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서점 에세이 코너를 지나가는데, 아직도 『언어의 온도』가 눈에 잘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더라고요. 2016년에 나온 책인데도 독자들이 계속 찾는 걸 보면, 이기주 작가의 글은 유행처럼 잠깐 지나가는 쪽보다는 오래 곁에 두고 읽는 문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기주 작가는 말, 글, 마음, 관계처럼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막상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주로 씁니다. 대표작으로는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글의 품격』, 『한때 소중했던 것들』, 『마음의 주인』, 『보편의 단어』 등이 있어요.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책 제목만 봐도 비슷해 보여서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살짝 헷갈릴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언어의 온도』부터 잡는 게 무난합니다
이기주 작가를 처음 읽는다면 가장 쉽게 권할 수 있는 책은 『언어의 온도』입니다. 예스24 도서 정보 기준으로 2016년 8월 19일 출간된 책이고, 170만 부 기념 에디션까지 나온 대표작입니다. 국내도서 1위를 12주 기록했다는 점도 이 책이 얼마나 넓게 읽혔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의 장점은 어렵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거창한 지식이나 복잡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읽히고, 한 편 한 편의 길이도 부담이 적습니다. 출퇴근길에 몇 쪽 읽어도 흐름이 크게 끊기지 않아요. 사실 에세이를 잘 안 읽는 사람에게는 이 점이 꽤 중요합니다. 책을 펼쳤는데 처음부터 너무 진지하고 무거우면 금방 덮게 되니까요.
『언어의 온도』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아주 익숙한 사실을 여러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독서 후에 남는 감각도 명확합니다. “내가 평소에 쓰는 말은 어떤 온도였을까”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관계와 대화가 고민이면 『말의 품격』이 잘 맞습니다
『말의 품격』은 제목 그대로 말의 태도에 가까운 책입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이기는 말보다 오래 남는 말을 고민하게 만드는 쪽이에요. 특히 직장, 가족, 친구 관계에서 말실수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이 더 와닿을 수 있습니다.
『언어의 온도』가 말과 글의 감각을 넓게 다룬다면, 『말의 품격』은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말의 무게에 조금 더 초점이 있습니다. 두 책을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있어요.
-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면 『언어의 온도』
- 대화 방식과 인간관계가 고민이라면 『말의 품격』
- 글쓰기 자체에 관심이 있다면 『글의 품격』
- 상실감이나 추억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한때 소중했던 것들』
솔직히 이기주 작가의 책은 빠르게 정보를 얻으려고 읽는 책은 아닙니다. 대신 문장 하나를 읽고 잠깐 멈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처럼 체크리스트를 뽑기보다,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표시해두고 나중에 다시 보는 방식이 잘 어울립니다.
책 고르는 기준은 지금 내 고민에 두면 편합니다
이기주 작가 책을 고를 때는 출간 순서보다 지금 내 상태를 기준으로 보는 게 더 편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말 때문에 피곤하다면 『말의 품격』이 먼저이고, 표현을 더 섬세하게 하고 싶다면 『글의 품격』이 좋습니다.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내 감정을 다루는 일이 어렵다면 『마음의 주인』 쪽이 더 맞을 수 있어요.
『마음의 주인』은 책 소개에서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 등으로 250만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 작가의 산문집으로 소개됩니다. 숫자만 보면 인기가 먼저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마음을 내가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았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에 가깝습니다.
짧게 읽는 독서법도 잘 맞습니다
이기주 작가의 글은 한 번에 몰아 읽어도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루에 몇 편씩 나눠 읽는 방식이 더 좋았습니다. 문장이 아주 어렵지는 않은데, 감정의 여백이 꽤 있는 편이라 너무 빨리 읽으면 맛이 덜합니다.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한 꼭지 읽은 뒤 잠깐 멈추는 정도가 잘 어울려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남는 문장을 따로 적어두는 것도 괜찮습니다. 단순히 예쁜 문장을 모으는 느낌보다는, 내 말투와 태도를 돌아보는 메모에 가깝게요. 예를 들면 “요즘 내가 자주 쓰는 차가운 말은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바꿔 말할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인지” 같은 식입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도 알고 읽으면 좋습니다
이기주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는 다정한 문장, 쉬운 표현, 일상적인 장면에서 얻는 위안을 장점으로 꼽습니다. 반대로 어떤 독자는 문장이 너무 감성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근데 이건 에세이라는 장르 자체의 특성과도 닿아 있습니다. 선명한 주장이나 정보 밀도를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고, 조용히 마음을 만지는 문장을 기대하면 잘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전권을 사기보다는 대표작 한 권을 먼저 읽어보는 편이 좋습니다. 『언어의 온도』를 읽고 문장 호흡이 잘 맞으면 『말의 품격』이나 『마음의 주인』으로 넘어가면 되고, 조금 더 글쓰기 쪽에 관심이 생기면 『글의 품격』을 고르면 됩니다.
저는 이기주 작가의 책을 “큰 사건을 바꾸는 책”이라기보다 “하루의 말투를 조금 늦춰주는 책”에 가깝게 봅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말이 빨라지고, 말이 빨라지면 마음보다 표현이 먼저 튀어나올 때가 많잖아요. 그런 날에 한두 쪽 읽으면 내가 방금 건넨 말의 온도를 다시 만져보게 됩니다. 그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어떤 책은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