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나면 이상하게 주인공이 떠난 방을 더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이나 벽에 남은 흔적에서 대사보다 많은 이야기가 읽혀서다. 박신양 전시쑈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랬다. 익숙한 배우의 얼굴보다 ‘작업실에 관객을 초대한다’는 설정이 먼저 궁금해졌다. 전시 이름은 ‘제4의 벽’. 2026년 3월 6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지금은 전시가 끝난 뒤라 관람 안내보다는, 이 독특한 구성이 왜 눈길을 끌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림 사이에 배우들이 들어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세종문화회관이 소개한 전시 구성은 꽤 과감하다. 미술관 1·2관 전체를 사용하고, 150여 점의 큰 그림 사이로 배우 15명이 움직인다. 박신양이 자기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옮겨온 듯 꾸민 공간에 연극을 얹은 셈이다. 전시를 보러 갔다가 장면 속에 들어선 느낌을 받도록 설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설정도 묘하게 드라마 같다. 화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작업실의 정령들이 살아나 돌아다닌다. 그렇다고 그들이 주인공이고 그림이 배경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림 앞에 섰다가 누군가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이 옮겨가고, 다시 캔버스로 돌아오는 식으로 보는 리듬이 달라진다. 한 장면을 멈춰 놓고 오래 바라보는 미술 감상과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공연 관람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제목의 ‘제4의 벽’은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있다고 여기는 보이지 않는 벽을 떠올리게 한다. 박신양은 그 경계를 그림과 연기로 건드린다. 드라마 속 인물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순간처럼, 관객도 자신이 그저 멀찍이 구경하는 사람인지 잠깐 의식하게 될 것 같다. 작품마다 해석을 맞히려 애쓰는 것보다 그 거리감의 변화를 느끼는 쪽이 이 전시의 재미에 가까워 보인다.
사과와 당나귀가 남기는 감정
박신양의 그림에는 사과와 당나귀가 여러 번 등장한다. 같은 소재가 반복되면 단조롭지 않을까 싶지만, 드라마에서 한 인물이 여러 회차를 지나며 다르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똑같은 사과라도 놓인 자리와 색, 물감의 두께에 따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감정이 달라진다. 줄거리처럼 정해진 답을 따라가기보다, 왜 이 대상을 계속 붙잡았을지 생각하며 보는 방식이다.
박신양은 전시 당시 인터뷰에서 그림을 시작한 감정으로 ‘그리움’을 이야기했다. 사과를 보며 처음 떠올린 모습과 시간이 흘러 변해가는 모습을 함께 생각했고, 짐을 지고 가는 당나귀에게서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알고 그림을 보면 사과가 예쁜 정물화인지, 당나귀가 귀여운 동물 그림인지에서 감상이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붓질에 작가의 사연을 대입할 필요는 없다. 설명을 잠깐 내려놓고 색과 표면을 보는 시간도 충분히 좋다.
드라마 팬이라면 ‘파리의 연인’이나 ‘싸인’에서 보여준 박신양의 강한 집중력을 떠올릴 수 있다. 이번에는 그 힘이 대사 대신 커다란 화면과 반복되는 이미지로 향한다. 제가 눈여겨보는 지점도 유명 배우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보다, 오래 붙잡은 감정을 어떤 모양으로 밖에 꺼냈느냐다. 익숙한 얼굴을 알고 보는 관객과 모르는 관객이 서로 다른 입구로 들어와도, 결국 같은 그림 앞에 서게 되는 구성이 재미있다.
쑈라는 이름이 잘 맞는 사람과 낯선 사람
솔직히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조용히 작품 한 점씩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배우의 움직임과 연극적 장치가 집중을 흐릴 수 있다. 반대로 미술관이 어렵고 정적이라고 느꼈던 사람이라면 몸짓과 공간 변화 덕분에 훨씬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 ‘쑈’라는 이름부터 가벼운 구경을 기대하게 하지만, 화면에 담긴 감정까지 가볍지는 않다. 그 간격이 매력이면서 동시에 취향을 타는 지점이다.
정주행할 때도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인물의 표정을 오래 보는 사람이 갈리지 않나. 이 전시를 소개할 때 그림의 수와 배우의 수만 앞세우면 규모가 전부인 것처럼 들릴 수 있다. 오히려 큰 화면 앞에서 멈추고 싶은 순간과 퍼포먼스를 따라가고 싶은 순간이 번갈아 온다는 점이 더 중요해 보인다. 어느 한쪽을 기대하고 갔다면 낯설었을 수도 있다. 두 감상 방식이 부딪히는 경험 자체를 좋아한다면 오래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도 남는 장면처럼
전시에는 드라마처럼 다음 회를 누르는 버튼이 없다. 같은 그림 앞에 다시 서더라도 그날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달라질 뿐이다. 박신양 전시쑈가 재미있는 건 바로 그 틈을 연극으로 넓혔다는 데 있다. 장면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그림은 그 자리에 있고, 관객은 어느 쪽에 시선을 줄지 스스로 고른다.
전시가 끝난 지금 떠올려볼 만한 질문도 거창하지 않다. 한 배우가 오래 품어온 그리움이 사과와 당나귀, 작업실의 풍경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무엇을 먼저 보게 될까. 저는 아마 이야기의 답보다 잠시 멈춰 선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좋은 드라마를 다 본 뒤 유독 조용한 장면 하나가 마음에 남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