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JTBC ‘톡파원 25시’ 208회를 보는데, 처음엔 솔직히 ‘박찬호 딸’이라는 수식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워낙 박찬호라는 이름이 크잖아요. 그런데 막상 뉴욕 편이 시작되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그 수식어보다 ‘뉴욕 생활 19년 차인 대학생 톡파원’이라는 쪽이 더 강하게 남더라고요. 유명인의 가족이 예능에 나올 때 생기는 어색함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현지 친구가 자기 동네 코스를 툭툭 알려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빠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꽤 자연스러웠다
이날 방송에서 박찬호의 첫째 딸 박애린은 일일 뉴욕 톡파원으로 등장했습니다. 2006년 8월생으로 알려진 그는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고, 방송에서는 뉴욕대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소개됐죠. 기존 뉴욕 톡파원 홍지훈과는 같은 학교 인연이 있는 친구 사이로 나왔고요.
스튜디오 반응도 재미있었습니다. ‘박찬호 딸’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당연히 놀라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 뒤로는 진행 실력 쪽으로 이야기가 넘어가요. 김숙이 잘한다고 반응하고, 이찬원도 지훈보다 낫다는 식으로 받아치면서 예능적인 웃음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부분이 은근 중요했어요. 그냥 유명인 가족을 세워놓고 신기해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코스를 끌고 가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거든요.
뉴욕 편이 좋았던 건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감 때문
뉴욕 랜선 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타임스스퀘어, 센트럴파크, 브루클린 브리지처럼 익숙한 그림이 먼저 떠오르죠. 그런데 이번 코스는 조금 달랐습니다. 손으로 뜯어 먹는 베이글, 아이스크림을 올린 콜라, 블랙핑크가 좋아한 것으로 알려진 후드티 매장, 레트로 감성 사진, 신상 뷰 맛집 같은 소재가 중심이었어요.
사실 이런 아이템은 누가 소개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갈립니다. 억지로 젊은 척하면 보는 사람이 먼저 민망해지고, 너무 설명식으로 가면 여행 정보 프로그램처럼 딱딱해져요. 박애린은 그 중간을 비교적 잘 탔습니다. ‘여기가 요즘 좋아요’라는 말을 과하게 포장하기보다, 본인이 실제로 알고 있는 동선처럼 보여줘서 부담이 덜했어요.
특히 베이글이나 아이스크림 콜라 같은 건 대단한 관광 명소라기보다, 요즘 SNS에서 짧게 소비되기 좋은 장면에 가깝습니다. 화면으로 보면 한 컷이 강하고, 실제 여행자가 따라가면 인증샷과 맛 경험이 동시에 남는 코스죠. 뉴욕을 거대한 도시로만 보여주지 않고,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놀고 먹고 찍는 방식으로 보여준 점이 이번 편의 매력이었습니다.
호불호는 있다, 젠지 코드가 낯설 수도 있으니까
다만 이 편이 모두에게 같은 재미로 다가오진 않을 것 같아요. 젠지 투어라는 콘셉트 자체가 빠른 유행, 인증 문화, 챌린지 감각에 기대고 있어서 이런 흐름에 관심이 없는 시청자라면 ‘그래서 저기가 왜 유명한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음식이나 패션 아이템이 짧게 지나가는 구성은 깊이 있는 도시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 있고요.
근데 ‘톡파원 25시’라는 프로그램의 장점을 생각하면 이 가벼움이 꼭 단점만은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은 여행 다큐가 아니라 스튜디오 토크와 랜선 현장감이 섞인 예능이잖아요. 그러니까 뉴욕의 역사나 건축보다, 지금 그 도시에서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장소를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편이 더 잘 맞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 뉴욕 편은 딱 그 방향이었어요.
- 유명인 가족 출연이라는 화제성이 확실했다
- 뉴욕대생, 19년 차 뉴요커라는 현지성이 있었다
- 베이글, 아이스크림 콜라, 후드티처럼 따라가기 쉬운 소재가 많았다
- 깊은 여행 정보보다는 예능용 트렌드 소개에 가까웠다
박애린의 톡파원 변신이 의외로 먹힌 이유
제가 보기엔 박애린의 강점은 ‘너무 방송인처럼 굴지 않은 것’이었어요. 첫 예능 등장이라면 긴장감이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대학생 느낌으로 읽혔습니다. 아버지 박찬호가 워낙 말이 많은 캐릭터로 유명해서 ‘투머치토커 DNA’ 같은 농담도 가능했지만, 방송 안에서는 과하게 치고 나오기보다 코스를 차분하게 이어가는 쪽에 가까웠고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세대 차이를 웃음으로 만든 방식입니다. 젠지 챌린지나 요즘 감성을 두고 스튜디오의 삼촌, 이모 세대가 어리둥절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너무 공격적이지 않았어요. ‘요즘 애들은 왜 저래’가 아니라 ‘아, 저런 식으로 노는구나’에 가까운 반응이라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스포 없이 말하면, 뉴욕의 얼굴이 조금 젊어졌다
이번 회차는 호주 시드니 2탄과 중국 상하이의 AI 로봇 데이트도 함께 구성됐습니다. 특히 상하이 쪽은 휴머노이드 로봇과 데이트라는 소재가 강해서 화면 장악력이 있었죠. 그 사이에서 뉴욕 편은 자칫 평범해질 수도 있었는데, 박애린이라는 새 얼굴과 젠지 동선 덕분에 색이 분명해졌습니다.
박찬호 딸이라는 키워드로 유입된 시청자도 많았겠지만, 방송을 끝까지 보면 남는 건 ‘뉴욕을 저렇게도 보여줄 수 있네’라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엄청난 사건이나 반전이 있는 편은 아니어도, 편하게 틀어놓고 요즘 뉴욕의 온도를 느끼기엔 꽤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다음에 또 나온다면 유명인의 딸이라는 소개는 조금 덜어내고, 박애린 본인의 취향이 더 많이 보이는 코스로 가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