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거래소 간 코인을 옮기려다 출금 화면에서 멈췄다. 주소와 네트워크는 맞았는데 수취 거래소와 계정 정보를 다시 확인하라는 안내가 떴다. 트래블룰 최초 시행 당시 겪었던 불편이 떠올랐다. 송금 버튼을 누르기 전에 확인할 항목이 하나 늘어난 것이다.
1. 최초 시행일은 2022년 3월 25일이다
국내 가상자산 트래블룰은 2021년 3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령에 도입됐고, 사업자의 정보 전달 시스템 구축을 거쳐 2022년 3월 25일 본격 시행됐다. 최초 적용 대상은 국내 가상자산사업자 사이의 100만 원 상당 이상 이전 거래였다. 보내는 사업자가 송금인과 수취인 정보를 받는 사업자에 제공하고 보관하는 방식이다. 개인 투자자가 블록체인에 신분증 정보를 직접 올리는 제도라는 뜻은 아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가상자산 이전에도 송금인·수취인 정보를 전달하도록 권고해 왔다. 국내에서는 이 원칙이 거래소 출금 절차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가 당시 설명한 법적 적용 범위는 사업자 간 이전이었다. 개인지갑 주소의 사전 등록은 거래소가 자금세탁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운영하는 별도 절차였다. 둘을 같은 규칙으로 보면 출금 제한의 이유를 잘못 짚기 쉽다.
2. 제도가 시작돼도 거래소 간 송금은 바로 풀리지 않았다
시행 첫날의 문제는 코인 전송 기술보다 사업자 간 정보 전달이었다. 업비트가 쓰던 베리파이바스프와 빗썸·코인원·코빗이 쓰던 코드의 연동이 늦어졌다. 그래서 2022년 3월 25일 제도는 시행됐지만, 서로 다른 시스템을 쓰는 주요 거래소 사이의 일부 송금은 막혔다. 양쪽 시스템이 연동된 4월 25일에야 주요 거래소 간 송금이 재개됐다.
이 사례에서 확인할 점은 분명하다.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정상이고 지갑 주소가 정확해도, 거래소가 상대 사업자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면 입출금이 지연되거나 거절될 수 있다. 급하게 거래소를 옮겨 매도하려는 사람에게는 가격 변동만큼 입금 가능 여부가 중요하다. 나는 거래소 간 차익이 보여도 먼저 입금 지원 상태와 수취 거래소의 계정 정보를 확인한다. 송금이 묶이는 동안 가격 차이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어서다.
3. 100만 원 기준만 보면 실제 출금 흐름을 놓친다
초기 규정의 100만 원은 사업자 간 정보 제공 의무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모든 거래소가 100만 원 미만 출금을 아무 확인 없이 처리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거래소 자체 점검이나 개인지갑 주소 등록은 금액과 별도로 작동할 수 있다. 같은 코인을 보내도 목적지가 국내 신고 거래소인지, 해외 사업자인지, 개인지갑인지에 따라 확인 절차가 달라지는 이유다.
숫자로 보면 차이가 더 선명하다. 금융위원회의 2026년 상반기 실태조사에서 거래소 외부 출고액은 62.8조 원이었다. 이 가운데 트래블룰 적용 출고액은 9.5조 원으로 약 15%, 사전 등록 주소를 이용한 화이트리스트 방식은 51.7조 원으로 약 83%였다. 100만 원 미만 외부 출고액은 1.6조 원으로 금액 기준 약 2%였지만, 이용자 수 기준으로는 63%를 차지했다. 작은 금액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도 전체 이동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는 얘기다.
여기서 트래블룰 적용 비중 15%를 전체 송금의 15%만 확인했다는 뜻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통계에는 목적지와 출고 방식이 다른 거래가 함께 들어 있다. 거래량이나 온체인 이동량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거래소 간 이동, 등록된 해외 사업자·개인지갑으로의 출고, 단순한 내부 자산 이동을 구분하지 않으면 수급 신호를 과장하게 된다.
4. 기준금액 폐지 결정과 실제 시행 시점은 구분해야 한다
2026년 8월 금융위원회는 트래블룰의 100만 원 기준을 없애고, 국내 신고 사업자 간 정보 제공 의무를 모든 이전 거래로 넓히는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다만 관련 자금세탁 방지 의무는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의결됐다는 뉴스만 보고 지금 당장 모든 소액 송금에 새 규칙이 적용된다고 판단하면 시점을 잘못 잡는 셈이다.
실제 출금 전에는 금액보다 경로를 먼저 본다. 받는 곳이 지원되는 사업자인지, 수취인 이름과 계정 정보가 일치하는지, 개인지갑이라면 주소 등록이 끝났는지 확인한다. 그다음 네트워크와 수수료, 입금 반영 조건을 본다. 특히 처음 보내는 주소라면 작은 금액으로 입금 반영까지 확인한 뒤 다음 송금을 판단한다. 테스트 송금에도 수수료와 시세 변동 위험은 있지만, 큰 금액이 묶였을 때의 비용과 비교할 만하다.
트래블룰 시행 전에는 거래소 밖으로 나간 코인을 가격 신호로 해석하는 일이 지금보다 단순했다. 이제는 어떤 경로로, 어떤 조건에서 이동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내 매매 기록에도 출금액 옆에 목적지와 입금 완료 시간을 남긴다. 이동한 숫자 하나보다 실제로 거래할 수 있게 된 시점이 더 쓸모 있는 데이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