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1483회 다시 봤더니, 다바크와 파라다이스가 더 섬뜩했던 이유

그것이 알고 싶다 1483회 다시 봤더니, 다바크와 파라다이스가 더 섬뜩했던 이유

얼마 전 SBS에서 공개한 그것이 알고 싶다 1483회 정보를 다시 확인하다가, 이 회차는 그냥 ‘충격적인 사건’으로만 소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은 ‘다바크와 파라다이스 - J교회 여신도는 왜 투신했나’였고, 2026년 4월 11일 방송된 회차입니다. 소재가 워낙 조심스러워서 자극적인 장면보다, 제작진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쪽에 더 눈이 갔어요.

이 회차의 출발점은 경기도 시흥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20대 여성, 방송상 가명 서수아 씨의 죽음입니다. 방송 소개에 따르면 그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고, 가족들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을 의심합니다. 여기서 프로그램은 곧장 범인을 단정하기보다, 한 교회 안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고 어떤 관계가 만들어졌는지를 따라갑니다.

1483회가 던진 첫 질문은 죽음의 이유였다

사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오래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구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건이 등장하고, 그 주변의 말들이 엇갈립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수아 씨의 죽음을 두고 교회 안에서는 유부남 신도와의 관계, 이별, 주변 시선 같은 소문이 돌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유족 쪽으로 들어온 제보는 방향이 전혀 달랐습니다.

방송이 주목한 건 J교회 목사 이 씨와 수아 씨 사이에 있었다고 제기된 메시지, 그리고 전 신도들의 증언입니다. 특히 이 목사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게 했다는 대목은 단순히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위계를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 차이, 종교적 권위, 신앙 공동체 안의 폐쇄성이 한데 엮이면 개인이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생길 수 있거든요.

‘다바크’라는 말이 불편하게 남는 이유

1483회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단어는 역시 ‘다바크’입니다. 방송 소개상으로는 히브리어로 결합을 뜻하는 말로 설명됐고, 의혹의 중심에는 이 표현이 영적 의미를 넘어 신도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는 주장이 놓여 있습니다. 물론 교회 측은 관련 의혹이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했고, 남아 있는 신도들 역시 다바크 교리를 모른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회차는 보는 내내 답답함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피해를 말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전부 음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작진이 보여주는 관전 포인트는 “누가 더 크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이 신앙 언어를 사적으로 끌어다 썼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입니다. 종교 자체를 향한 공격이라기보다, 믿음이 권력처럼 작동하는 순간을 추적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스포를 피해서 봐도 보이는 장면들

  • 수아 씨의 죽음을 둘러싼 교회 내부 소문과 유족의 의심이 충돌합니다.
  • 전 신도들의 증언은 사건을 개인 문제에서 공동체 구조 문제로 넓힙니다.
  • 교회 측 반박이 함께 제시되면서 시청자는 양쪽 주장을 비교하게 됩니다.
  • 잠적했다는 이 목사의 행방은 회차 전체에 묵직한 긴장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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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이비·종교 권력 회차와 다른 감각

그알에서 종교 공동체를 다룬 회차들은 대체로 강한 분노를 불러옵니다. 그런데 1483회는 분노만큼이나 피로감이 큽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억을 다시 꺼내야 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어온 세계를 지키려 합니다. 시청자는 그 사이에서 “왜 더 일찍 빠져나오지 못했을까”라는 쉬운 말을 삼키게 됩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회차를 볼 때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가 구경꾼 모드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교리, 충격적인 메시지, 잠적한 인물 같은 요소가 워낙 세서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 가족과 제보자들은 계속 현실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차는 사건의 세부를 캐는 재미보다, 관계의 압박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 보는 쪽이 더 중요했습니다.

정주행 관전 포인트는 ‘믿음’보다 ‘관계의 구조’

1483회를 다시 볼 때는 누가 어떤 종교를 믿었는지보다, 누가 질문할 수 있었고 누가 침묵해야 했는지를 보는 게 좋습니다. 목사가 설교자이자 상담자이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다면, 신도 입장에서는 사적인 불편함을 말하는 것조차 신앙심 부족처럼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이 꽤 현실적입니다. 회사, 학교, 동호회에서도 비슷한 권력 구조는 작동하니까요.

또 하나는 방송의 균형감입니다. 자극적인 폭로만 밀어붙이면 쉽게 분노를 얻을 수 있지만, 그알은 교회 측의 반박과 남아 있는 신도들의 믿음도 배치합니다. 그래서 시청자는 더 불편해집니다. 분명히 무언가 이상한데,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말하는 상황. 이 간극이야말로 폐쇄적인 공동체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습니다.

저라면 이 회차를 가벼운 밤 예능처럼 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사회 고발 다큐를 따라가듯, 중간중간 멈추면서 보는 쪽이 맞았습니다. 1483회는 강한 반전이나 명쾌한 해답보다, 누군가의 믿음이 어떻게 의존이 되고, 의존이 어떻게 통제가 될 수 있는지를 오래 남기는 회차였어요. 보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쉽게 넘기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483회 다시 봤더니, 다바크와 파라다이스가 더 섬뜩했던 이유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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