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교실에서 시금치나물을 같이 만들다 보면, 같은 양념을 넣어도 어떤 분 것은 축 처지고 어떤 분 것은 간이 겉도는 일이 꽤 많습니다. 사실 시금치나물은 양념보다 데치는 시간, 헹구는 물 온도, 마지막 물기 짜는 힘이 맛을 거의 정합니다. 저도 주방 초반에는 시금치를 오래 데쳐서 색은 죽고 줄기는 질겨진 나물을 여러 번 만들었어요. 그때 배운 건 간단했습니다. 시금치는 익히는 음식이 아니라 숨만 죽이는 음식에 가깝습니다.
시금치나물 재료와 대체 재료
시금치 1단은 손질 전 기준으로 보통 250~300g 정도입니다. 데치고 물기를 짜면 한 접시 반 정도 나와요. 밥상에 반찬 3~4가지 올릴 때 3인 가족 한 끼 양으로 알맞습니다.
- 시금치 1단 250~300g
- 굵은소금 1작은술, 데치는 물용
- 국간장 1작은술
- 소금 1~2꼬집
- 다진 마늘 1작은술보다 살짝 적게
- 참기름 1큰술
- 깨소금 1큰술
- 쪽파나 대파 흰 부분 다진 것 1큰술, 없으면 생략 가능
국간장이 없으면 진간장을 2분의 1작은술만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됩니다. 진간장은 단맛과 색이 더 있어서 많이 넣으면 시금치 색이 탁해지고 맛이 무거워져요. 액젓을 좋아하면 멸치액젓 2분의 1작은술을 넣어도 되는데, 그때는 소금을 거의 넣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마늘은 많이 넣을수록 맛있을 것 같지만 시금치나물에서는 금방 매운 향이 올라옵니다. 특히 아이 반찬으로 낼 때는 2분의 1작은술만 넣어도 충분합니다. 깨는 통깨보다 손으로 살짝 부순 깨소금이 더 잘 어울립니다. 기름과 깨 향이 시금치 잎 사이에 붙으면서 간이 부드럽게 이어지거든요.
손질은 뿌리부터, 물은 넉넉하게
시금치는 흙이 생각보다 많이 숨어 있습니다. 뿌리 끝만 얇게 잘라내고, 붉은 뿌리 부분은 너무 많이 버리지 마세요. 단맛이 있는 부분이라 깨끗하면 같이 먹는 게 좋습니다. 뿌리가 두꺼운 것은 십자로 살짝 칼집을 넣으면 데칠 때 줄기와 잎이 비슷하게 익습니다.
씻을 때는 큰 볼에 물을 받아 시금치를 담그고 흔든 뒤, 건져서 물을 버리는 방식으로 3번 정도 씻습니다. 흐르는 물에만 대충 씻으면 잎 사이의 모래가 남기 쉽습니다. 특히 노지 시금치는 마지막 볼 바닥을 손으로 만져 봤을 때 까끌한 게 없을 때까지 씻어야 먹을 때 불편하지 않습니다.
데치는 물은 시금치 양보다 훨씬 넉넉해야 합니다. 시금치 1단이면 물 1.5리터 정도가 편합니다. 물이 적으면 시금치를 넣는 순간 온도가 확 떨어져서 오래 담가두게 되고, 그러면 색과 식감이 같이 무너집니다. 끓는 물에 굵은소금 1작은술을 넣는 이유도 간을 들이기보다 색을 선명하게 잡는 쪽에 가깝습니다.
데치는 시간은 30초 안팎이 적당합니다
물이 팔팔 끓을 때 줄기 쪽을 먼저 넣고 5초 정도 기다린 뒤 잎까지 밀어 넣습니다. 젓가락으로 위아래를 한 번 뒤집고, 전체가 숨이 죽으면 바로 건집니다. 부드러운 겨울 시금치는 20~25초, 줄기가 굵은 시금치는 35~40초 정도면 충분합니다. 1분을 넘기면 대부분 너무 익었다고 보면 됩니다.
