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의 근현대사를 품은 구 공주읍사무소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조명하는 기획전시 세계에 새겨진 혁명의 기록이 열렸다. 전시는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문서를 따라 변화와 개혁, 협치와 상생, 자주와 항전, 정의와 인권의 의미를 차례로 살펴보도록 구성됐다.
전시장에서는 동학농민군만이 아니라 조선 정부와 관군, 지역 유생 등 서로 다른 주체가 남긴 기록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하나의 사건을 어느 한쪽의 시선에만 가두지 않고 다양한 입장과 가치관을 통해 이해하도록 한 점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었다.
공주 근현대사를 품은 공간
전시가 마련된 구 공주읍사무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우체국길 8에 자리한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건립된 서양식 건물로, 1934년부터 공주읍사무소로 사용됐다. 1986년부터는 공주시 청사로 활용됐으며, 2009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랜 세월 행정 공간으로 쓰인 건물에는 공주의 근현대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근대식 건축물의 외관과 내부 구조를 살필 수 있으며, 2층은 시민과 방문객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는 이 공간이 역사 기록을 마주하는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 시설 | 구 공주읍사무소 |
|---|---|
|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우체국길 8 |
| 하절기 운영 | 3월부터 10월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
| 동절기 운영 | 11월부터 2월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
| 휴게시간 |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
| 입장료와 주차비 | 무료 |
세계에 새겨진 혁명의 기록
세계에 새겨진 혁명의 기록은 2026년 9월 1일부터 9월 27일까지 진행된 순회 기획전시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열린 전시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의미를 관람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주요 기록을 주제별로 배치했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등재는 동학농민혁명이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평가받았다는 점과 그 기록이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유산이 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유산을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현재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제시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모두 185건이다. 농민군이 작성한 문서는 물론 조선 정부와 관군, 지역 유생 등이 남긴 기록까지 포함됐다. 이 같은 구성은 당시의 상황을 여러 주체의 시선으로 비교하고, 각 기록에 담긴 생각과 판단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평등한 세상을 향한 개혁
첫 번째 전시 주제는 변화와 개혁의 기록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였다. 조선 후기의 혼란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각 집단이 시대의 위기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신분과 빈부의 차이에 따라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기록으로 풀어냈다.
이 공간에서는 사발통문과 무장포고문이 핵심 자료로 소개됐다. 사발통문은 1893년 11월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주도 세력이 고부 지역에서 봉기를 계획하며 작성한 문서다. 사발을 엎어놓은 듯 원을 그린 뒤 그 둘레에 참여자들의 이름을 적은 독특한 형태가 눈에 띈다.
이름을 원형으로 배치한 문서 옆에는 무장포고문이 자리했다. 무장포고문은 탐관오리와 부패한 관리가 백성을 괴롭히고 수탈하던 상황에서 봉기에 나선 이유를 대외적으로 밝힌 선언문이다. 두 기록은 동학농민혁명 세력이 당시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봤으며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를 함께 보여줬다.
집강소와 협치의 실험
두 번째 주제는 협치와 상생의 기록 집강소를 세우다였다. 동학농민군이 일본의 침략으로 닥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협치와 상생의 체제를 모색한 과정을 다뤘다.
전시는 집강소를 지방 행정과 사회질서를 운영한 조직으로 조명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전주화약을 거쳐 집강소를 설치하고 운영한 과정은 당시의 새로운 거버넌스 실험으로 제시됐다. 서로 힘을 모아 지역의 질서를 운영하려 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사례로 다뤄졌다.
이 부분에서 소개된 동학사 초고본은 오지영이 작성한 동학 관련 역사 기록이다. 자료에는 당시 상황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관점이 담겼으며, 전주성 점령과 전주화약, 집강소 설치를 거쳐 지방 행정과 사회질서를 운영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전봉준 판결선고서도 주요 기록으로 전시됐다. 이 문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 체포된 전봉준에게 1895년 3월 29일 법무아문 권설재판소가 내린 최종 판결문이다. 전봉준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배경과 1차·2차 봉기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소개됐다.
외세에 맞선 자주와 항전
세 번째 주제는 자주와 항전의 기록 외세의 침략에 맞서다였다. 일본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동학농민군 지도부는 이를 막기 위한 반일투쟁을 목표로 내세웠다.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동학농민군이 자주와 자립을 위한 항전에 참여한 흐름이 기록을 통해 이어졌다.
유광화의 편지는 당시의 항전 상황과 동학농민군의 인식을 이해하는 자료로 제시됐다. 군자금을 요청하는 내용에 그치지 않고, 1894년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실제로 항전하던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이 강조됐다.
유광화는 동학농민군에서 지도자급으로 활동한 인물이자 양반가 출신으로 소개됐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농민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여러 계층이 함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다뤄졌다.
정의와 인권으로 이어진 뜻
마지막 주제는 정의와 인권의 기록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다였다. 전시는 농민군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으며, 그들이 보여준 민주적 질서의 가능성이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전시장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뜻과 정신이 3·1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는 흐름이 제시됐다. 동학농민혁명을 무장봉기라는 한 장면에 한정하지 않고, 공정과 정의, 인권을 추구한 움직임으로 바라보는 구성이었다.
한달문 옥중 편지는 진압된 동학농민군 개인이 겪은 고통과 인권 문제를 드러내는 기록으로 소개됐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 뒤에 존재했던 개인의 아픔을 보여주며, 동학농민군이 추구한 가치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자료였다.
기록을 가까이 마주한 전시
전시의 마지막에는 1894 기억 저장소와 집강소를 주제로 꾸민 포토존이 마련됐다. 다채로운 색으로 구성된 공간은 무게감 있는 기록 전시를 관람한 뒤 핵심 주제를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구 공주읍사무소의 근대 건축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한 공간에서 만난 이번 기획전은 공주의 역사적 장소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관람객들은 사발통문과 무장포고문, 동학사 초고본, 전봉준 판결선고서, 유광화 편지, 한달문 옥중 편지를 차례로 살피며 혁명의 배경과 전개, 참여자들이 추구한 가치를 따라갈 수 있었다.
185건의 기록은 동학농민혁명을 단일한 시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농민군과 정부, 관군, 지역 유생이 남긴 문서를 함께 살피는 과정에서 당시 사회가 마주한 위기와 개혁의 요구, 협치의 시도, 외세에 대한 항전, 정의와 인권의 문제가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