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 웹툰은 왜 꿈보다 현실에 가까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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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꿈 웹툰은 왜 꿈보다 현실에 가까울까요?

꿈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 같은 말을 두고도 뜻이 엇갈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 ‘개꿈 웹툰’을 찾기에, 저는 처음에 개가 나오는 꿈을 만화로 풀어낸 작품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신송림 작가의 웹툰 〈개꿈〉은 개를 꿈에서 본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제목에 쓰인 ‘개꿈’이 어떤 느낌을 남기는지, 작품 속 인물들의 삶과 옛 꿈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읽게 되더군요.

〈개꿈〉은 어떤 이야기를 그릴까요?

네이버웹툰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윤빛나는 독서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7살입니다. 그는 강경준에게 재벌 3세 여자친구 차현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계를 끊어내지 못합니다. 이 설정만으로도 빛나에게는 연애 감정뿐 아니라 생활의 무게, 자신이 원하는 삶과 지금의 삶 사이의 거리가 함께 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마음을 하나의 이유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작품을 읽을 때 흥미로운 점은 누구의 바람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리 보인다는 것입니다. 빛나의 처지에서 보면 붙잡고 싶은 관계와 불안정한 현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현주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이 가진 것과 관계 안에서 원하는 것이 늘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경준에게도 욕망과 선택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물들의 행동을 옳다고 판정하려는 풀이가 아니라, 한 장면에 여러 사람의 사정이 겹쳐 있다는 독서의 방식입니다.

한국만화가협회는 〈개꿈〉을 ‘2024 오늘의 우리만화’ 최종 후보작에 올렸고, 선정위원의 글에서는 인물들이 서로를 보는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차이를 짚었습니다. 저는 그 간격이 제목의 말맛과도 닿아 있다고 느낍니다. 마음속에서는 분명한 미래를 그려도, 다른 사람의 마음과 현실의 조건까지 뜻대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요.

‘개꿈’은 정말 아무 뜻 없는 꿈일까요?

일상에서 개꿈은 흔히 대수롭지 않은 꿈을 가리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이상한 장면을 길게 이야기하다가도 “그냥 개꿈이었어” 하고 끝낼 때가 있지요. 여기서 ‘개꿈’과 ‘개가 나오는 꿈’은 구별해야 합니다. 개가 등장하는 꿈은 동물의 모습과 행동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개꿈이라는 말은 대체로 꿈 전체를 가볍게 치부할 때 쓰입니다.

그렇다고 가볍게 부른 꿈에 아무 이야기도 담기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자료를 읽으며 제가 자주 마주친 것은 상징 하나에 붙박인 뜻보다, 그 꿈을 꾼 사람이 당시 무엇을 기다리고 두려워했는가 하는 사정이었습니다. 같은 물을 보아도 어떤 이야기에서는 풍요를, 다른 이야기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를 떠올립니다. 물의 양과 장면, 꿈을 전하는 사람의 형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개꿈〉이라는 제목은 여러 갈래로 읽힙니다. 이루기 힘든 바람을 스스로 ‘개꿈’이라 낮춰 부르는 말일 수도 있고, 남이 하찮게 보는 바람도 당사자에게는 절실하다는 뜻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전통 해몽으로 작품의 의도를 확정한 설명이 아닙니다. 제목과 인물들의 현실을 함께 놓았을 때 가능한 독자의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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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에서는 꿈의 값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삼국유사』의 보희와 문희 이야기는 꿈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대를 보여줍니다. 보희는 높은 곳에 올라 오줌을 누어 수도에 가득 차게 하는 꿈을 꿉니다. 동생 문희는 그 꿈을 비단치마를 주고 삽니다. 뒤이어 문희가 김춘추와 혼인하게 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 고대 사료 자료에서도 이 대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설화를 읽을 때 눈여겨볼 것은 ‘오줌을 누면 반드시 큰일이 생긴다’는 식의 공식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꾼 꿈을 다른 사람이 값까지 치러 사는 장면이지요. 당시 전해진 이야기 안에서 꿈은 개인의 잠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지위와 혼인에 대한 기대를 담는 물건처럼 다뤄집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런 이야기를 선류몽설화의 한 사례로 설명합니다.

물론 이 설화로 보희가 실제 미래를 보았다고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안 사람들이 어떤 삶을 좋은 삶으로 여겼는지 읽어 볼 수 있다는 쪽이 더 조심스럽습니다. 왕실과 이어지는 혼인이 크게 그려진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대의 가치관을 비춥니다. 같은 꿈을 지금 듣는다면 누군가는 우스운 장면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큰 변화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지도 모릅니다.

웹툰의 제목을 읽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옛 설화의 문희는 꿈을 사서 자기 몫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입니다. 〈개꿈〉의 인물들은 관계와 생활 속에서 각자의 가능성을 붙듭니다. 둘을 곧바로 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바라는 삶이 있고 그 바람을 둘러싼 현실의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는 함께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웹툰의 제목을 ‘헛된 꿈’이라는 판정으로 읽기보다, 누가 누구의 꿈을 하찮게 부르는지 묻는 말처럼 읽습니다. 빛나의 선택이 답답하게 보이는 순간에도 그가 처한 형편을 놓치면 이야기가 얇아집니다. 현주나 경준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자리에서 독자는 자기 경험에 따라 다른 장면을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꿈은 때로 잠에서 깬 뒤 금세 잊히지만, 누군가가 바랐던 삶의 모양은 오래 남습니다. 〈개꿈〉을 읽고 제목을 다시 떠올리면, 대수롭지 않다는 그 한마디 안에도 남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바람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꿈 웹툰은 왜 꿈보다 현실에 가까울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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