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적을 비교하다 보면 같은 붙박이장인데도 설치비가 꽤 다르게 적힌 경우가 있습니다. 12년 동안 이사·설치 견적을 보면서 느낀 건, 싼 견적일수록 조립만 포함하고 벽 고정이나 틈새 마감은 빼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셀프 붙박이장 설치도 마찬가지예요. 판재를 조립할 수 있느냐보다, 우리 집 공간에 안전하게 세우고 문이 끝까지 열리게 할 수 있느냐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제품을 고르기 전에 세 군데씩 재세요
벽 사이 너비를 한 번 재고 모듈 폭을 더해 주문하면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벽이 반듯하지 않거나 걸레받이가 튀어나와 있으면 위쪽과 아래쪽 너비가 다릅니다. 너비는 위·중간·아래, 높이는 왼쪽·가운데·오른쪽에서 재고 가장 좁은 값을 기준으로 제품 설명서의 설치 조건을 확인하세요. 깊이도 벽에서 문틀이나 침대까지의 거리를 재야 합니다.
가령 벽 사이 너비가 위쪽 242㎝, 아래쪽 239㎝인데 80㎝ 모듈 세 개를 주문하면, 계산상 240㎝라도 아래쪽에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때 억지로 밀어 넣거나 벽을 깎을 일이 아닙니다. 모듈 폭을 바꾸거나 남는 틈을 마감재로 처리할 수 있는 구성을 다시 잡아야죠.
천장 높이도 제품 높이와 같으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바닥에서 조립한 몸통을 세우는 방식인지, 세운 상태로 조립하는 방식인지에 따라 필요한 공간이 달라집니다. 제품별 최소 천장 높이와 조립 순서는 설명서 수치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케아도 옷장 설치 안내에서 높이·너비·깊이뿐 아니라 경사진 천장, 배관 같은 돌출부와 문이 열릴 공간을 함께 확인하도록 안내합니다.
- 걸레받이와 천장 몰딩이 제품 뒤나 위에 닿는지
- 콘센트·스위치·에어컨 배관이 가려지는지
- 여닫이문이 침대나 방문에 걸리지 않는지
- 미닫이문이라면 레일을 놓을 바닥과 천장이 평평한지
셀프로 할 범위와 맡길 범위를 나누세요
기성 모듈을 조립해 놓는 일과 벽에서 벽까지 빈틈없이 맞춘 붙박이장을 만드는 일은 난도가 다릅니다. 전자는 설명서대로 몸통을 조립하고 수평을 맞추는 작업이 중심입니다. 후자는 벽의 굴곡에 맞춘 재단, 문 간격 조정, 틈새 마감까지 들어갑니다. 벽이나 천장에 레일을 고정하는 구조라면 고정면의 재질 확인도 필요하고요.
큰 몸통을 혼자 세우려는 계획은 다시 잡는 편이 좋습니다. 판재가 휘거나 모서리가 깨질 수 있고, 세우는 동안 몸통이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부 제품은 설명서에서 두 사람 조립을 요구합니다. 조립 전에 부품 수량을 확인하고 바닥을 보호한 뒤, 긴 판재를 옮기고 세우는 단계에는 보조 인력을 확보하세요.
벽 고정은 특히 제품마다 다릅니다. 어떤 옷장은 넘어짐을 막기 위한 고정이 필수이고, 벽 재질에 맞는 나사나 고정 부품을 별도로 골라야 합니다. 석고보드인지 콘크리트인지 모른 채 동봉된 나사만 박아서는 고정 상태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벽 속 배선·배관 위치가 불확실하거나 고정할 구조를 확인할 수 없다면 그 단계는 설치 기사에게 맡기는 게 낫습니다. 제품 설명서가 요구하는 고정을 생략한 채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설치 견적은 작업 항목별로 비교하세요
셀프 설치가 부담돼 견적을 받는다면 ‘붙박이장 설치 1식’이라는 문구로는 비교가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두 견적이 각각 18만 원과 28만 원이라고 해도, 앞쪽이 몸통 조립만 포함하고 뒤쪽이 벽 고정·문 조정·마감재 시공까지 포함한다면 같은 작업의 가격이 아닙니다. 이 숫자는 비교 방식의 예시일 뿐 실제 시세는 아닙니다.
견적서에는 제품 모델과 모듈 개수, 운반 위치, 기존 장 철거 여부부터 적어 달라고 하세요. 그다음 조립, 수평 조절, 벽 고정, 문·레일 조정, 측면과 천장 틈새 마감, 포장재 처리 비용이 각각 포함되는지 확인합니다. 엘리베이터를 못 쓰거나 긴 판재가 계단을 돌아 들어가야 한다면 운반비도 미리 확인할 항목입니다.
추가금 조건은 금액과 함께 문장으로 받아두는 게 좋습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추가’만 적혀 있으면 바닥 수평이 안 맞거나 벽이 휘었다는 이유로 작업 당일 금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측 뒤 어떤 조건에서 얼마가 붙는지, 작업 전에 금액을 다시 알려주는지까지 확인하면 비교가 쉬워집니다. 현장에서 범위가 바뀌었다면 바로 작업을 진행하기보다 변경 항목과 금액을 먼저 기록해 두세요.
설치가 끝난 뒤 문부터 여러 번 움직여 보세요
겉모습만 보고 작업 완료에 서명하면 나중에 말이 길어집니다. 여닫이문은 열고 닫을 때 옆문이나 바닥에 닿지 않는지, 문틈이 위아래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지 봅니다. 미닫이문은 양쪽 끝까지 움직여 보고 레일에서 걸리거나 흔들리는 구간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선반과 서랍도 한 번씩 실제로 사용해 봐야 합니다.
수평이 맞는지, 고정이 끝났는지, 벽과 장 사이 마감재가 들뜨지 않았는지도 현장에서 확인하세요. 문제가 보이면 전체 작업을 다시 해달라고 막연히 말하기보다 ‘오른쪽 문 하단이 바닥에 닿는다’처럼 위치와 증상을 적고 사진을 남기는 편이 빠릅니다. 업체가 설치했다면 견적서와 작업 전후 사진을 함께 보내 조정이나 하자보수 가능 일정에 대한 답을 받으세요.
셀프 붙박이장 설치에서 아낄 수 있는 비용은 분명 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조립비만 계산하면 실측 오류로 모듈을 다시 사거나, 벽 고정과 문 조정을 따로 맡기며 돈이 더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제품을 주문하기 전에 가장 좁은 실측값, 설치 설명서의 조건, 맡겨야 할 작업의 견적을 한 장에 적어보는 편입니다. 그 종이 한 장이 설치 당일의 추가금보다 훨씬 싸게 먹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