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물길의 재발견

제주 물길의 재발견

제주 서귀포시 예래동의 용천수와 마을의 생활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약 2.5㎞ 길이 새롭게 열렸다. 남바치물에서 출발해 조명물과 예래생태공원을 지나 대왕수천까지 이어지는 ‘용천수길’이다.

제주 올레길 8코스를 따라 중문관광단지를 지나 예래생태공원으로 향하다 보면 공원에 들어서기 전 왼편에서 ‘남바치물’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곳이 예래동 용천수길의 출발점이다. 길은 마을의 물과 농사, 생활문화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차례로 보여준다.

예래동은 천연 물놀이 공간으로 알려진 논짓물뿐 아니라 여러 용천수가 솟아나는 마을이다. 용천수길은 10월 5일 개장했으며, 개장 행사에서는 마을 해설사가 동행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제주 마을을 살린 용천수

용천수는 대수층을 따라 흐르던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솟아난 물이다. 물을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 제주 마을에서는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인 중요한 자원이었다.

예래동 용천수길은 세 물길에 각각 의미를 부여한다. 첫 번째 남바치물은 ‘솟다’, 두 번째 조명물은 ‘비추다’, 세 번째 대왕수는 ‘이어지다’를 핵심어로 삼는다. 물이 솟아 마을을 밝히고, 주민의 삶과 공동체의 시간으로 이어진다는 구성을 갖췄다.

첫 번째 물길 남바치물

남바치물이라는 이름은 ‘남쪽 밭에서 솟아나는 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많은 양의 물이 쏟아졌고 가뭄에도 쉽게 마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풍부한 물을 이용해 주변에 다랭이논을 조성하고 벼농사를 지었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 벼농사는 쉽지 않았지만 남바치물 주변에서는 물을 확보할 수 있어 흰쌀밥인 ‘곤밥’을 비교적 자주 먹을 수 있었다. 제사를 지낼 때도 이곳의 맑은 물을 길어 사용했다.

남바치물은 사람뿐 아니라 농사일에 동원된 소에게도 익숙한 물이었다. 일을 마친 소를 풀어놓으면 주인이 데려오지 않아도 스스로 남바치물을 찾아와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바치물은 식수와 농업용수, 의례에 쓰는 물까지 책임지며 예래동 주민의 일상을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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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은골 빌레길과 대나무숲길

남바치물을 지나면 돌이 많은 구간이 나타난다. 안전줄이 설치돼 있지만 바닥이 고르지 않아 걸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해당 구간은 추후 보완할 예정인 것으로 안내됐다.

약 10분 정도 걸으면 넓은 빌레 위로 물이 흐르는 ‘막은골 빌레길’에 닿는다. 널찍한 바위 지형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숲이 이어진다. 개장 행사에서는 이곳에서 소원을 적은 투명 병을 물에 띄우는 행사와 스탬프 투어가 진행됐다.

빌레길 다음에는 대나무숲길이 나온다. 대나무가 길 양쪽을 감싸며 용천수길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대나무는 제주 지역의 옛 혼례 풍습과도 관련이 있다. 결혼을 앞두면 신랑의 가까운 벗들이 소나무나 대나무를 가져와 신랑 집 입구 또는 마을 초입에 아치 형태의 ‘설문’을 만들었다. 집 앞을 꾸미고 부부의 변치 않는 삶을 기원한 축하 관문이었다. 용천수길을 조성한 상예1마을 주민들 사이에도 어린 시절 대나무 설문을 만들었던 기억이 전해지고 있다.

예래천 주상절리와 반달다리

대나무숲길을 통과하면 울창한 수풀 사이에서 예래천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 주상절리 위쪽 야자수가 보이는 곳에는 중문골프장이 자리한다. 예래동 갯깍의 주상절리와 함께 마을의 지질 경관을 보여주는 장소다.

주상절리를 지나면 둥근 반달 형태를 본떠 이름 붙인 ‘반달다리’가 나타난다.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고, 주변의 숲과 바위가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조명물로 향하는 길 왼편에는 돌담이 길게 놓여 있다. 이 돌담은 오른쪽 상예동과 왼쪽 색달동을 나누는 마을 경계다. 밭의 구획을 나누는 일반적인 밭담과 달리 두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쌓은 돌담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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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천연 물놀이 공간

길을 조금 더 걸으면 마을 주민들이 어린 시절 물놀이를 했던 ‘몰망소’가 나온다. 원문에는 ‘물망소’라는 표현도 함께 등장한다. 깊이는 약 2.5m로 전해지며, 주민들은 이곳에서 수영하거나 물속으로 뛰어들며 더위를 식혔다. 물뱀과 함께 헤엄쳤던 기억도 마을 이야기로 남아 있다.

몰망소를 지난 뒤에는 주민들이 ‘깔딱고개’라고 부르는 가파른 구간을 통과해 예래생태공원으로 들어선다. 나무 그늘과 물길이 이어지는 구간이지만 경사가 있어 천천히 이동하는 편이 안전하다.

