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후쿠오카 공항에 내렸는데, 이상하게 하카타역 쪽으로 바로 가고 싶지 않았다. 캐리어를 끌고 큰 쇼핑몰과 줄 선 맛집 사이로 들어가면 편하긴 한데, 그날은 조금 비껴난 동네에서 밥 냄새와 생활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2박3일해외여행 일정을 후쿠오카 시내 중심이 아니라 기타큐슈와 모지코, 그리고 조용한 주택가 산책으로 잡았다.
비행 시간은 짧고, 이동은 기차로 1시간 안팎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분위기는 꽤 달랐다. 후쿠오카가 여행자의 속도라면, 기타큐슈 쪽은 출근하는 사람, 장 보러 나온 할머니, 방과 후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의 속도에 가까웠다. 솔직히 유명한 볼거리가 빽빽한 일정은 아니었다. 대신 하루에 1만 5천 보쯤 걷고도 머리가 복잡하지 않았다.
첫날, 고쿠라역 뒤편 골목에서 속도를 낮췄다
공항에서 하카타역으로 이동한 뒤 신칸센이나 특급열차를 타면 고쿠라역까지 금방이다. 나는 조금 아끼려고 보통 열차와 특급을 섞어 탔다. 시간은 더 걸렸지만 창밖으로 낮은 집과 작은 역이 계속 지나가서, 여행이 갑자기 생활 쪽으로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고쿠라역 앞은 생각보다 번화하다. 그런데 역에서 10분만 걸어 뒤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소리가 확 줄어든다. 낡은 찻집, 오래된 이자카야 간판, 문을 반쯤 열어둔 채 생선을 손질하는 가게가 이어졌다. 관광객이 몰리는 거리는 아니어서 사진을 찍을 때도 괜히 조심스러웠다. 누군가의 동네를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쿠라에서 좋았던 작은 동선
- 고쿠라역 뒤편 골목을 30분 정도 천천히 걷기
- 탄가시장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 먹기
- 무라사키강변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하기
- 저녁에는 숙소 주변 동네 식당에서 정식 먹기
탄가시장은 유명하긴 하지만, 낮 시간에 깊숙이 들어가면 시장 특유의 생활감이 더 먼저 보인다. 반찬을 고르는 사람들, 생선 가격을 묻는 목소리, 작은 식당의 국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카운터가 8자리쯤 되는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먹었다. 대단한 맛집이라는 말보다, 근처 회사원이 점심 먹으러 오는 곳이라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들었다.
둘째 날, 모지코는 항구보다 뒷골목이 더 조용했다
둘째 날 아침에는 모지코로 갔다. 고쿠라에서 전철로 15분 남짓이라 부담이 없다. 모지코 레트로 구역은 주말이면 사람들이 꽤 모이지만, 오전 9시 전후에는 공기가 다르다. 문을 열기 전의 가게들, 물비린내가 아주 약하게 남은 항구, 아직 뜨거워지기 전의 돌길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사실 모지코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유명 건물 앞이 아니라 주택가로 이어지는 낮은 언덕길이었다. 골목 폭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였고, 집 앞 화분에는 이름 모를 꽃이 촘촘히 놓여 있었다. 한국의 오래된 항구 동네와 닮은 듯하면서도, 창문 모양과 우편함 색깔이 달라서 계속 눈이 갔다.
점심은 야키카레를 먹었다. 모지코에 가면 흔히 먹는 메뉴라 너무 관광 코스 같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게를 잘 고르면 분위기가 과하지 않다. 나는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보다 골목 안쪽 작은 식당을 골랐다. 손님은 세 팀 정도였고, 주인은 주문을 받고 나서 오븐 앞을 조용히 오갔다. 치즈가 녹는 냄새가 퍼질 때 창밖으로 동네 주민이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갔다.
모지코에서 사람 적게 걷는 요령
- 오전 8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도착하기
- 레트로 건물 앞에서 오래 머물기보다 골목 방향으로 빠지기
- 항구 산책은 해 질 무렵보다 점심 전이 한산함
- 카페는 전망보다 좌석 간격과 동네 손님 비율을 보고 고르기
모지코에서 간몬해협 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물살이 꽤 빠르게 움직인다. 배도 지나가고, 반대편 시모노세키의 건물도 보인다. 그런데 그 풍경보다 좋았던 건 바람이었다. 말이 많아지는 여행지가 있고, 말이 줄어드는 여행지가 있는데 여기는 후자에 가까웠다.
셋째 날, 떠나기 전 주택가 목욕탕과 동네 빵집
마지막 날은 비행기 시간 때문에 멀리 가지 않았다. 대신 숙소 근처 주택가를 한 바퀴 더 걸었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뭔가 하나라도 더 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작은 빵집에서 우유빵과 커피를 사고,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20분쯤 먹었다.
고쿠라에는 오래된 목욕탕도 몇 곳 남아 있다. 내가 갔던 곳은 동전 락커와 낡은 체중계가 있는 곳이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사용법은 어렵지 않았다. 신발을 넣고, 요금을 내고, 조용히 씻고 나오면 된다. 물 온도는 한국 목욕탕보다 조금 뜨겁게 느껴졌고, 손님 대부분은 동네 어르신이었다.
이런 장소는 여행 앱 평점만 보고 고르기 어렵다. 사진이 화려하지 않고, 후기 수도 많지 않다. 그래도 동네를 걷다가 불이 켜진 간판을 보고 들어가면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2박3일해외여행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 항구 전망도, 유명 음식도 아니라 목욕탕 앞 자판기에서 마신 차가운 보리차였다.
이 일정이 맞는 사람과 조금 아쉬울 수 있는 사람
이 코스는 쇼핑을 많이 하거나 인증샷을 빼곡하게 남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조금 심심할 수 있다. 하루에 유명 명소를 5곳씩 찍는 방식도 아니다. 대신 이동 시간이 짧고, 골목을 걷는 시간이 길다. 예산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숙소를 고쿠라역 근처 비즈니스호텔로 잡고, 식사는 동네 정식집 위주로 먹으면 2박3일 동안 현지 지출을 꽤 낮출 수 있다.
내가 느낀 적당한 하루 리듬은 오전 산책 2시간, 점심, 오후 이동 1곳, 저녁 동네 식당 정도였다. 많이 걷는 날은 1만 8천 보 가까이 나왔고, 적게 걸은 날도 1만 보는 넘었다. 신발은 예쁜 것보다 발이 편한 쪽이 낫다. 그리고 일본 소도시 골목은 밤에 문 닫는 가게가 생각보다 많아서, 저녁은 너무 늦기 전에 먹는 편이 좋았다.
- 추천하는 사람: 조용한 항구, 시장, 주택가 산책을 좋아하는 여행자
- 잘 맞는 계절: 너무 덥지 않은 3월에서 5월, 10월에서 11월
- 숙소 위치: 고쿠라역 도보 10분 안쪽이면 이동이 편함
- 아쉬울 수 있는 점: 늦은 밤까지 놀 곳은 많지 않음
짧은 해외여행이라고 꼭 유명한 곳만 골라야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2박3일처럼 시간이 짧을수록 욕심을 덜어내면 동네의 표정이 더 잘 보인다. 고쿠라의 시장 냄새, 모지코의 바람, 주택가 목욕탕의 뜨거운 물 같은 것들은 사진으로 크게 남지는 않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며칠 지나면 이상하게 그런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다음에도 큰 간판보다 작은 골목 쪽으로 발이 먼저 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