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못 받고 이사한 임차권등기 물건, 경매장에서 직접 걸러본 이야기

보증금 못 받고 이사한 임차권등기 물건, 경매장에서 직접 걸러본 이야기

얼마 전 입찰장 앞에서 30대 초반 투자자 한 분이 제게 등기부를 들고 와서 물었습니다. “선순위 임차인이 임차권등기 해놓은 건데, 이거 그냥 보증금만 계산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솔직히 그 말 듣고 등골이 살짝 서늘했습니다. 임차권등기는 초보가 보기엔 등기부에 적힌 한 줄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그 한 줄 때문에 낙찰자가 수천만 원을 더 떠안기도 하고, 반대로 잘 읽으면 위험한 물건을 미리 피할 수도 있습니다.

임차권등기는 쉽게 말해 보증금을 못 받은 임차인이 이사를 가도 기존 집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지키기 위해 법원에 신청하는 장치입니다. 임대차가 끝났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주고, 임차인은 새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이때 그냥 짐 빼고 전입을 옮기면 기존 집에서 가진 힘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 결정으로 등기부에 “이 집에 보증금 못 받은 임차인이 있다”는 표시를 남기는 겁니다.

임차권등기는 임차인 보호장치지만, 낙찰자에겐 경고등입니다

제가 경매 물건을 볼 때 임차권등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보는 건 금액이 아닙니다. 순서입니다. 등기부에서 임차권등기가 언제 들어왔는지, 그 임차인의 전입일과 확정일자가 언제인지, 말소기준권리보다 앞서는지부터 봅니다. 경매는 금액보다 순서가 먼저입니다. 8천만 원짜리 보증금보다 3천만 원짜리 선순위 보증금이 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정가 2억 원짜리 빌라가 있고, 근저당 설정일이 2021년 5월 10일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임차인의 전입이 2020년 11월 3일, 확정일자가 2020년 11월 4일이고, 나중에 보증금을 못 받아 임차권등기까지 해놨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임차인이 배당에서 전액 못 받으면 남은 보증금을 낙찰자가 인수할 수 있습니다. 낙찰가를 1억 4천만 원으로 잘 쓴 줄 알았는데, 선순위 보증금 잔액 4천만 원을 추가로 부담하면 계산이 박살 납니다.

반대로 임차권등기가 후순위이고, 배당으로 소멸되는 구조라면 낙찰자 입장에서 큰 문제가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임차권등기 자체가 무조건 위험하다는 말도 틀렸고, 아무 문제 없다는 말도 위험합니다. 이 물건의 권리 순서 안에서 어떤 위치에 박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초보가 제일 많이 놓치는 건 ‘신청일’이 아니라 ‘등기된 날’입니다

현장에서 정말 자주 보는 착각이 있습니다. 임차인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한 날만 보고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효력 판단에서 눈으로 확인해야 할 건 실제 등기부에 기재된 상태입니다. 신청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법원 결정이 나고, 등기부에 임차권등기가 올라와야 제 기능을 합니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보증금을 못 받은 상태에서 이사를 가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 신청만 해놓고 바로 전출하는 건 조심해야 합니다. 등기부에 실제로 기재된 것을 확인한 뒤 움직이는 게 안전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구조상 대항력은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이 맞물려 있고, 우선변제권은 대항력과 확정일자가 붙어야 힘이 생깁니다. 이 연결고리가 끊기면 생각보다 복구가 까다롭습니다.

제가 예전에 본 물건 중에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임차인은 보증금 1억 2천만 원을 못 받고 나갔고, 임차권등기도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뜯어보니 전출이 먼저였고, 등기가 나중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단순히 “임차권등기가 있으니 보호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날짜 싸움이 됩니다. 경매 기록, 전입세대열람, 주민등록 관련 자료, 배당요구 내역까지 맞춰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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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전에 이 5가지는 꼭 맞춰봅니다

저는 임차권등기 물건을 볼 때 엑셀보다 종이에 먼저 써봅니다. 날짜 순서가 한눈에 들어와야 실수가 줄어듭니다. 특히 빌라, 다가구, 오피스텔은 비슷한 호수와 비슷한 보증금이 섞여 있어서 머리로만 계산하면 꼭 하나씩 빠집니다.

