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금치나물은 데치는 시간이 거의 전부입니다
얼마 전 요리교실에서 시금치나물을 같이 만들었는데, 같은 재료를 써도 어떤 분 것은 고소하고 어떤 분 것은 물이 흥건했어요. 차이는 양념이 아니라 데치는 시간과 물기 짜는 힘이었습니다. 시금치는 잎이 얇아서 10초만 길어져도 숨이 확 죽고, 덜 짜면 접시에 담은 뒤에 간이 빠져나옵니다.
시금치나물 만들기에서 제일 먼저 볼 것은 시금치 상태예요. 한 단이라고 해도 시장 시금치와 마트 포장 시금치는 양이 다릅니다. 손질 전 기준으로 250g 정도면 2~3인 밥반찬 양이 나옵니다. 데치고 물기를 짜면 생각보다 많이 줄어드니, 넉넉히 먹고 싶으면 300g까지 잡아도 괜찮습니다.
재료와 대체 재료
기본 간은 짜지 않게 잡는 편이 좋습니다. 시금치나물은 바로 먹을 때보다 10분 뒤에 간이 더 배고, 물이 조금 나오면서 맛이 달라지거든요. 처음부터 간장을 세게 넣으면 밥 없이 먹기 부담스럽습니다.
- 시금치 250g
- 굵은소금 1작은술, 데칠 물 1.5L
- 국간장 1작은술
- 소금 1~2꼬집
- 다진 마늘 1/3작은술
- 참기름 1큰술
- 깨소금 1큰술
국간장이 없으면 진간장 1/2작은술에 소금 1꼬집을 더하면 됩니다. 다만 진간장은 단맛과 색이 있어서 많이 넣으면 시금치 색이 탁해져요. 액젓을 쓰고 싶다면 1/2작은술만 넣으세요. 액젓은 감칠맛은 좋지만 많이 들어가면 시금치 향을 덮습니다.
마늘은 꼭 많이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도 예전 주방 초반에는 나물에 마늘을 넉넉히 넣어야 맛있는 줄 알았는데, 시금치처럼 향이 순한 채소에는 마늘이 1/2작은술만 넘어가도 끝맛이 맵게 남더라고요. 아이 반찬이면 마늘을 빼고 참기름과 깨소금만으로 무쳐도 충분합니다.
흙 씹히지 않게 손질하는 순서
시금치는 뿌리 쪽에 흙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뿌리를 전부 잘라내면 손질은 편하지만 단맛이 빠져 아깝습니다. 뿌리 끝의 지저분한 부분만 얇게 긁거나 잘라내고, 굵은 포기는 밑동에 십자로 칼집을 넣어 주세요. 이렇게 하면 데칠 때 줄기까지 고르게 익습니다.
씻을 때는 큰 볼에 물을 넉넉히 받아 흔들어 씻고, 건져낸 뒤 물을 버리는 방식이 좋습니다. 흐르는 물에만 대충 씻으면 뿌리 사이 흙이 그대로 남을 때가 있어요. 저는 보통 물을 세 번 갈아줍니다. 첫 번째는 흙을 불리는 느낌, 두 번째는 줄기 사이를 벌려 씻는 느낌, 세 번째는 헹굼입니다.
시금치가 너무 길면 데친 뒤 무치기 불편합니다. 길이가 12cm 이상이면 데친 다음 한 번 잘라도 되고, 손질 단계에서 반으로 나누어도 됩니다. 다만 너무 잘게 자르면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나물 느낌이 덜해서 저는 데친 뒤 한 번만 자르는 편입니다.
색 살리고 아삭하게 데치는 방법
냄비에 물 1.5L를 붓고 팔팔 끓입니다. 물이 적으면 시금치를 넣는 순간 온도가 확 떨어져서 오래 담가야 하고, 그러면 색이 누렇게 가기 쉽습니다. 물이 끓으면 굵은소금 1작은술을 넣습니다. 소금은 간을 배게 하는 목적보다 색을 살리고 데친 뒤 밍밍함을 줄이는 역할이 큽니다.
