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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성재서당 성재서당은 동구 미대동의 인천채씨 성재 문중의 현조인 양전헌 채선견이 최초로 건립했으며 조선 인조 때 선비 채명보가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채명보의 휘는 선견, 자는 명보, 호는 양전헌이며 본관은 인천이다. 광해군 9년(161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서궁유폐사건이 일어나자, 선비들과 함께 상소를 올려 잘못된 점을 지적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에는 향병을 모집하기도 하였으며, 인조 4년에 희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받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성재정을 짓고 선비들과 학문을 논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채선견은 이곳 성재정에서 당시 대구의 대표적 유학자인 손처눌·도신수·정극준·최동집 등과 교유하였다. 채선견의 호인 양전헌은 정구와 조호익의 양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의미이다. 1627년(인조 5) 채선견이 건립한 성재정으로부터 시작된 이 서당은 1770년경 채선견의 증손자…

갱신일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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