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암(보은)
복천암(보은)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로 702-5 복천암
* 속리산 암자 중 가장 깊은 역사를 간직한, 복천암 * 복천암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속리산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국립공원 사하촌에서부터 먼 거리를 도보로 이동해야만 한다. 속리산 내에 위치한 여러 암자들 중 세심정과 가깝게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리 힘들이지 않고 복천암에 도달할 수 있다. 속리산은 그 산이 깊고 넓어 많은 암자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암자들 중 복천암이 가장 깊은 역사를 갖고 있고 규모 역시 가장 큰 사찰이다. 암자의 형태를 하고 있는 사찰이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을 위한 사찰 운영보다는 선원의 형식으로 사찰을 운영하고 있다. 사찰의 이름을 복천암이라고 한 까닭은 사찰의 한쪽 켠에 바위 사이로 물이 흘러 모이는데 마르지 않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한참 동안 궁궐을 비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세조는 이를 수락했다. 임금께서 한양에서 멀리 속리산 산속까지 행행한다는 소식은 전국에 퍼졌으며 길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복천암에 도달한 세조는 삼 일 동안 기도를 드렸고 목욕소에서 목욕을 했다. 복천암의 약수 때문인지 법당에서 삼 일간 기도한 때문인지 혹은 멀리 한양을 떠나 수려한 속리산 산천을 둘러본 여유 때문인지 세조의 병은 깨끗이 낫게 되었다. 아마도 세조는 법당에서 삼 일 동안 단종의 명복을 빌었으리라. 몸은 병은 마음의 병을 치유해야만 호전된다고 한다. 궁궐 내의 많은 어의들이 치료를 못한 병인데 이곳에서의 삼일 기도가 세조가 낫게 한 것이다. 복천암은 세조의 피부병 만을 치유해 준 것이 아니라 세조의 마음을 치료해 준 것이다. * 세조의 피부병을 고쳐준 극락전의 무량수 * 이 물은 오래전부터 약수로 유명해 전국에서 이 물을 찾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조 세조 임금 당시에 임금님이 복천암을 들른 일이 있다. 세조는 세종의 아들로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임금이 된 인물이다. 제대로 된 양위에 의해 권좌에 오른 것이 아니라 찬탈에 의해 임금이 되었다. 찬탈하는 과정에서 조카마저 죽이고 말았으니 그에 따른 심적 고통은 남달랐을 것이다. 이후 몸에 피부병이 돋았는데 쉽게 낳지 않았다. 이 피부병은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천벌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세조에게는 피부병의 고통보다 심적 고통이 더 컸을 것이다. 세조는 왕이 된 이후 맘속의 병을 치유받기 위해 불교에 귀의했고 당시 많은 고승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법문을 듣고 마음을 치유했다. 그러던 중 복천암에 행행할 것을 제안받았다. 복천암의 약수가 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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