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건축유산을 눈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손끝과 수어, 음성으로 함께 경험하는 무장애 기획전이 대전 테미오래에서 열리고 있다. 대전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오래된 관사가 지닌 물리적 한계를 다양한 접근성 서비스로 보완해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모두를 위한 무장애 전시
무장애는 연령이나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공간과 환경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장벽을 줄이는 개념이다. 1970년대 말 건국대학교 건축대학 강병근 교수가 국내에 소개한 베리어 프리 개념은 이후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이라는 한국식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개념은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의 이용을 고려해 환경을 설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무장애 설계 원칙은 건축에 머물지 않고 관광과 문화예술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옛 충청남도 관사촌인 테미오래에서 진행되는 ‘건축유산, 손끝으로 읽다’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26년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마련됐다. 대전문화재단이 전시를 주관하고 지역의 교육기관과 복지기관, 장애인단체 등이 협력했다.
근대 관사의 장벽을 낮추다
테미오래 관사들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건립된 근대 건축유산이다.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건축물의 특성상 문턱과 좁은 복도, 높은 계단이 남아 있어 장애인 관람객에게 이동상의 제약이 있었다.
이번 전시는 기존 건축물을 보존하면서도 관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세 가지 핵심 서비스를 마련했다.
- 시각장애인 관람 지원
안내보행을 제공하고 점자와 큰글씨로 제작한 리플렛을 비치했다. - 농인 관람 지원
현장 수어 해설과 수어 해설 영상을 통해 전시 내용을 전달한다. - 휠체어 이용 지원
이동식 경사로를 설치하고 휠체어 이동 보조와 전환 서비스를 제공한다.
발달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감각 안정 공간도 배치됐다. 각 서비스는 관람객이 자신의 신체적 조건과 감각에 맞춰 전시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당사자의 감각과 언어를 중심에
전시 기획과 운영을 총괄한 테미오래운영팀 박혜성 차장은 대전문화재단의 비전인 ‘예술과 가까이, 시민과 나란히’를 언급하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다름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차장은 비장애인의 언어만을 기준으로 삼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장애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표현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이번 전시가 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비장애인도 평소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전시라고 강조했다.
전시장은 관람객이 하나의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촉각과 시각, 청각 등 서로 다른 감각을 활용해 건축유산을 이해하도록 구성됐다. 오래된 관사의 형태를 보존하면서 관람 방식의 폭을 넓힌 점이 이번 기획의 핵심이다.
대전맹학교 학생들의 촉각투어
2026년 10월 2일 진행된 촉각투어에는 협력기관인 대전맹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참여했다. 전맹과 저시력 등 서로 다른 시각장애 특성을 고려해 관람객과 안내자가 일대일로 함께 걷는 안내보행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테미오래의 역사와 명칭의 유래를 듣고, 옛 충남도지사가 거주했던 도지사 공관에 관한 설명을 접했다. 촉각 자료와 현장 해설을 활용해 건축물의 외형과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손끝으로 건물의 윤곽을 확인하고 해설을 따라 공간의 역사를 살피는 과정은 시각 중심의 일반적인 건축 관람과 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학생들은 각자의 시각 특성에 맞는 안내를 받으며 전시 공간을 둘러봤다.
지역 기관과 기업의 협력
전시에는 접근성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지역 기관과 기업이 제작과 자문, 해설에 참여했다.
- 3D 촉각 디오라마
픽섬컴퍼니와 우인아트가 드론 기술을 활용해 관사의 외형을 손끝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형을 제작했다. - 수어 해설 영상
열린책장이 영상 제작을 맡았다. - 사업 자문
사단법인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중구지회가 참여했다. - 농인 수어 해설
농인 당사자이자 대전광역시립손소리복지관 직원인 송은정·정옥분 해설사가 현장 수어 해설을 맡았다.
대전맹학교와 대전광역시립손소리복지관도 협력기관으로 참여했다. 교육기관과 복지기관, 장애인단체, 제작 기업이 역할을 나눠 관람객의 이동과 정보 접근, 감각 경험을 지원했다.
6호 관사에서 만나는 촉각 건축
약 30평 규모의 6호 관사 내부에는 테미오래의 건축유산을 촉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디오라마 모형이 설치됐다. 사진 자료와 음성안내 해설을 이용할 수 있는 QR코드, 수어 해설 영상이 재생되는 TV 화면도 함께 배치됐다.
관람객은 건축물 사진을 살펴보거나 모형을 직접 만지고, 음성 또는 수어 해설을 선택해 전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전시 정보를 여러 형식으로 제공함으로써 관람객마다 다른 정보 접근 방식을 고려했다.
무장애 기획전 ‘건축유산, 손끝으로 읽다’는 2026년 10월 31일까지 운영된다. 같은 달부터 1호 관사에서는 3D펜 유튜버 사나고와 공예 유튜버들이 참여하는 특별 기획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다.
관람 정보
| 전시명 | 건축유산, 손끝으로 읽다 |
|---|---|
| 전시 장소 | 대전광역시 중구 보문로205번길 22 테미오래 6호 관사 |
| 함께 열리는 전시 | 테미오래 1호 관사 특별 기획전시 |
| 운영 기간 | 2026년 10월 31일까지 |
| 관람 시간 |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 입장료 | 무료 |
| 주관 | 대전문화재단 |
| 협력 | 대전맹학교, 대전광역시립손소리복지관, 사단법인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중구지회 등 |
| 접근성 서비스 예약 문의 | 대전문화재단 테미오래운영팀 042-335-5711 |
이번 전시는 보존해야 할 근대 건축유산과 누구나 누려야 할 문화 접근권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사례다. 문턱과 계단이 남은 오래된 관사에 이동식 경사로와 안내보행, 점자·큰글씨 자료, 수어와 음성 해설을 더해 관람의 장벽을 낮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