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라리가 여름 영입 선수들의 이적료로 만든 베스트 11을 보다가 이강인의 이름에서 눈이 멈췄다. 파리 생제르맹을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돌아온 선수라는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로운데, 4억 9700만 유로짜리 가상 팀의 중원에 들어갔다. 숫자가 크다. 그런데 이 명단을 볼 때는 ‘얼마나 잘했나’보다 ‘구단이 얼마를 걸었나’를 먼저 읽어야 한다.
베스트 11에 들어간 기준은 경기력이 아니었다
축구 콘텐츠 채널 스코어 90이 2026년 여름 라리가 구단의 영입 선수를 포지션별 이적료로 배치한 명단이다. 이강인은 3500만 유로로 로드리, 모르텐 히울만과 함께 미드필더 자리에 올랐다. 11명의 이적료 합계는 4억 9700만 유로다. 이강인의 몫은 그중 약 7%다.
여기서 ‘선정’이라는 말이 조금 헷갈릴 수 있다. 라리가가 시즌 활약을 평가해 뽑은 공식 베스트 11이 아니다. 이번 여름 새로 들어온 선수에게 각 구단이 지급한 금액을 기준으로 만든 가상 라인업이다. 경기장 안의 성적표라기보다 이적시장에서 드러난 기대치를 보여주는 표에 가깝다. 그 차이를 알고 보면 이강인의 이름이 더 흥미로워진다. 이미 스페인 무대를 경험한 선수에게 아틀레티코가 다시 큰돈을 썼다는 뜻이니까.
3500만 유로에 담긴 기대는 무엇일까
이강인은 2023년 마요르카에서 파리 생제르맹으로 옮길 때 약 2200만 유로의 이적료가 거론됐다. 이번 베스트 11에 반영된 3500만 유로는 그보다 1300만 유로 높다. 스페인 현지 보도에는 기본 이적료 3500만 유로에 조건에 따른 추가 금액 500만 유로가 붙는다는 내용도 있다. 그래서 기사마다 3500만 유로와 최대 4000만 유로가 함께 등장한다. 기본 금액과 조건을 모두 채웠을 때의 금액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가격이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기량이 그만큼 성장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계약 기간, 구단의 협상력, 필요한 포지션, 시장 상황도 이적료를 움직인다. 다만 아틀레티코가 이강인의 장점을 이미 알고 영입했다는 점은 눈에 띈다. 구단은 그를 공격형 미드필더와 양쪽 측면에서 뛸 수 있는 왼발잡이로 소개했다. 한 자리만 채우는 선수가 아니라 경기 흐름에 따라 공을 받을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자원으로 본 셈이다.
마요르카에서 보던 그 움직임을 다시 찾는다
이강인의 라리가 복귀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발렌시아와 마요르카 시절의 장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요르카에서는 측면에서 공을 지킨 뒤 수비를 끌어당기고, 안쪽으로 접어 동료에게 패스를 건네는 모습이 선명했다. 단순히 드리블을 한 번 성공시키는 기술보다 그 다음 패스가 공격의 방향을 바꾸는 선수였다.
아틀레티코에서는 같은 장면이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른쪽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풀백이 바깥 공간을 쓸 수 있고, 중앙에서 공을 받으면 전방 선수에게 연결할 길이 늘어난다. 반대로 상대가 이강인의 왼발 쪽을 막고 강하게 압박할 때는 공을 받기 전 위치 선정과 빠른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앞으로 볼 기록도 골과 도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전 시간과 선발 비중, 전진 패스가 이어지는 장면, 공을 잃은 뒤 수비에 다시 합류하는 모습까지 함께 봐야 역할이 드러난다.
비싼 영입이라는 이름표의 다음 장면
출발에는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라리가에 따르면 이강인은 말라가전에서 아틀레티코 소속 첫 골을 넣었고, 그 골은 2026년 8월 리그 이달의 골로 뽑혔다. 베스트 11의 이적료가 구단의 기대를 보여줬다면, 이 장면은 팬들이 그 기대를 경기장에서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한 골이나 한 번의 선정으로 영입의 가치를 판정하기는 이르다. 이강인이 꾸준히 선발로 뛰는지, 좁은 공간에서 풀어낸 공이 실제 득점 기회로 이어지는지, 강한 압박을 받는 경기에서도 같은 선택을 해내는지가 더 긴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3500만 유로라는 숫자보다 그가 공을 받을 때 동료의 움직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이적료는 기대의 크기를 적어 놓은 숫자이고, 그 기대에 답하는 과정은 매 경기 새로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