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춘천에 갔는데, 이상하게 닭갈비 골목도 호수 전망대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대부분 익숙한 방향으로 움직였고, 나는 괜히 그 반대쪽으로 걸었다. 여행이라고 하면 꼭 무언가를 봐야 할 것 같지만, 어떤 날은 동네 사람이 장바구니 들고 지나가는 길을 따라 걷는 쪽이 훨씬 오래 남는다.
역 앞에서 바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춘천역에 도착하면 보통 택시를 타거나 큰길을 따라 이동한다. 그런데 나는 역 앞에서 10분쯤 천천히 서 있었다. 사람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보려고 했다. 관광객은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몰렸고, 동네 사람들은 조금 더 작은 횡단보도와 골목을 이용했다. 그래서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걷다 보니 간판이 큰 가게보다 세탁소, 오래된 미용실, 작은 분식집이 먼저 보였다. 이런 곳은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신 공기가 있다. 낮은 건물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문 앞 화분은 누가 매일 물을 준 흔적이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장면을 보려고 여행을 다닌다.
약사천 근처 골목은 느리게 걸을수록 좋았다
그날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약사천 근처였다. 아주 화려한 산책길은 아니었다. 물길 옆으로 동네 길이 이어지고, 벤치 몇 개와 낮은 다리가 있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았다. 30분 정도 걸었는데 마주친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다. 대부분 운동화를 신은 주민들이었고, 말소리보다 자전거 바퀴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여행지에서 사람이 적다는 건 단순히 한산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내 속도를 되찾을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붐비는 장소에서는 자꾸 옆 사람의 걸음에 맞춰진다. 사진을 찍어도 뒤에 누가 걸릴까 신경 쓰게 된다. 그런데 이런 동네 길에서는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아무것도 없는 벽 앞에서도 잠깐 서 있을 수 있다.
작은 가게가 남긴 생활감
약사천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빵집 하나가 보였다. 유명한 맛집처럼 줄이 길지는 않았고, 유리문 안쪽에 식빵과 단팥빵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커피 한 잔을 같이 사서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가격은 관광지 중심가보다 확실히 낮았고, 맛은 대단하다기보다 편안했다. 그 편안함이 그날의 춘천과 잘 맞았다.
솔직히 이런 여행은 실패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남들에게 보여줄 대표 사진이 적고, 지도에 별표를 많이 찍을 일도 없다. 대신 기억은 더 촘촘하다. 어떤 아주머니가 가게 셔터를 올리던 소리, 강아지를 데리고 천천히 걷던 노인, 바람에 흔들리던 세탁소 비닐 덮개 같은 것들이 오래 남는다.
유명 장소와 비교하면 무엇이 다를까
춘천의 유명한 장소들은 분명 매력이 있다. 접근성이 좋고, 먹을거리도 많고,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실패 확률이 낮다. 다만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는 여행이 조금 납작해진다. 어디를 가도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같은 메뉴를 먹고, 같은 길을 지나게 된다.
반대로 동네 골목 여행은 조금 불친절하다. 안내판이 친절하지 않고, 볼거리가 몰려 있지도 않다. 그래서 걷는 사람이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보통 한 지역에서 2킬로미터 안팎만 걷는다. 너무 넓게 잡으면 이동이 일이 되고, 너무 짧으면 동네 분위기가 잡히기 전에 끝난다. 1시간 30분 정도면 골목, 하천, 시장 근처를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다.
- 평일 오전이나 오후 3시 전후가 가장 조용했다.
- 큰길보다 학교, 하천, 작은 시장 옆 골목이 생활감이 좋았다.
- 카페보다 동네 빵집이나 분식집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 사진은 적게 찍고 걷는 시간을 길게 두는 편이 잘 맞았다.
가는 길보다 머무는 시간이 중요했다
이번 춘천 여행에서 좋았던 건 목적지를 많이 만들지 않은 점이었다. 지도에 표시한 곳은 역, 약사천, 오래된 시장 근처 정도였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정했다. 좁은 길이 보이면 들어가고, 빛이 좋은 담벼락이 있으면 잠깐 멈췄다. 이런 방식은 계획이 빈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지역을 더 잘 보게 만든다.
근데 아무 골목이나 무작정 들어가는 건 조심해야 한다. 너무 늦은 시간은 피하고, 주거지 안쪽에서는 사진을 아끼는 편이 좋다. 열린 가게와 공공 산책로, 시장 주변처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길을 중심으로 걷는 게 편했다. 로컬 여행은 낯선 동네를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잠시 빌려 걷는 일에 가깝다고 느낀다.
조용한 여행이 남긴 것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사진첩을 봤더니 멋진 풍경 사진은 거의 없었다. 대신 벤치에 놓인 종이컵, 낮은 다리 아래 물빛, 오래된 간판 같은 장면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한 여행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이런 날이 좋다. 유명한 것을 확인하고 오는 여행보다, 한 동네의 평범한 오후를 조금 나눠 가진 느낌이 오래 간다.
다음에 춘천을 다시 간다면 또 유명한 곳을 조금 비껴 걸을 것 같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낯선 동네의 생활 속으로 너무 깊지 않게 들어가 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사람이 적은 길에서는 도시가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