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부를 10년 넘게 쓰면서 느낀 건, 큰 지출보다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가 잔고를 더 오래 흔든다는 점이다. 기업대출도 비슷하다. 입금된 금액은 든든해 보이지만, 다음 달부터는 이자와 원금이 사업 통장에서 정해진 날짜에 나간다. 그래서 나는 대출 한도를 보기 전에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날짜부터 적어본다.
1. 매출보다 실제로 남는 돈을 본다
매출 2,000만 원인 가게가 있다고 해보자. 재료비와 임차료, 인건비 등으로 1,500만 원이 나가고 세금 납부를 위해 150만 원을 따로 둔다면,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350만 원이다. 여기에 기존 대출 상환액 80만 원이 있다면 새 대출을 갚는 데 쓸 여유는 더 줄어든다. 매출액만 보고 월 상환액 200만 원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숨이 찰 수밖에 없다.
이때 사업 통장과 생활비 통장을 나눠 보는 게 도움이 된다. 개인사업자는 특히 두 돈이 섞이기 쉽다. 사업에서 300만 원이 남았더라도 그중 200만 원을 집 생활비로 가져가야 한다면, 실제 사업의 상환 여력은 100만 원에 가깝다. 장부에는 매출, 고정비, 변동비, 세금으로 떼어둘 돈, 기존 대출 상환액, 생활비 인출액을 한 달 단위로 적는다. 계절에 따라 매출 차이가 크다면 가장 잘된 달보다 평범하거나 조금 부진했던 달을 기준으로 잡는 편이 현실적이다.
2. 필요한 금액과 필요한 기간을 따로 계산한다
기업대출을 찾다 보면 승인 가능 한도에 먼저 눈이 간다. 그런데 한도가 5,000만 원이라고 해서 5,000만 원이 필요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거래처 대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재료비와 급여로 2,000만 원이 부족하다면, 그 돈이 언제 들어오고 부족한 기간이 몇 달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일시적인 현금 부족인지, 매달 반복되는 적자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적자가 계속된다면 대출금은 금세 운영비로 소진되고 상환일만 남을 수 있다.
설비 구입처럼 비용을 들인 뒤 여러 달에 걸쳐 매출이 생기는 지출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설치비만 보지 말고 유지비와 매출이 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함께 적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정책자금도 자금 용도와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세부 자금이 나뉜다. 은행 대출과 정책자금을 비교할 때는 내 지출의 용도에 맞는지, 신청 자격과 심사 절차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정책자금이라는 이름만으로 승인이나 유리한 조건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3. 금리보다 월별 상환표를 먼저 펼친다
같은 3,000만 원을 연 6%로 빌려도 상환 방식에 따라 매달 통장에서 나가는 돈은 달라진다. 이자만 내는 기간에는 단순 계산으로 월 이자가 약 15만 원이다. 하지만 원금 상환이 시작되면 지출이 커진다. 3년 동안 원리금을 균등하게 갚는다고 가정하면 월 납입액은 약 91만 원이다. 이 숫자는 설명을 위한 예시이며 실제 납입액은 적용 금리, 기간, 실행일 등에 따라 달라진다.
거치기간이 있으면 초반 부담은 가볍다. 대신 그 기간에도 빌린 원금은 남아 있고, 이후 상환액이 늘어날 수 있다. 원금균등상환은 초반 납입액이 더 크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방식이다.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조건이라면 만기일에 마련할 돈을 별도로 계획해야 한다. 서민금융진흥원의 대출 안내도 상환 방식에 따라 납입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계약 전에는 금리 유형, 거치기간, 월별 원리금, 보증료나 기타 비용, 중도상환수수료 유무를 같은 종이에 놓고 비교하는 게 좋다.
4. 매출이 줄어든 달에도 버틸 수 있는지 본다
나는 대출을 계산할 때 좋은 달의 숫자를 한 번 지워본다. 앞의 가게에서 매출이 2,000만 원에서 1,700만 원으로 줄었는데 비용은 바로 줄지 않는다면, 남는 돈은 300만 원 적어진다. 평소에는 무난해 보이던 월 상환액이 그달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거래처 입금이 늦어지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통장에 일정한 현금을 남겨두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대출 상담에서는 최대한도보다 내가 감당할 월 납입액을 먼저 말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실제 계약서의 상환 일정이 장부에 적은 예상과 같은지 확인한다. 이미 상환이 빠듯하다면 새 대출을 찾기 전에 기존 금융회사에 상환 조건을 상담할 여지도 있다. 연체가 생기기 전에 움직일수록 선택지를 살펴볼 시간이 남는다.
가계부에서도 생활비를 무조건 깎으면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도 필요한 지출은 해야 한다. 다만 기업대출로 그 지출을 앞당길 때는, 돈이 들어온 날의 안도감보다 매달 갚는 날의 통장 잔액을 먼저 보는 쪽이 내 마음에는 더 든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