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사(대구)
부인사(대구)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
대구의 팔공산(八公山) 남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부인사(符仁寺)는 이 지역의 대표적 명찰 가운데 하나이다. 행정구역상 소재지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5번지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의 부인사 연혁은 자세히 전하는 내용이 없다. 다만 고려 말의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부인사는 오랫동안 거찰의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39개의 부속암자를 관장하였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판각은 몽골의 칩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京都] 난젠사[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지금 건물은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터에 중창한 것이다. 당우에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관세음보살상을 안치한 대웅전과 선덕묘, 2동의 요사채가 있다. * 부인사의 역사와 승려의 난 * 고려 후기인 1203년(고려 신종 6) 무렵에 이르러 부인사에서는 큰 정치적 사건이 발생한다. 보통 "부인사 승도란(僧徒亂)"으로 부르는 사건인데, 이 사건은 부인사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최씨 무신정권에 반발한 반란이었다. 이미 1202년에도 운문사와 부인사·동화사 등의 승려들이 연합하여 경상북도 영천(永川)의 관아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 1203년의 부인사 승도란은 그 전 해에 있었던 영천 공격 사건과 연계되는 난이었다. 무신집권기에 지방 사원의 승려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례는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부인사 승려들이 일으킨 이 난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발생한 난과 함께 규모가 컸던 승려란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 승려와 지방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반란 사건은 고려 후기 정치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일반 정치사 분야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여하튼 부인사를 중심으로 이러한 난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부인사가 이 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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