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관심 있던 회사의 재무지표를 보다가 ROE가 18%라고 적힌 걸 봤다. 처음엔 숫자가 꽤 좋아 보여서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가는 몇 년째 크게 움직이지 않았고, 배당도 특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ROE가 높으면 좋은 회사라던데, 왜 시장 반응은 이렇게 밋밋하지?’ 이 궁금증 때문에 며칠 동안 ROE를 다시 뜯어보게 됐다.
ROE는 Return on Equity의 줄임말이고, 우리말로는 자기자본이익률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회사가 주주 돈을 가지고 얼마나 이익을 잘 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계산식은 단순하다.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한다. 예를 들어 자기자본이 1,000억 원인 회사가 1년 동안 순이익 100억 원을 냈다면 ROE는 10%다.
ROE가 높으면 일단 눈길은 간다
솔직히 투자 지표 중에서 ROE는 꽤 직관적이다. 은행 예금 금리가 3% 안팎인데 어떤 회사가 자기자본 대비 15%의 이익을 꾸준히 낸다면, 숫자만 봐도 ‘오, 장사 잘하네’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돈을 넣어도 어떤 회사는 5%를 벌고, 어떤 회사는 20%를 버는 셈이니까 비교가 쉽다.
예를 들어 A회사는 자기자본 500억 원으로 순이익 50억 원을 냈다. ROE는 10%다. B회사는 자기자본 500억 원으로 순이익 100억 원을 냈다. ROE는 20%다. 단순 비교만 하면 B회사가 훨씬 효율적으로 돈을 굴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증권 앱이나 기업 분석표에서도 ROE는 자주 앞쪽에 나온다.
근데 여기서 바로 함정이 생긴다. ROE가 높다는 말이 항상 사업 경쟁력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숫자는 결과만 보여준다. 그 숫자가 왜 높아졌는지는 따로 봐야 한다.
직접 봐보니 ROE는 세 가지 이유로 높아졌다
내가 처음 봤던 회사도 ROE만 보면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재무제표를 조금 더 보니 순이익이 본업에서 꾸준히 늘어난 게 아니라, 일회성 자산 매각이익 때문에 튄 해가 있었다. 이런 경우 그해 ROE는 높아지지만 다음 해에도 반복될 가능성은 낮다.
ROE가 높아지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다.
- 본업에서 이익률이 좋아져 순이익이 늘어난 경우
- 부채를 많이 써서 자기자본 대비 이익률이 커진 경우
- 자기자본이 줄어들어 분모가 작아진 경우
첫 번째는 가장 보기 좋다. 제품 가격을 잘 받거나, 원가 관리를 잘하거나, 브랜드 힘이 강해서 돈을 잘 버는 경우다. 이런 회사의 ROE는 시간이 지나도 꽤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편이다.
두 번째는 조금 조심스럽다. 회사가 빚을 많이 내서 사업을 키우면 자기자본 대비 이익률이 높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자본 100억 원에 부채 900억 원을 더해 총 1,000억 원 규모로 사업을 하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순이익 50억 원을 내면 ROE는 50%다. 숫자만 보면 대단하지만, 금리가 오르거나 경기가 꺾이면 부담도 같이 커진다.
세 번째도 은근히 헷갈린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 큰 배당, 누적 적자 같은 이유로 자기자본이 줄면 ROE가 높아질 수 있다. 이때는 회사가 갑자기 돈을 더 잘 번 게 아니라 계산의 분모가 작아진 것일 수 있다.
ROE를 볼 때 같이 본 숫자들
ROE 하나만 보고 판단하면 자꾸 착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숫자를 같이 놓고 봤다. 제일 먼저 본 건 부채비율이었다. ROE가 20%인데 부채비율도 300%라면, 그 높은 수익률이 빚의 힘인지 확인해야 한다. 물론 업종마다 적정 부채 수준은 다르다. 은행, 보험, 건설, 제조업을 같은 기준으로 보면 이상한 판단이 나온다.
두 번째는 영업이익률이었다. 순이익은 세금, 금융비용, 일회성 손익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면 영업이익률은 본업의 체력을 보는 데 더 편했다. ROE는 높은데 영업이익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면, 뭔가 오래 가기 어려운 숫자일 수 있다.
세 번째는 3년에서 5년 평균 ROE였다. 한 해 숫자보다 평균이 훨씬 덜 속인다. 어떤 회사가 작년에 ROE 25%를 냈지만 이전 4년은 4%, 6%, 5%, 3%였다면 나는 일단 멈춘다. 반대로 매년 12%, 13%, 14%, 12%, 15%처럼 비슷하게 유지되는 회사는 조금 더 진지하게 보게 된다.
업종마다 좋은 ROE 기준이 달랐다
처음엔 ROE 10% 이상이면 괜찮고, 15% 이상이면 좋고, 20% 이상이면 훌륭하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업종을 섞어서 보니 이 기준이 꽤 거칠었다. 소프트웨어 회사처럼 설비 투자가 적은 업종은 ROE가 높게 나오기 쉽다. 반대로 공장, 장비, 재고가 많이 필요한 제조업은 같은 이익을 내도 ROE가 낮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랜드 소비재 회사가 ROE 25%를 꾸준히 내는 건 강한 가격 결정력의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 금융회사의 ROE 12%와 제조업의 ROE 12%는 느낌이 다르다. 금융회사는 자본 규제와 금리 환경을 같이 봐야 하고, 제조업은 경기 사이클과 설비 투자 부담을 같이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ROE를 볼 때 꼭 같은 업종 안에서 비교한다. 같은 시장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 회사끼리 놓아야 숫자가 말이 된다. 커피숍과 반도체 장비 회사를 ROE 하나로 비교하는 건 생각보다 실속이 없었다.
내가 쓰는 간단한 ROE 확인 순서
요즘은 ROE를 보면 바로 좋다 나쁘다를 말하지 않고 순서를 정해둔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식은 아니다. 관심 종목 하나 볼 때 10분 정도면 대략적인 감은 잡힌다.
- 최근 ROE가 아니라 3년 이상 흐름을 본다
- 순이익이 본업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한다
- 부채비율이 갑자기 높아졌는지 본다
-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와 비교한다
- ROE가 높은데 주가가 싼 이유를 따로 찾는다
특히 마지막이 중요했다. ROE가 높은데도 주가가 싸 보인다면 시장이 놓친 기회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아직 못 본 위험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실적이 꺾이기 직전이거나, 특정 고객 의존도가 너무 높거나, 환율과 원자재 가격에 민감한 회사일 수도 있다.
ROE는 좋은 출발점이다. 하지만 도착점은 아니었다. 숫자 하나로 회사를 다 안다고 느끼는 순간 오히려 실수가 쉬워졌다. 나는 이제 ROE를 보면 ‘이 회사가 돈을 잘 버는구나’에서 멈추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잘 버는 거지?’를 한 번 더 묻는다. 그 질문 하나만 추가해도 재무지표를 보는 눈이 꽤 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