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하와이여행을 다녀오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와이키키의 노을보다, 숙소 근처 슈퍼 앞 벤치에 앉아 있던 오후였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해변에서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바람 소리도 사람 목소리도 훨씬 낮게 들렸어요. 사실 하와이라고 하면 리조트, 쇼핑, 해변 사진이 먼저 떠오르지만,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생각보다 일상적인 장면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쪽이 더 좋았습니다.
이번 하와이여행은 유명한 명소를 차례대로 찍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한두 곳만 정하고, 나머지는 걷다가 마음이 가는 길로 빠졌습니다. 버스도 탔고, 작은 마켓에도 들어갔고, 해변 끝 바위에 앉아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는 걸 오래 봤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다 잠깐 그 동네에 몸을 빌려 사는 느낌에 가까웠어요.
와이키키에서 한 블록 더 걸었을 때
와이키키는 분명 편합니다. 숙소, 음식점, 쇼핑, 해변이 거의 한곳에 모여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람 적은 하와이여행을 원한다면 해변 바로 앞 길만 걷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저는 아침 7시쯤 쿠히오 애비뉴 뒤쪽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전날 밤의 북적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 커피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들, 작은 빨래방 앞에서 문을 여는 주인. 관광지의 화려함은 덜하지만 그만큼 눈이 편했습니다. 와이키키 중심에서 10분만 걸어도 소리가 달라집니다. 음악 소리 대신 신호등 알림음이 들리고, 기념품 가게 대신 동네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그 근처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테이블이 5개 정도뿐이었습니다. 메뉴판도 단순했고, 손님 대부분은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골목을 다시 걷다 보니, 유명한 전망대보다 이런 아침이 더 하와이다워 보였습니다.
카이무키에서 만난 낮은 언덕과 오래된 가게들
하와이여행 중 가장 마음이 느슨해졌던 동네는 카이무키였습니다. 와이키키에서 버스로 20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는데, 분위기는 꽤 다릅니다. 높은 호텔 대신 낮은 건물이 많고, 오래된 식당과 작은 상점이 길을 따라 이어집니다. 관광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걸음의 속도가 확실히 느립니다.
카이무키에서는 목적지를 촘촘히 잡지 않는 편이 좋았습니다. 저는 빵집 하나만 지도에 저장해두고 갔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주변 골목을 더 오래 걸었습니다. 언덕길이 살짝 있어서 걷다 보면 바다가 멀리 보이는 순간도 있습니다. 크게 감탄할 풍경은 아닌데, 생활권 사이로 파란색이 슬쩍 나타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 와이키키보다 소음이 적고, 낮 시간대 산책이 편했습니다.
- 가게 간격이 넓어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 언덕이 있어 편한 신발이 훨씬 낫습니다.
점심은 동네 식당에서 간단히 먹었습니다. 화려한 플레이팅은 아니었지만 양이 넉넉했고, 옆자리에서는 주민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사진으로 남기기보다 그냥 듣고 있는 편이 더 좋습니다. 여행자가 조용히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알라모아나 뒤편, 쇼핑몰 너머의 산책
알라모아나는 보통 쇼핑으로 많이 갑니다. 저도 처음에는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들렀습니다. 그런데 쇼핑몰 안보다 기억에 남은 건 뒤편으로 빠져나와 걸었던 길이었습니다. 큰 도로를 지나 주택가 쪽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하와이의 생활감이 꽤 또렷하게 보입니다.
특히 오후 4시 무렵이 좋았습니다. 햇빛이 조금 누그러지고, 차들은 많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흩어져 있습니다. 근처 공원으로 들어가면 돗자리를 펴고 쉬는 가족, 혼자 책을 읽는 사람,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걷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유명 해변처럼 인증사진을 찍는 분위기는 덜합니다. 그래서 더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여행에서 쇼핑몰은 피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중심에서 살짝 비껴난 동선을 만들면 사람이 많은 공간과 조용한 공간을 같은 날에 나눠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오전에는 필요한 물건을 사고, 오후에는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동 거리가 짧아서 체력도 덜 빠졌습니다.
사람 적은 해변은 이름보다 시간대가 중요했다
하와이에서 조용한 해변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덜 알려진 곳도 주말이면 붐비고, 유명한 곳도 이른 아침에는 놀랄 만큼 한산합니다. 저는 그래서 장소보다 시간대를 먼저 봤습니다. 오전 6시 30분부터 8시 사이, 그리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보다 조금 이른 오후 시간이 비교적 편했습니다.
제가 좋았던 건 해변의 중심이 아니라 끝부분이었습니다. 모래사장 한가운데는 늘 사람이 모이지만, 산책로 끝이나 방파제 가까운 곳은 조금 다릅니다. 앉을 만한 그늘이 있고, 물놀이보다 산책하는 사람이 많으면 분위기가 한결 차분합니다. 수영을 하러 간 날에도 저는 30분 정도만 물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젖은 수건을 말리며 멍하니 있었습니다.
조용한 해변을 고를 때 본 것들
- 주차장이 너무 큰 곳은 피했습니다. 차가 많이 들어오면 사람도 금방 늘어납니다.
- 근처에 대형 호텔이 바로 붙은 해변은 이른 아침에만 갔습니다.
-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있는지는 미리 확인했습니다. 조용해도 기본 시설은 중요했습니다.
- 바람이 강한 날은 오래 앉기보다 짧게 걷는 쪽이 나았습니다.
솔직히 하와이의 바다는 어디든 예쁩니다. 다만 조용히 보고 싶은 날에는 예쁜 곳보다 덜 바쁜 곳이 더 오래 남습니다. 사진을 많이 찍은 날보다,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둔 날의 공기와 색이 더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로컬처럼 걷고 싶다면 일정은 비워두는 쪽으로
하와이여행을 준비할 때 하루에 4곳, 5곳씩 넣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항공권도 숙소도 가볍지 않은 비용이라 더 많이 봐야 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직접 걸어보니, 이곳은 빽빽한 일정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15분, 가게 앞 그늘에서 물을 마시는 10분,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 나오는 시간까지 포함해야 하와이가 조금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하루 예산도 너무 촘촘히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비싼 식당을 예약하는 대신 동네 마켓에서 과일과 간단한 음식을 사서 공원에서 먹은 날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꽤 좋았습니다. 망고 하나, 차가운 음료 하나, 바람이 드나드는 나무 그늘. 돈을 적게 써서 좋았다기보다, 그만큼 여행의 속도가 낮아져서 좋았습니다.
하와이는 멀리서 보면 화려한 휴양지지만, 가까이서 걸으면 의외로 생활의 결이 잘 보이는 곳입니다. 낡은 버스 정류장, 오후의 세탁소, 아이를 데리러 가는 부모, 장바구니를 든 노인들. 그런 장면들 사이에 잠깐 섞여 걷다 보면 관광지를 놓쳤다는 생각이 덜 듭니다. 오히려 내가 보고 싶었던 하와이는 이런 쪽에 더 가까웠구나 싶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유명한 곳을 모두 빼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하루의 중심을 명소가 아니라 동네 하나에 두고 싶습니다. 아침에는 골목을 걷고, 낮에는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후에는 바다가 살짝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는 식으로요. 하와이여행은 멋진 장면을 많이 모으는 일보다, 낯선 동네에서 내 걸음이 조금 느려지는 순간을 만나는 일에 더 가까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