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여자배구 FA 시장 흐름을 다시 보다가 IBK기업은행 이름에서 시선이 꽤 오래 멈췄습니다. 승점 57점으로 시즌을 끝냈는데도 봄배구 문턱에서 밀린 팀이 새 감독을 데려오고, 그 첫 숙제처럼 세터를 바라봤다는 게 숫자로도 선명했거든요.
팬들 사이에서 '마사베 IBK'라고도 검색되는 이름은 정확히는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입니다. 일본 여자대표팀을 지휘하며 올림픽 메달과 국제무대 성과를 만든 세터 출신 지도자죠. 그래서 IBK가 염혜선 영입에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선수 보강설보다 훨씬 배구적인 냄새가 납니다. 팀의 방향을 어디서부터 바꾸려 했는지가 보이니까요.
승점 57점이 남긴 세터 갈증
IBK의 2025-2026시즌은 묘하게 아쉬웠습니다. 최종 성적은 18승 18패, 승점 57점. 3위 GS칼텍스, 4위 흥국생명과 승점이 같았지만 승수에서 밀리며 5위가 됐습니다. 이 정도 간격이면 한두 경기의 흐름, 한두 세트의 선택, 20점 이후 볼 배급 하나가 순위를 바꿉니다.
배구에서 세터는 기록지에 늘 화려하게 찍히는 포지션은 아닙니다. 그런데 좋은 세터가 있는 팀은 공격수가 조금 늦게 떠도 때릴 코스가 생기고, 리시브가 흔들려도 랠리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IBK가 그 시즌 막판까지 버틴 힘은 분명 있었지만, 상위권과 같은 승점에서 마지막 문을 열지 못했다는 건 운영 안정감에 대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김다인 다음에 염혜선이 보였던 흐름
IBK가 먼저 강하게 바라본 카드는 김다인이었습니다. 현대건설은 2026년 4월 김다인과 3년, 보수 총액 5억4000만 원 규모로 재계약했습니다. 여자부 최고 대우 라인까지 채운 계약이었고, 그만큼 리그 전체가 세터 가치를 어떻게 보는지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김다인이 잔류하자 자연스럽게 시선은 염혜선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염혜선은 2008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출신이고, 2024-2025시즌에는 여자부 베스트7 세터로도 인정받았습니다. 2025-2026시즌에는 부상 여파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지만, 정관장이 2026년 4월 21일 염혜선과 FA 재계약을 발표하면서 영입전은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염혜선의 값어치는 숫자 너머에 있다
염혜선을 원하는 팀이 있었다면 이유는 꽤 분명합니다. 베테랑 세터는 단순히 토스를 올리는 선수가 아니라, 공격수들의 하루 컨디션을 읽고 경기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마나베 감독처럼 세터 출신 지도자가 팀을 맡는다면, 코트 위에서 자신의 배구 언어를 바로 번역해줄 세터가 더 필요했을 겁니다.
IBK가 노렸을 법한 지점
- 20점 이후 안정적인 볼 배급으로 범실을 줄이는 운영
- 미들블로커 활용 빈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경험
- 외국인 공격수 의존도를 상황에 따라 낮추는 경기 설계
- 젊은 세터진에게 기준점이 되어줄 베테랑 존재감
근데 염혜선 카드는 매력과 리스크가 같이 있었습니다. 부상 회복 상태는 당연히 가장 큰 체크 포인트였고, 정관장 입장에서도 2024-2025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과 준우승 흐름을 함께 만든 세터를 쉽게 놓기 어려웠습니다. 선수 등록 보수 흐름에서도 염혜선은 여전히 세터 상위권 가치로 평가받았습니다.
지금 IBK가 안고 가야 할 그림
2026-2027시즌 선수 등록 기준으로 IBK 세터진은 박은서, 김하경, 최연진 체제입니다. 여기에 이주아, 최정민 같은 중앙 자원, 육서영과 이소영, 황민경이 있는 측면 라인, 그리고 외국인 공격수 축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좋은 공격수 명단이 있어도 세터 손끝에서 템포가 끊기면 전력은 생각보다 쉽게 평범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IBK의 염혜선 영입 시도를 실패한 소문 하나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나베 체제가 팀을 어디서부터 고치려 했는지 보여준 단서에 가깝습니다. 승점 57점짜리 5위 팀은 완전히 새로 만들 팀도, 그대로 두면 되는 팀도 아닙니다. 딱 한 포지션의 안정감이 시즌 전체의 표정을 바꿀 수 있는 팀입니다.
염혜선은 정관장에 남았고, IBK는 내부 세터진으로 새 시즌을 준비합니다. 이제 흥미로운 건 누가 왔느냐보다 누가 마나베의 배구를 코트에서 구현하느냐입니다. 만약 IBK가 세터 문제를 내부 성장으로 풀어낸다면, 그건 영입 실패담이 아니라 팀 체질이 바뀌는 꽤 근사한 시즌 서사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