데친 시금치는 바로 찬물에 넣어야 합니다. 그냥 체에 밭쳐 식히면 남은 열로 계속 익습니다. 찬물에 넣고 두세 번 물을 갈아주면 잎의 열기와 풋내가 빠집니다. 얼음물까지 꼭 쓸 필요는 없지만, 손님상처럼 색을 살리고 싶을 때는 마지막 헹굼만 차가운 물로 해도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 많이 갈립니다. 물기를 너무 세게 짜면 시금치가 뭉개지고 질겨집니다. 반대로 덜 짜면 양념을 넣어도 접시 바닥에 물이 생기고 간이 싱거워져요. 제 기준은 한 줌씩 잡고 손바닥 전체로 눌러 물이 뚝뚝 떨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비틀어 짜기보다 눌러 짜는 느낌이 좋습니다. 짠 뒤에는 뭉친 시금치를 손으로 살살 풀어야 양념이 골고루 닿습니다.
양념 순서가 맛을 편하게 만듭니다
볼에 풀어 놓은 시금치를 담고 먼저 국간장 1작은술, 소금 1꼬집, 다진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칩니다. 참기름을 먼저 넣으면 기름막이 생겨 간장이 잘 배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이 들어가는 재료를 먼저 넣고, 맛을 본 뒤 부족하면 소금 한 꼬집을 더합니다. 간장은 더 넣기보다 소금으로 맞추는 편이 색도 맛도 깔끔합니다.
간이 맞으면 참기름 1큰술을 넣고 가볍게 섞습니다. 마지막에 깨소금을 넣어 한 번만 더 버무립니다. 너무 오래 치대면 잎이 상하고 물이 다시 나옵니다. 나물은 힘으로 맛을 내는 반찬이 아니라 손끝으로 풀어 가며 섞는 반찬입니다.
바로 먹을 때는 간이 살짝 심심한 듯해야 밥이랑 잘 맞습니다. 도시락이나 다음 날 먹을 반찬으로 만들 때는 소금을 아주 조금 더 넣어도 괜찮습니다. 냉장고에 들어가면 향은 줄고 수분은 조금 나오기 때문에, 먹기 전에 깨소금만 살짝 추가하면 새로 무친 느낌이 납니다.
실패했을 때 수습하는 방법
시금치나물이 물컹해졌다면 다시 데우거나 볶지 않는 게 낫습니다. 더 익히면 식감이 더 무너집니다. 이럴 때는 물기를 한 번 더 가볍게 짜고, 깨소금 1큰술과 참기름 2분의 1작은술을 추가해 고소한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먹기 좋아집니다. 김밥 속재료로 넣거나 비빔밥에 올리면 식감 아쉬움이 덜 느껴집니다.
간이 짜졌다면 데친 시금치를 물에 다시 담그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향이 빠지고 맛이 흐려집니다. 대신 데친 숙주나 채 썬 오이를 조금 섞으면 간이 자연스럽게 분산됩니다. 당장 섞을 재료가 없다면 밥에 비벼 먹는 용도로 돌리는 게 낫습니다. 나물 반찬으로 억지로 맞추려다 보면 더 맛이 어색해질 때가 많아요.
풋내가 난다면 대개 덜 데쳤거나 헹굼이 부족했던 경우입니다. 이미 무친 뒤라면 팬에 식용유 없이 아주 약한 불로 20초 정도만 뒤적여 향을 날리고 바로 꺼냅니다. 오래 볶으면 볶음나물처럼 변하니 정말 짧게 해야 합니다. 이때 참기름은 불을 끈 뒤 몇 방울만 더하면 됩니다.
시금치나물은 재료가 단순해서 작은 차이가 바로 드러나는 반찬입니다. 물 넉넉히 끓이고, 짧게 데치고, 눌러 짜고, 간장 먼저 참기름 나중. 이 네 가지만 지키면 집에서도 식당 반찬처럼 초록빛이 살아 있는 시금치나물이 됩니다. 저는 이런 나물이 밥상에 하나 있으면 국이나 찌개가 조금 소박해도 상이 편안해진다고 느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