  • 첫째, 말소기준권리 날짜를 확인합니다. 근저당, 가압류, 담보가등기 중 무엇이 기준인지 먼저 잡습니다.
  • 둘째, 임차인의 전입일과 확정일자를 봅니다. 말소기준권리보다 빠르면 인수 가능성을 더 세게 의심합니다.
  • 셋째, 임차권등기 기입일을 봅니다. 신청일이 아니라 등기부에 실제 올라온 날을 확인합니다.
  • 넷째, 배당요구 여부와 배당 가능 금액을 계산합니다. 선순위라도 배당에서 전액 받으면 낙찰자가 떠안을 금액은 줄어듭니다.
  • 다섯째, 현재 점유 상태를 확인합니다. 임차권등기 후 이사를 갔는지, 아직 사람이 사는지에 따라 명도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하나 더 붙이면, 임차권등기가 되어 있는 집에 새 임차인이 들어간 경우도 조심해야 합니다. 법에는 임차권등기 이후 새로 들어온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를 제한하는 취지가 있습니다. 새 임차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이미 등기부에 위험 신호가 올라온 집에 들어간 셈입니다. 그래서 전세나 월세를 구하는 사람도 등기부를 대충 보면 안 됩니다.

임차권등기 말소 요구는 순서가 있습니다

낙찰 후에 임차인이 “보증금 먼저 달라, 그다음 말소하겠다”고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초보 낙찰자는 등기부터 지우라고 밀어붙이기도 하는데, 실무에서는 보증금 반환 문제가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임차권등기는 임차인이 돈을 못 받아서 붙잡고 있는 안전핀에 가깝습니다. 돈도 안 주고 안전핀부터 빼라는 말은 현장에서 잘 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임차인이 무조건 맞다는 뜻은 아닙니다. 배당으로 이미 전액 변제됐는데도 말소를 미루거나, 실제 권리보다 과하게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낙찰자는 배당표, 보증금 잔액, 지연손해금 주장 여부, 관리비 미납, 원상회복 분쟁까지 따로 봐야 합니다. 명도합의서를 쓸 때도 “언제까지 나간다”만 쓰면 부족합니다. 보증금 잔액 지급, 임차권등기 말소 서류 협조, 열쇠 인도, 공과금 정산을 같이 넣어야 뒤탈이 적습니다.

제가 겪은 한 사건은 낙찰가 1억 6천만 원짜리 오피스텔이었습니다. 선순위 임차보증금이 9천만 원, 배당 예상액이 7천만 원 정도였고, 남는 2천만 원을 낙찰자가 인수하는 구조였습니다. 겉으로는 시세보다 싸 보였지만 취득세, 법무비, 명도비, 체납관리비, 대출이자까지 더하니 실제 매입가는 거의 시세에 붙었습니다. 싸게 산 게 아니라 위험을 싸게 보상받은 정도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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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권등기 물건은 싸서 보는 게 아니라, 감당 가능한지 보는 겁니다

초보 투자자에게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임차권등기 있는 물건은 수익률 계산 전에 최악의 비용부터 적으라고요. 선순위 보증금 잔액을 전부 인수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버틸 수 있는지, 명도가 두세 달 밀려도 이자 감당이 되는지, 대출이 예상보다 적게 나와도 잔금을 넣을 수 있는지 봐야 합니다.

임차인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보증금을 못 받았는데 이사 날짜가 다가오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도 전출부터 해버리면 내 권리를 스스로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그런 상황에서 쓰라고 만든 제도입니다. 다만 법원 신청, 등기 기입, 실제 전출 순서를 헷갈리면 보호장치가 반쪽이 됩니다.

경매장에서 돈을 잃는 사람들은 대부분 복잡한 법리를 몰라서만 지는 게 아닙니다. 날짜 하나, 순서 하나, 등기부 한 줄을 “대충 괜찮겠지” 하고 넘겨서 집니다. 임차권등기는 딱 그런 종류의 신호입니다. 겁먹고 무조건 피할 필요는 없지만,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저는 아직도 임차권등기 물건을 보면 입찰가를 쓰기 전에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날짜표부터 다시 봅니다. 그 작은 멈춤이 몇천만 원짜리 실수를 막아줄 때가 많았습니다.

보증금 못 받고 이사한 임차권등기 물건, 경매장에서 직접 걸러본 이야기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