사자가 오는 마을 예래동

예래동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편 군산오름의 모습과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군산오름이 사자 모양을 하고 마을로 찾아오는 형상이라 ‘사자가 오는 마을’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예래동은 과거 ‘열리’라고도 불렸다. 상예는 ‘웃연래’ 또는 ‘웃열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용천수길에서는 물의 쓰임뿐 아니라 이러한 마을 지명과 생활문화 이야기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 물길 조명물

조명물의 핵심어는 ‘비추다’다. ‘빛과 쉼이 머문 물’이라는 의미로 소개되며, 전기가 들어오기 전 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수면을 비췄다는 데서 이름이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조명물은 원래 현재 뒤편에 서 있는 나무가 있는 지점까지 이어질 만큼 규모가 컸다. 여름이면 주민들이 모여 발을 담갔고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현재는 남탕과 여탕이 정비돼 있으며 방문객이 발을 담글 수 있는 족욕 공간도 조성돼 있다. 물이 풍부한 날에는 차가운 용천수가 탕 안을 가득 채운다.

조명물은 주민의 쉼터를 넘어 마을 경제를 움직인 기반이기도 했다. 과거 인근에는 전분공장이 운영됐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자리가 늘었고, 전분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은 흑돼지 먹이로 사용됐다. 하나의 용천수가 생활용수와 휴식 공간, 생산 활동을 함께 뒷받침한 셈이다.

개장 행사에서는 상예1마을회가 조명물에 발을 담그며 보리개역을 맛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래생태공원으로 이어진 길

조명물을 지나면 예래생태공원으로 바로 연결된다. 봄에는 벚꽃 경관으로 알려진 곳이며, 가을에는 차분한 숲과 물길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인다.

공원 안에는 제주의 옛 대문을 형상화한 큰 정낭이 있다. 본래 정주석과 정낭은 높이가 낮지만,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실제 크기보다 크게 만들었다.

대왕수교 아래에서는 개장 행사 참가자들이 잠시 쉬며 마을 주민의 어린 시절 놀이였던 자치기를 체험했다. 이어 대왕수교를 지나면 용천수길의 마지막 구간인 대왕수와 소왕수가 나타난다.

세 번째 물길 대왕수

대왕수의 핵심어는 ‘이어지다’다. 삶을 지탱해온 물이 공동체와 역사의 시간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왕수는 오랜 세월 예래동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한 큰 물이다. 물의 양이 주변 용천수보다 많아 ‘큰이물’이라고도 불렸다.

주민들은 대왕수의 물을 용도에 따라 일정한 순서로 사용했다. 가장 위쪽에서는 마실 물을 얻었고, 그다음에는 채소를 씻었다. 아래쪽에서는 빨래와 목욕을 했다. 별도의 강요가 없어도 주민들이 순서를 지켜 식수로 사용하는 윗물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물 사용 순서는 공동의 자원을 함께 지키기 위해 형성된 마을의 생활 규칙이었다. 대왕수는 1970년 마을에 공동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주민 생활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핵심 자원이었다.

대왕수 바로 옆에는 소왕수가 자리한다. 개장 행사에서는 대왕수 주변에 제주 전통 물 운반 도구인 물허벅을 마련해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약 두 시간 동안 만나는 마을사

남바치물에서 대왕수와 소왕수까지 걷는 해설 투어에는 약 2시간이 걸렸다. 도착 지점은 예래동 노인회관 마당이었다. 개장 행사 당일에는 세 용천수의 스탬프를 모두 받은 참가자에게 완주 기념품과 점심식사, 상예1마을의 예래사자빵이 제공됐다.

해설사와 함께한 투어는 개장 당시 한 차례 운영된 행사였다. 상시 해설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는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용천수길 자체를 따라 걸으면 남바치물의 농경문화, 조명물의 공동체 생활과 전분공장, 대왕수의 물 사용 질서까지 예래마을 사람들의 옛 삶을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다.

예래러닝 운영 일정

서귀포시의 ‘서귀포 생태문화기행’ 일정 가운데 하나인 ‘예래러닝’은 2026년 10월 17일 운영 예정으로 안내됐다. 맑은 물길을 따라 달리는 생태 러닝과 용천수를 활용한 아이싱 체험으로 구성되며, 참가 신청은 2026년 10월 8일 오전 10시부터 받는 일정으로 공지됐다.

서귀포 생태문화기행은 2026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네 차례 운영되는 일정으로 안내됐으며, 우천 시 일정이 변경될 수 있다.

용천수길 장소 정보

구간남바치물 조명물 예래생태공원 대왕수천
거리약 2.5㎞
주요 지점막은골 빌레길 대나무숲길 예래천 주상절리 반달다리 몰망소 조명물 대왕수 소왕수
인근 장소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5002-26

예래동 용천수길은 자연경관만 보여주는 산책로가 아니다.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주민들이 어떻게 식수를 확보하고 농사를 지었으며, 공동체의 질서를 지켜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남바치물에서 솟은 물의 이야기는 조명물의 빛과 쉼을 거쳐 대왕수의 공동체 역사로 이어진다.

제주 물길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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