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최지만의 트라이아웃 인터뷰를 읽다가, 그냥 한 베테랑 타자의 불만으로 넘기기엔 꽤 묵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BO ABS를 향한 작심 발언이라고만 보면 자극적인 말처럼 보이지만, 기록을 같이 놓고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이건 단순히 스트라이크 하나가 억울했다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야구가 어떤 공을 스트라이크로 만들고 어떤 투수를 살아남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습니다.
메이저리그 67홈런 타자가 낯설어한 KBO 존
최지만은 미국 무대에서 오래 버틴 타자입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525경기, 타율 0.234, 67홈런, 238타점, OPS 0.764. 숫자만 놓고 보면 리그를 지배한 스타라기보다는, 강한 투수들과 버티는 법을 익힌 실전형 1루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의 ABS 발언은 더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경험이 부족해서 낯설다고 말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 복귀 후 퓨처스리그 울산 소속으로 실전을 치렀고, 20경기에서 타율 0.308, 1홈런, 7타점, OPS 0.847을 기록했습니다. 긴 공백과 부상 이슈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복귀 흐름입니다. 그런데 타격감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게 ABS였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최지만은 한국 투수들이 포크볼을 많이 던지고, 상하 스트라이크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한다고 봤습니다. 사실 ABS가 있는 환경에서는 이게 꽤 합리적인 전략입니다. 사람이 보기엔 낮아 보이거나 높아 보이는 공이라도 시스템상 존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타자 입장에서는 눈과 몸이 기억하는 존과 판정 존 사이의 간격을 계속 조정해야 합니다.
왜 포크볼과 상하 승부가 늘어날까
ABS의 가장 큰 특징은 판정의 일관성입니다. 그런데 일관성이 곧 체감상 자연스럽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낙차 큰 변화구는 타자 눈앞에서 존을 스치고 떨어지거나, 포수 미트 위치와 다르게 판정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판정하던 시절엔 포수 포구 위치, 타자의 반응, 공의 궤적이 어느 정도 함께 작용했습니다. ABS에서는 계산된 통과 지점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투수들이 상하 코스를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 당연합니다. 높은 존 위쪽 패스트볼, 낮게 걸치는 포크볼, 떨어지는 스플리터류가 더 강한 무기가 됩니다. 최지만이 말한 불편함은 여기서 나옵니다. 미국에서 봐온 스트라이크존과 KBO ABS가 주는 체감 존이 다르다면, 타자는 같은 2스트라이크에서도 전혀 다른 결정을 해야 합니다.
- 타자는 낮은 변화구를 더 오래 참아야 하지만, 존 하단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 투수는 헛스윙보다 판정 스트라이크를 설계하는 쪽으로 볼배합을 바꿀 수 있습니다.
- 포수의 프레이밍 가치는 줄고, 투구 궤적과 제구의 기계적 정확도가 더 중요해집니다.
근데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ABS는 심판의 오심 논란을 줄이려고 들어왔는데,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종류의 적응 과제를 만든 셈입니다. 공정성은 올라갔지만, 야구의 감각은 바뀌었습니다.
사이드암 이야기가 그냥 투정은 아닌 이유
최지만 발언 중 가장 센 대목은 사이드암 투수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ABS 도입 이후 사이드암 투수가 거의 전멸에 가깝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수치로 바로 단정하기보다 구조로 봐야 합니다. 사이드암 투수는 원래 좌우 무브먼트, 릴리스 포인트의 낯섦, 타자 시야를 흔드는 각도로 승부합니다. 그런데 ABS가 상하 존을 명확하게 잡아주면, 좌우로 휘는 공의 체감 위력이 예전과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사람 심판이 볼 때는 공이 휘어 들어오는 인상, 포수의 미트질, 타자의 자세가 판정 분위기에 영향을 줄 여지가 있었습니다. ABS에서는 그런 맥락이 줄어듭니다. 사이드암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에 강점으로 쓰던 요소 일부가 덜 보상받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더 정교한 사이드암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존을 정확히 통과시키는 투심, 백도어 슬라이더, 몸쪽 낮은 싱커를 안정적으로 던질 수 있다면 오히려 ABS 시대에 더 무서워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평균적인 사이드암 투수에게 요구되는 제구 난도가 높아진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국제대회 경쟁력 논쟁은 꽤 현실적이다
최지만이 던진 또 하나의 포인트는 국제대회입니다. KBO는 ABS를 전면적으로 운영하지만, 국제대회는 대체로 사람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에 기대는 흐름이 강합니다. 리그에서 1년 내내 ABS 기준으로 공을 보고 던진 선수들이, 대표팀에 가서는 다시 사람 심판의 존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건 타자와 투수 모두에게 영향을 줍니다. 타자는 시즌 중 스트라이크라고 받아들였던 낮은 공이 국제대회에서는 볼이 될 수 있고, 투수는 KBO에서 먹히던 상하 공략이 생각보다 콜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국제대회 심판이 넓게 잡는 바깥쪽 존에 적응하는 능력은 리그에서 덜 훈련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팬 입장에서는 ABS 덕분에 억울한 판정이 줄어든 장점도 큽니다. 경기 후반 결정적인 볼넷, 삼진 하나가 심판 콜로 흔들리는 장면을 덜 보는 건 분명한 변화입니다. 하지만 선수 육성의 방향까지 바뀐다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집니다. 리그 안에서 이기는 야구와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야구가 점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지만의 말이 남긴 장면
최지만은 결국 적응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ABS를 없애자는 단순한 주장이라기보다, 현장에서 뛰는 타자가 체감한 불균형을 공개적으로 꺼낸 발언에 가깝습니다. 특히 그는 고양 경기에서 ABS 판정 때문에 무릎을 꿇었다고 했고, 심판에게 어떻게 스트라이크냐고 물었다고 전했습니다. 그 장면은 타자의 눈, 심판의 역할, 시스템의 권한이 한순간에 부딪힌 상징처럼 보입니다.
KBO ABS는 이미 리그의 일부가 됐습니다. 팬들도 판정 그래픽과 기계 판정에 익숙해졌고, 구단도 거기에 맞춰 투수 운용과 타격 접근법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기술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그 기술이 어떤 야구를 만들고 있는지 꾸준히 확인하는 일입니다.
최지만의 작심 발언이 의미 있는 건 그래서입니다. 메이저리그 67홈런 타자가 한국 야구를 처음 겪으며 던진 말은, 개인의 불평을 넘어 리그의 방향을 되묻게 만듭니다. ABS가 공정한 판정을 만드는 장치라면, 동시에 더 다양한 투수와 타격 스타일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인지도 계속 봐야 합니다. 기록은 숫자로 남지만, 야구의 질감은 이런 논쟁 속에서 조금씩 바뀝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