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동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같은 고혈압, 같은 당뇨병이라도 시작은 정말 다르게 보입니다. 어떤 분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오고, 어떤 분은 발가락 상처가 낫지 않아 오고, 어떤 분은 검진에서 수치 하나가 살짝 벗어난 줄 알고 미루다가 입원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겁을 드리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만성질환자는 몸이 보내는 작은 변화가 평소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서, 어디까지 지켜보고 어디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기준을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만성질환자는 왜 작은 증상도 다르게 봐야 할까요?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만성콩팥병, 심장질환, 간질환 같은 병은 하루아침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감기, 탈수, 과로, 음주, 약 변경, 식사량 감소 같은 작은 사건을 계기로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특히 당뇨병이 있는 분은 감염이 생겨도 통증이 덜하거나 상처 회복이 늦을 수 있고, 고혈압이 오래된 분은 두통이 없어도 혈압이 높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질병관리청과 대한당뇨병학회 안내에서도 당뇨병과 고혈압은 증상만으로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고, 수치와 합병증 위험을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제가 검진센터에서 자주 봤던 경우도 비슷합니다. “몸은 괜찮은데요”라고 하셨는데 공복혈당이 126mg/dL 이상으로 반복되거나, 당화혈색소가 6.5% 이상으로 확인되어 진료가 필요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수치가 아주 나쁘지 않아도 흉통이나 숨참이 있으면 검진 결과를 기다릴 일이 아닙니다.
혈압, 혈당 수치는 어느 정도면 바로 움직여야 할까요?
집에서 혈압을 재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좋은 습관입니다. 다만 한 번 높게 나왔다고 바로 큰일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커피를 마셨거나, 급하게 움직였거나, 말하면서 재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5분 정도 앉아서 쉬고 다시 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수축기 혈압이 18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120mmHg 이상이고, 여기에 가슴통증, 숨참, 심한 두통, 시야 이상, 한쪽 팔다리 힘 빠짐, 말 어눌함이 같이 있으면 지켜볼 상황이 아닙니다. 응급실 진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없어도 이런 수치가 반복되면 당일 진료나 응급 상담을 고려해야 합니다.
혈당도 비슷합니다. 공복혈당 100~125mg/dL는 당뇨병 전단계로 보는 경우가 많고, 126mg/dL 이상이 반복되면 당뇨병 평가가 필요합니다. 당화혈색소 6.5% 이상도 진단 기준에 들어갑니다. 이미 당뇨병 약을 드시는 분이라면 혈당이 70mg/dL 미만으로 떨어질 때가 더 급할 수 있습니다. 식은땀, 손떨림, 심한 배고픔, 어지러움, 말이 어눌해짐, 의식이 흐려짐이 있으면 저혈당을 의심해야 합니다.
- 혈압 180/120mmHg 이상이 반복되거나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될 때
- 혈당 70mg/dL 미만이거나 의식 변화가 있을 때
- 혈당이 300mg/dL 이상으로 높고 구토, 탈수, 심한 갈증, 빠른 호흡이 있을 때
- 평소보다 소변량이 확 줄거나 다리 부종이 갑자기 심해질 때
검진 결과에서 그냥 넘기기 쉬운 신호가 있습니다
검진표를 보면 숫자가 많아서 어디를 봐야 할지 막막합니다. 사실 정상 범위에서 조금 벗어난 수치 하나만으로 큰 병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진단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의사가 합니다. 다만 만성질환자가 검진 결과를 받을 때는 “작년보다 얼마나 변했는지”를 꼭 같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크레아티닌이 정상 범위 안에 있어도 작년보다 뚜렷하게 올랐거나, 사구체여과율이 60mL/min/1.73㎡ 아래로 내려가면 콩팥 기능 평가가 필요합니다. 소변 단백이나 미세알부민이 반복해서 나온다면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콩팥은 많이 나빠질 때까지 몸으로 느끼는 증상이 적은 장기라 더 그렇습니다.
간수치도 마찬가지입니다. AST, ALT가 일시적으로 오를 수는 있지만, 음주를 줄였는데도 계속 높거나 황달, 진한 소변, 심한 피로, 오른쪽 윗배 통증이 있으면 진료를 미루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이상지질혈증은 증상이 거의 없지만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위험과 이어질 수 있어 LDL 콜레스테롤 목표치를 개인 위험도에 맞춰 조절해야 합니다. 같은 LDL 130mg/dL라도 심장질환 병력이 있는 분과 없는 분의 의미가 다릅니다.
약을 먹는 중이면 더 조심해야 하는 상황
만성질환자는 약이 많아질수록 몸 상태 변화에 민감해집니다. 혈압약을 드시는 분이 설사나 구토로 탈수가 오면 어지러움이 심해질 수 있고, 당뇨병 약 중 일부는 식사를 거르면 저혈당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진통소염제를 며칠 먹고 부종이 심해지거나 혈압이 오르는 분도 봤습니다.
솔직히 약을 임의로 끊는 것이 가장 위험한 때가 많습니다. 혈압이 좋아졌다고 약을 중단했다가 다시 크게 오르는 경우가 있고, 당뇨병 약을 빼먹다가 갈증과 소변 증가가 심해지는 분도 있습니다. 반대로 식사를 거의 못 하는데 평소처럼 약을 먹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약 조절은 담당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새 약을 시작한 뒤 발진, 얼굴 부종, 호흡곤란이 생긴 경우
- 혈압약 복용 후 실신할 것 같은 어지러움이 반복되는 경우
- 당뇨병 약 복용 중 식사를 못 하고 저혈당 증상이 생기는 경우
- 진통제, 한약, 건강식품을 함께 먹은 뒤 수치가 나빠진 경우
이럴 땐 진료를 받으세요
만성질환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이 “며칠만 더 보자”일 때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증상이 응급은 아닙니다. 그런데 가슴을 누르는 통증이 10분 이상 지속되거나, 갑자기 한쪽 얼굴이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거나, 숨이 차서 눕기 힘들거나, 의식이 흐려지는 증상은 기다리면 안 됩니다.
당뇨병이 있는 분은 발 상처도 작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발바닥 물집, 발톱 주변 염증, 까맣게 변하는 피부, 고름, 열감이 있으면 빨리 봐야 합니다. 내과 병동에서 작은 상처가 깊은 감염으로 번져 오래 치료받는 분들을 여러 번 봤습니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고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검진 결과가 애매할 때도 혼자 해석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혈압, 콜레스테롤, 콩팥 수치, 소변검사는 각각 따로 떨어진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혈관 상태를 같이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와 검사 수치를 함께 놓고, 필요한 시점에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것이 만성질환 관리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안전장치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