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로스터리에서 밤라떼를 마신 손님이 집에서는 밤 맛보다 우유 맛만 난다고 하셨습니다. 재료를 물어보니 밤도 넉넉히 넣고 원두도 좋은 것을 쓰고 계셨죠. 그런데 밤 퓌레는 차갑고 단단한 채로 컵에 담았고, 에스프레소는 그 위에 바로 부었다고 했습니다. 이러면 밤이 고르게 풀리지 않아 첫 모금은 커피, 마지막 모금은 달고 묵직한 밤이 됩니다.
밤라떼는 재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밤을 얼마나 곱게 풀었는지, 커피를 얼마나 진하게 내렸는지가 맛을 크게 바꿉니다. 제가 매장에서 만드는 비율을 가정용 컵에 맞춰 적어보겠습니다.
밤라떼 한 잔에 필요한 비율
260~300ml 컵 한 잔을 기준으로 익힌 밤 35g, 에스프레소 36g, 우유 160~180ml를 준비합니다. 밤은 찌거나 삶은 것을 써도 되고, 오븐이나 팬에 구운 것을 써도 됩니다. 군밤은 향이 조금 더 진하지만 수분이 적어 우유에 풀 때 손이 더 갑니다. 익힌 밤을 쓰는 이유는 전분의 거친 느낌을 줄이고 고소한 향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 익힌 밤 35g: 껍질을 벗긴 뒤 계량
- 에스프레소 36g: 원두 18g을 사용해 추출한 양
- 우유 160~180ml: 밤을 풀 때 쓸 양까지 포함
- 설탕 또는 시럽 5~10g: 밤의 단맛을 보고 조절
- 소금 아주 작은 한 꼬집: 선택 사항
시판 밤 페이스트를 쓴다면 성분표의 당류를 먼저 봐야 합니다. 이미 달게 만든 제품에 설탕을 더하면 밤의 향보다 단맛이 앞섭니다. 가당 페이스트는 우선 30g만 넣고, 완성한 뒤 단맛을 조절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반대로 삶은 밤만 갈아 쓰면 생각보다 담백합니다. 이때 설탕 5g 정도가 밤 향을 더 또렷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밤을 먼저 풀어야 마지막 모금까지 맛있습니다
익힌 밤 35g에 따뜻한 우유 20~30ml를 넣고 곱게 으깨거나 작은 블렌더로 갈아줍니다. 이 우유는 준비한 160~180ml에서 덜어 쓰면 됩니다. 체에 한 번 내리면 질감이 훨씬 매끈해집니다. 체에 남는 덩어리를 억지로 밀어 넣으면 마실 때 가루 같은 느낌이 남을 수 있습니다.
설탕이나 시럽을 넣을 거라면 밤을 갈 때 함께 섞습니다. 소금은 정말 조금만 씁니다. 짠맛을 내기보다 밤의 단맛을 받쳐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밤 퓌레가 숟가락에서 천천히 떨어질 만큼 되직하면 적당합니다. 흐르지 않을 만큼 뻑뻑하다면 따뜻한 우유를 5ml씩 더해 풀어주세요.
컵 바닥에 이 퓌레를 담고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조금씩 부으며 젓습니다. 한꺼번에 부으면 컵 벽에 밤이 붙어 잘 섞이지 않습니다. 컵 바닥에서 밤과 커피가 한 덩어리로 섞인 뒤 우유를 더해야 마시는 동안 맛의 차이가 작습니다.
커피는 밤 향을 받쳐줄 만큼 진하게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다면 원두 18g으로 음료 36g을 받는 비율에서 시작합니다. 추출 시간은 대략 25~30초를 기준 삼되, 숫자보다 맛을 우선합니다. 지나치게 쓰면 분쇄도를 조금 굵게, 시고 묽으면 조금 가늘게 조절합니다. 원두는 볶은 지 너무 오래되지 않은 중배전이 다루기 편합니다. 견과류나 초콜릿 같은 인상이 있는 커피가 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산미 있는 원두를 좋아한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때는 우유를 160ml 쪽으로 줄여 커피 향이 묻히지 않게 합니다.
머신이 없어도 만들 수 있습니다. 모카포트로 진하게 내린 커피 40~50ml를 쓰거나, 핸드드립이라면 원두 15g에 물 100g을 부어 평소보다 진한 커피를 만듭니다. 드립은 에스프레소보다 농도가 낮으니 우유를 140~160ml 정도로 줄여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싼 장비보다 컵 안에서 밤과 커피가 제대로 섞이는 일이 먼저입니다.
우유는 55~65℃ 정도로 데웁니다. 손으로 잔을 잡았을 때 따뜻하지만 곧바로 놓아야 할 만큼 뜨겁지는 않은 정도입니다. 온도계가 있으면 편하지만 밤라떼 한 잔을 위해 새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우유를 오래 끓이면 단맛이 무뎌지고 표면에 막이 생깁니다. 거품을 낸다면 두꺼운 거품보다 얇고 부드러운 거품이 밤의 질감과 잘 맞습니다.
달거나 텁텁할 때 바꿀 순서
첫 모금이 지나치게 달다면 밤을 줄이기 전에 설탕이나 시럽부터 줄입니다. 시판 페이스트를 썼다면 무가당 밤을 섞는 방법도 있습니다. 밤 맛이 약할 때는 설탕을 더 넣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밤을 5g 늘리거나 우유를 20ml 줄여보는 편이 낫습니다.
목에 남는 텁텁함은 밤을 많이 넣어서일 수도 있지만, 덜 갈린 밤이 원인인 경우가 더 흔합니다. 밤을 따뜻한 우유에 충분히 풀고 체에 거른 뒤에도 무겁다면 다음 잔에서는 밤을 30g으로 줄입니다. 커피의 쓴맛이 튄다면 먼저 에스프레소만 맛보세요. 밤이나 우유가 추출이 거친 커피를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아이스 밤라떼는 같은 밤 퓌레를 만든 뒤 에스프레소와 섞어 컵에 담습니다. 우유는 130~150ml, 얼음은 100g 안팎으로 시작하면 얼음이 녹아도 맛이 지나치게 옅어지지 않습니다. 차가운 우유에 밤을 바로 넣으면 잘 풀리지 않으니 밤 퓌레를 만들 때만큼은 따뜻한 우유를 쓰는 편이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밤라떼는 밤이 디저트처럼 진하게 남으면서도 커피가 끝에 조용히 느껴지는 잔입니다. 처음에는 밤 35g과 우유 170ml로 한 잔을 만들고, 다음 잔에서 밤이나 우유를 한 가지만 바꿔보면 자기 취향을 찾기가 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