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고3 학부모 모임 이야기를 듣는데, 수시 때보다 정시가 더 단순할 줄 알았다는 말이 꽤 많이 나오더라고요. 수능 성적으로 대학을 고르는 일이니 쉬울 것 같지만, 막상 표준점수와 백분위, 영어 감점, 탐구 변환표준점수, 가군·나군·다군까지 겹치면 머리가 금방 복잡해집니다.
정시는 대체로 수능 중심 전형입니다. 대교협이 공개한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 기준으로 정시 모집인원은 68,134명, 전체 모집의 19.7% 정도입니다. 또 정시 안에서도 수능 위주 선발이 92.7%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내신보다 수능 영향이 큰 편이지만, 대학마다 성적을 계산하는 방식이 달라서 단순히 총점만 보고 지원하면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정시를 이해하려면 군부터 잡기
정시에서 가장 먼저 볼 것은 가군, 나군, 다군입니다. 일반적으로 수험생은 각 군에서 1곳씩, 총 3곳에 지원하는 흐름으로 생각하면 편합니다. 다만 대학마다 모집군이 다르고, 같은 대학이라도 학과에 따라 군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 경영학과는 나군, 같은 대학 공학계열은 가군에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인기 대학이 특정 군에 몰리면 그 군의 선택지가 갑자기 빡빡해집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학 이름만 적는 것보다, 가·나·다군 칸을 만들어 놓고 후보를 나눠 보는 게 훨씬 현실적입니다.
- 가군: 첫 번째 지원 카드로 안정 또는 소신을 배치하기 좋음
- 나군: 주요 대학과 모집단위가 많이 몰리는 경우가 있어 경쟁 구조 확인 필요
- 다군: 모집인원이 적거나 경쟁률 변동이 큰 학과가 많아 신중하게 접근
성적표에서 봐야 할 숫자
수능 성적표를 받으면 등급만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정시에서는 등급보다 표준점수, 백분위, 대학별 환산점수가 더 중요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국어와 수학은 표준점수 반영 대학이 많고, 탐구는 백분위나 변환표준점수를 쓰는 대학도 있습니다.
같은 평균이어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
백분위 평균이 88인 학생 두 명이 있다고 해도 결과가 같지 않습니다. 한 학생은 국어가 높고 수학이 낮을 수 있고, 다른 학생은 수학이 높고 탐구가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수학 반영비율이 35%인 자연계열 모집단위라면 두 번째 학생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국어와 영어 감점이 큰 인문계열에서는 첫 번째 학생이 더 나은 환산점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영어도 은근히 차이를 만듭니다. 어떤 대학은 영어 1등급과 2등급 차이가 1점 안팎이라 부담이 작지만, 어떤 대학은 2등급부터 감점 폭이 커집니다. 한국사도 대부분 감점 폭이 크지는 않지만, 기준 등급 아래로 내려가면 작은 점수가 아쉬운 순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지원 전략은 안정·적정·상향으로 나누기
정시 원서는 보통 3장입니다. 그래서 세 장을 모두 상향으로 쓰면 불안하고, 모두 안정으로 쓰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많이 쓰는 방식은 안정 1장, 적정 1장, 상향 1장입니다. 물론 재수 가능성, 원하는 전공의 확실성, 집에서 통학 가능한 거리 같은 개인 조건에 따라 비율은 달라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작년 입결을 그대로 믿지 않는 태도입니다. 입결은 그해 지원자들의 선택 결과입니다. 모집인원이 줄면 컷이 올라갈 수 있고, 반대로 특정 학과의 선호가 꺾이면 예상보다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2027학년도처럼 정시 인원이 전년도보다 줄어든 해에는 모집단위별 인원 변화가 더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안정: 내 환산점수가 최근 합격선보다 여유 있는 곳
- 적정: 합격선 근처지만 반영비율이 나에게 잘 맞는 곳
- 상향: 합격 가능성은 낮아도 꼭 도전하고 싶은 곳
원서 접수 전 체크할 것
2027학년도 기준 정시 원서접수는 2027년 1월 4일부터 1월 7일 사이 대학별로 3일 이상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형 기간은 가군 1월 11일부터 17일, 나군 1월 18일부터 24일, 다군 1월 25일부터 31일로 잡혀 있습니다. 일정은 대학별 모집요강에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원서 넣기 전에는 모집요강에서 세 가지를 꼭 봐야 합니다. 첫째,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입니다. 둘째, 영어와 한국사 감점 방식입니다. 셋째, 탐구 과목 반영 방식입니다. 과학탐구 2과목 평균인지, 상위 1과목인지, 사탐·과탐 제한이 있는지에 따라 지원 가능성이 꽤 달라집니다.
실기나 면접이 붙는 모집단위도 있습니다. 예체능, 사범대, 일부 특수 모집단위는 수능만 보고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수능 점수로 줄을 세운 뒤 면접이나 실기에서 뒤집히는 일도 생깁니다. 수능 100%인지, 수능과 실기를 합산하는지부터 확인해야 괜한 착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정시 초보가 자주 놓치는 부분
정시는 눈치 싸움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계산 싸움에 더 가깝습니다. 경쟁률이 낮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높은 경쟁률이라고 바로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 점수가 그 대학의 계산식에서 얼마나 살아나는지입니다.
예를 들어 국어 30%, 수학 40%, 탐구 30%를 반영하는 학과와 국어 25%, 수학 25%, 영어 20%, 탐구 30%를 반영하는 학과는 같은 성적표를 완전히 다르게 평가합니다. 수학이 강한 학생은 첫 번째 구조가 편하고, 영어가 1등급인 학생은 두 번째 구조에서 손해를 덜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충원 합격입니다. 최초 합격선만 보면 무서워 보여도, 충원까지 보면 실제 합격 가능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상위권 대학의 특정 군에서는 연쇄 이동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2~3년의 최초 합격선, 최종 등록자 기준, 충원 인원을 함께 보는 편이 좋습니다.
정시는 끝까지 차분한 사람이 유리합니다. 수능이 끝난 직후에는 성적이 아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대학별 환산점수로 다시 보면 의외로 맞는 카드가 나옵니다. 내 점수를 억지로 좋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반대로 등급 몇 개만 보고 너무 빨리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세 장의 원서를 내가 납득할 수 있게 배치하는 것, 그게 정시 준비의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