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욕실 선반을 치우다가 빈 샴푸 통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잠깐 멈칫했다. 분명 하나씩 썼을 뿐인데, 모아놓고 보니 작은 플라스틱 산처럼 보였다. 그때부터 ‘서스테이너블 웨이브’라는 말을 그냥 멋있는 소비 트렌드로만 볼 수가 없었다. 거창하게 지구를 구하겠다는 마음보다, 매일 버리는 것들을 조금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겼다.
사실 서스테이너블 웨이브는 지속 가능한 방식이 생활 전반으로 퍼지는 흐름에 가깝다. 예전에는 친환경 제품을 쓰는 사람이 특별해 보였다면, 요즘은 리필 세제, 텀블러, 중고 거래, 오래 입는 옷, 전기 사용 줄이기처럼 꽤 평범한 선택들이 이 흐름 안에 들어간다. 문제는 말은 좋은데 막상 실천하려면 가격, 귀찮음, 품질 걱정이 따라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며칠 동안 집에서 바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해봤다.
처음 바꾼 건 욕실과 주방이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이 욕실이었다. 샴푸, 바디워시, 폼클렌저, 핸드워시까지 전부 플라스틱 용기였다. 한 달에 한두 개만 비워도 1년이면 꽤 된다. 그래서 새 제품을 바로 사기보다 리필형과 고체형 제품을 섞어서 써봤다. 고체 샴푸는 처음엔 낯설었다. 거품이 덜 날 것 같았고 보관도 귀찮아 보였다. 그런데 물 빠짐 받침만 제대로 두면 생각보다 오래 갔다.
주방에서는 세제 리필과 행주 사용을 먼저 바꿨다. 키친타월을 아예 끊지는 못했지만, 물기 닦는 용도는 행주로 돌렸다. 하루에 키친타월 3장을 덜 쓴다고 치면 한 달이면 약 90장이다. 숫자로 보니 확실히 체감이 됐다. 물론 행주를 빨아야 하는 일이 생기니 완전히 편해지는 건 아니다. 대신 쓰레기통이 차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써보니 좋았던 작은 변화
- 손 세정제는 펌프 용기를 유지하고 리필만 채우니 비용이 줄었다.
- 고체 비누는 포장이 단순해서 욕실 쓰레기가 확실히 줄었다.
- 키친타월 대신 면 행주를 쓰니 음식물 주변 청소가 더 편한 경우도 있었다.
- 세제는 대용량 리필을 사면 보관 공간은 필요하지만 단가가 낮아졌다.
친환경 제품이 늘 좋은 건 아니었다
서스테이너블 웨이브를 따라가다 보면 은근히 소비를 더 하게 되는 함정이 있다. ‘친환경’이라고 적힌 새 물건을 사는 순간, 원래 쓰던 물건은 뒤로 밀린다. 나도 예쁜 텀블러를 새로 사고 싶었는데, 집에 이미 보온병이 2개 있었다. 그래서 새로 사는 대신 기존 물건을 더 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솔직히 이게 덜 설레긴 한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다는 말에 더 가까운 건 새 제품 구매보다 지금 있는 물건을 오래 쓰는 쪽이었다.
또 하나 느낀 건 인증이나 문구를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포장은 종이처럼 보이는데 안쪽에 코팅이 되어 분리배출이 애매한 경우도 있고, 자연 유래 성분이라는 말이 있어도 실제 사용감이 별로라 결국 다시 사게 되는 제품도 있었다. 제품 설명을 볼 때는 ‘친환경’이라는 큰 단어보다 재활용 가능 여부, 리필 가능 여부, 내 생활에서 끝까지 쓸 수 있는지를 보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돈이 더 드는지 직접 계산해봤다
많이들 궁금한 부분이 비용이다. 나도 서스테이너블 웨이브가 결국 여유 있는 사람들의 소비 방식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일부 제품은 비쌌다. 고체 샴푸나 천연 수세미, 다회용 밀폐 용기 같은 건 처음 살 때 가격이 높게 느껴졌다. 그런데 전부 그런 건 아니었다. 리필 세제, 중고 거래, 장바구니 사용, 일회용품 줄이기는 오히려 비용을 낮추는 쪽이었다.
예를 들어 500ml 펌프형 핸드워시를 매번 새로 사는 것보다 1L 리필팩을 사서 채우는 편이 대체로 저렴했다. 카페에서 텀블러 할인을 받는 경우도 컵당 300원 안팎이니, 주 3회만 써도 한 달에 3천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엄청난 금액은 아니지만 습관이 되면 생활비에서 티가 난다. 반대로 친환경 굿즈를 계속 사면 비용 절감은 거의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새로 사서 실천’보다 ‘덜 사서 실천’이 더 맞았다.
돈을 덜 쓰는 방향으로 고른 기준
- 이미 가진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으면 새로 사지 않았다.
- 소모품은 리필 가능한지 먼저 확인했다.
-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부터 줄였다.
- 비싼 친환경 제품은 사용 빈도를 계산한 뒤 샀다.
가장 어려운 건 의외로 분리배출이었다
분리배출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애매한 게 많았다. 라벨을 떼야 하는 페트병, 내용물을 헹궈야 하는 용기, 종이처럼 보이지만 코팅된 포장재 같은 것들이다. 환경부와 지자체 안내를 보면 기본 원칙은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 것이다. 말은 간단한데 바쁜 날에는 이 과정이 꽤 번거롭다.
그래서 집 안에 작은 규칙을 만들었다. 싱크대 옆에는 헹굴 용기만 잠깐 두는 공간을 만들고, 현관 쪽에는 종이와 플라스틱을 따로 모았다. 라벨이 잘 안 떨어지는 용기는 무리해서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다. 완벽하게 하려다가 지치면 오래 못 간다. 80점 정도로 꾸준히 하는 편이 나에게는 훨씬 현실적이었다.
며칠 해보니 남은 건 죄책감보다 감각이었다
서스테이너블 웨이브를 생활에 넣어보니 대단한 캠페인보다 감각의 변화에 가까웠다. 뭔가를 살 때 ‘이거 버릴 때는 어떻게 되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일회용 수저를 빼고, 장 보러 갈 때 접어둔 장바구니를 챙기고, 오래된 옷은 바로 버리기 전에 수선이 되는지 보게 됐다. 작은 행동인데 생활의 방향이 조금 달라지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모든 걸 친환경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바쁜 날엔 일회용품을 쓰고, 가격이 너무 비싸면 기존 제품을 고른다. 그래도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고 버리는 흐름에서는 조금 벗어났다. 나에게 서스테이너블 웨이브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에서 낭비를 한 번 덜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이 정도라면 유난스럽지 않게 계속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