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올림픽 관련 영상을 보다가 문득 ‘근대올림픽창시자’라는 말이 생각보다 자주 나오는데, 정작 그 사람이 어떤 이유로 올림픽을 다시 만들었는지는 흐릿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름은 피에르 드 쿠베르탱.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역사와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그대로 복원했다기보다, 19세기 말 유럽 사회에 맞는 새로운 국제 스포츠 축제를 만든 사람에 가깝습니다.
근대올림픽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을 기억하는 방법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186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귀족 집안 출신이었지만 단순히 스포츠를 즐긴 사람이라기보다, 교육 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었어요. 당시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 패배 이후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쿠베르탱은 프랑스 청소년 교육에 체력, 규칙, 협동심이 부족하다고 봤고, 영국 학교의 스포츠 교육을 눈여겨봤습니다.
그가 중요하게 본 건 메달보다 ‘스포츠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였습니다. 학교에서 운동을 통해 몸만 단련하는 게 아니라, 페어플레이와 자기 절제, 타인과의 경쟁을 배우게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근대올림픽창시자라는 표현은 단순히 대회를 만든 사람이라는 뜻을 넘어, 스포츠를 교육과 국제 교류의 도구로 본 사람이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습니다.
고대 올림픽과 근대 올림픽은 무엇이 달랐을까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 무렵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시작된 제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 행사 성격이 강했고, 참가 범위도 지금처럼 전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쿠베르탱이 꿈꾼 근대 올림픽은 국가와 언어를 넘어 선수들이 모이는 국제 대회였습니다. 이 차이를 알면 왜 그를 ‘부활시킨 사람’이 아니라 ‘창시자’로 부르는지 감이 잡힙니다.
-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중심의 제전 성격이 강했습니다.
- 근대 올림픽은 국가 간 교류와 국제 스포츠 대회 성격이 큽니다.
- 고대에는 종교와 도시국가의 명예가 중요했고, 근대에는 교육·평화·국제주의가 강조됐습니다.
- 근대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해 지속 운영되는 구조를 갖췄습니다.
쿠베르탱은 1894년 파리 소르본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 즉 IOC 창설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 흐름만 기억해도 핵심 연도는 꽤 쉽게 잡힙니다. 1894년 IOC, 1896년 아테네. 시험이나 상식 퀴즈에서도 자주 나오는 조합입니다.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만든 진짜 이유
사실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만든 이유를 단순히 ‘스포츠 대회를 열고 싶어서’라고 보면 조금 아쉽습니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젊은 세대가 더 강하고 균형 잡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여러 나라의 청년들이 경기장에서 만나 경쟁하면, 서로를 적으로만 보는 분위기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현실의 올림픽은 언제나 이상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국가 간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기도 했고, 정치적 갈등이 경기장으로 들어온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근대올림픽창시자 쿠베르탱이 처음 내세운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스포츠는 이기는 사람만 빛나는 무대가 아니라, 참가와 도전 자체가 의미 있는 경험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말의 배경
많은 사람이 쿠베르탱을 떠올릴 때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문장을 함께 기억합니다. 정확한 표현과 유래를 두고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이 말이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과 잘 맞는 건 사실입니다. 그는 승리보다 노력, 기록보다 태도, 개인의 영광보다 인류의 교류를 크게 봤습니다. 요즘 스포츠 뉴스에서는 메달 개수부터 세는 일이 많지만, 올림픽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그보다 넓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근대올림픽창시자를 외울 때 헷갈리기 쉬운 부분
근대올림픽창시자를 공부하다 보면 몇 가지가 자주 헷갈립니다. 먼저 쿠베르탱이 첫 올림픽의 개최국 사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프랑스인이었고, 첫 근대 올림픽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습니다. 고대 올림픽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아테네가 선택된 것이죠.
또 하나는 올림픽 오륜기입니다. 오륜기는 쿠베르탱이 구상한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섯 개의 고리가 세계 여러 대륙의 연결을 나타낸다고 설명됩니다. 색상 자체도 여러 나라 국기에 들어가는 색을 폭넓게 담고 있어 국제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상징은 올림픽이 단순한 경기 묶음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적 행사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이름: 피에르 드 쿠베르탱
- 국적: 프랑스
- 핵심 역할: IOC 창설 주도, 근대 올림픽 부활과 제도화
- 중요 연도: 1894년 IOC 창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 중요 관점: 스포츠를 통한 교육, 교류, 평화의 이상
지금 올림픽을 볼 때 쿠베르탱을 떠올리는 방법
요즘 올림픽은 규모가 정말 큽니다. 수많은 종목, 방송 중계, 후원 기업, 개최 비용, 국가별 순위까지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처음의 이상이 흐려져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수 한 명이 부상 뒤 다시 출전하거나, 꼴찌로 들어온 선수가 관중의 박수를 받는 장면을 보면 쿠베르탱이 말하려 했던 가치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대올림픽창시자를 외울 때는 이름만 붙잡기보다 ‘프랑스 교육자 쿠베르탱이 스포츠로 세계 청년들을 만나게 하려 했다’고 기억하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1896년 아테네에서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지금도 4년마다 세계의 시선을 모읍니다. 메달 경쟁도 재미있지만, 그 뒤에 있는 출발점을 알고 보면 개막식의 선수 입장이나 작은 경기 하나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스포츠가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는 믿음, 그 오래된 생각이 아직 올림픽을 움직이는 힘으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