시금치는 줄기부터 넣고 10초, 전체를 눌러 넣고 15~20초 정도면 충분합니다. 두꺼운 겨울 시금치는 총 35초까지, 여린 포장 시금치는 20초 안쪽으로 끝내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삶는 게 아니라 데친다는 감각이에요. 잎이 진한 초록색으로 변하고 줄기가 살짝 휘어지면 바로 건집니다.
건진 시금치는 찬물에 바로 담급니다. 뜨거운 열이 남아 있으면 냄비 밖에서도 계속 익어요. 찬물에 오래 담가두면 단맛이 빠지니 30초 정도 흔들어 열만 빼고 건집니다. 얼음물까지는 꼭 필요 없습니다. 집 반찬으로는 찬물만 제대로 써도 충분히 색이 납니다.
물기 짜는 힘이 맛을 가릅니다
시금치나물이 싱거워지는 이유는 양념 부족보다 물기 때문입니다. 두 손으로 잡고 꽉 짜되, 잎이 뭉개질 정도로 비틀지는 마세요. 손에 쥐었을 때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지 않고 촉촉한 정도가 좋습니다. 너무 꽉 짜서 퍽퍽해졌다면 무칠 때 참기름을 1작은술 더 넣으면 조금 살아납니다.
짠 시금치는 바로 양념하지 말고 손으로 가볍게 털어 풀어줍니다. 덩어리째 양념을 넣으면 겉에만 짜고 속은 싱겁습니다. 이 순서를 빼먹는 분들이 많은데, 주방에서는 나물 무칠 때 이 풀어주는 작업을 꽤 중요하게 봅니다.
양념은 가볍게, 손끝으로 무치기
볼에 풀어둔 시금치를 넣고 국간장 1작은술, 다진 마늘 1/3작은술을 먼저 넣어 조물조물 무칩니다. 참기름을 먼저 넣으면 기름막이 생겨 간이 덜 배는 느낌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간장과 마늘을 먼저 섞고, 마지막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습니다. 순서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맛이 꽤 달라요.
간을 본 뒤 싱거우면 소금 1꼬집을 추가합니다. 간장을 더 넣기보다 소금으로 맞추는 쪽이 색이 깨끗합니다. 깨는 통깨보다 깨소금이 잘 어울립니다. 손바닥으로 살짝 으깨 넣으면 고소한 향이 바로 올라옵니다.
무칠 때는 손에 힘을 많이 주지 않습니다. 시금치는 이미 익은 채소라 세게 주무르면 잎에서 물이 다시 나옵니다. 손끝으로 들어 올리듯 섞고, 줄기와 잎에 양념이 고르게 묻으면 멈추세요. 오래 무친다고 더 맛있어지는 반찬은 아닙니다.
실패했을 때 바로 수습하는 법
물이 많이 생겼다면 체에 밭쳐 3분 정도 두었다가 다시 볼에 담고 깨소금 1/2큰술을 더 넣습니다. 깨소금이 남은 수분을 조금 잡아주고 고소함도 채워줍니다. 이미 간이 약해졌다면 소금 한 꼬집으로 맞추세요. 간장을 더 넣으면 색과 향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너무 짜졌다면 데친 시금치를 추가하는 게 가장 좋지만, 없을 때는 두부를 조금 으깨 넣어도 됩니다. 물기 짠 두부 50g 정도를 넣으면 짠맛이 부드러워지고 반찬 양도 늘어납니다. 단, 두부를 넣은 시금치나물은 오래 두기보다 그날 먹는 게 좋습니다.
데쳐서 질겨졌다면 줄기 부분이 덜 익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에는 밑동에 칼집을 넣고 줄기부터 물에 넣어 보세요. 반대로 잎이 흐물흐물하다면 데친 시간이 길었던 겁니다. 시금치는 냄비 앞을 떠나지 않는 채소입니다. 30초 안에서 승부가 납니다.
시금치나물은 재료가 단순해서 오히려 작은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물 넉넉히 끓이고, 짧게 데치고, 물기 제대로 짜고, 참기름은 마지막에 넣는 것. 이 네 가지만 지키면 집에서도 반찬가게처럼 색 좋고 간 맞는 시금치나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나물이 밥상에 하나 있으면 국이 조금 심심해도 상이 편안해진다고 느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