함양은 신라의 국경지대로 백제와의 패권다툼의 공방전이 계속된 곳으로 남쪽에는 지리산이, 북쪽에는 덕유산 등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가운데에 보림사가 위치한다. 도심에 자리한 보림사는 10여 분 거리에 군청을 비롯해 군의 주요 시설들과 접해있으며, 용산사지인 함양중학교와 인접해 있다. 특히, 보림사 입구에는 상림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최치원이 천령군의 태수로 있을 때 인공으로 조성한 숲이다. 봄에는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철을 통하여 그 절경을 맛 볼 수 있다. 함양군 포교당 보림사(寶林寺)는 1910년에 일제강점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족정기와 혼을 되살리려는 백용성 조사(白龍城 祖師)의 뜻에 따라 당시 지리산 벽송사에 주석하던 동운화상(東雲和尙)이 함양읍에 민가를 구하여 인법당으로 개조한 후 불법홍포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시교당으로 창건하였다.
암울한 시대에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던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태로운 시기에 실로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 전당이었다. 희망은 사람들의 간절한 원을 담아내어 청정무구한 땅이 되었으니, 그것은 전각의 당당한 위엄이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종묘의 위상으로 일군 성과가 결코 아니다. 학교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보림사는 유치원을 개원하여 대한민국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는 배움의 전당의 역할도 하였다. 70세가 훌쩍 넘긴 어르신들은 그 당시 유치원을 다닌 이야기를 하는 등 추억이 되어주고 있다. 또 30년 전에는 이곳에서 제일 큰 집에 법당이 자리하여 온갖 동내 잔치들이 이루어졌는데,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곳을 찾는 불자들이 많다고 한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남북분단, 그리고 이념의 대립과 갈등의 처절한 틈바구니에서 보림사는 오직 주민의 평안과 희망을 주는 곳으로 상처받은 중생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중생들의 안식처를 자처한 보림사는 해인사 포교당으로 편입되어 지금까지 끝임 없는 중생구재의 장이 되고 있으며, 주민들의 쉼터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보림사의 후원과도 같은 천연기념물 ‘함양상림’공원에 연밭을 조성하는데 크게 힘을 모아 지역주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면서 함양을 비롯하여 인근 포교의 전당으로서 불교진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 모두가 오롯한 신심이 불자들의 마음을 열게하여 불심을 일군 덕(德)이라 할 수 있다. 미륵전에 있는 옛 용산사지에서 출토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함양 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咸陽龍山寺址石造如來立像)’ 또한 보림사의 큰 자랑이며 불자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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