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 원두 분쇄를 맞추는 방법

산미 원두 분쇄를 맞추는 방법

얼마 전 손님이 매장에서 마신 에티오피아 원두를 집에서도 내려 봤다며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같은 원두인데 매장에서는 귤처럼 산뜻했고, 집에서는 덜 익은 레몬을 씹은 듯 시었다고 하더군요. 물어보니 원두 15g에 물 240g을 썼고, 추출은 1분 40초 만에 끝났습니다. 원두를 바꾸기 전에 분쇄도부터 한 단계 가늘게 조절했습니다.

산미 원두 분쇄에 딱 하나의 숫자는 없습니다. 그라인더마다 눈금이 다르고, 같은 눈금이라도 원두와 필터에 따라 물이 흐르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몇 클릭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보다, 지금 잔에서 나는 맛과 물이 빠진 시간을 함께 봅니다.

기분 좋은 산미와 덜 추출된 신맛은 다릅니다

잘 추출된 산미는 과일을 먹을 때처럼 단맛이 뒤따릅니다. 입에 침이 살짝 고이고, 삼킨 뒤에도 향이 남지요. 반면 신맛만 날카롭게 튀고 잔의 가운데 맛이 비어 있다면 원두의 개성보다 추출 부족을 먼저 의심합니다. 뜨거울 때는 구분하기 어려우니 두세 모금 남겨 조금 식힌 뒤 다시 마셔보는 편이 좋습니다.

물을 부어도 원두 속 성분이 한꺼번에 녹지는 않습니다. 분쇄가 너무 굵으면 물이 커피층을 빠르게 지나가 단맛과 질감이 충분히 나오기 전에 추출이 끝날 수 있습니다. 이때 산미가 유난히 거칠게 느껴집니다. 스페셜티커피협회가 소개한 추출 연구에서도 추출 정도가 낮은 커피에서 신맛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산미 자체가 잘못된 맛은 아닙니다. 단맛과 어울리는지, 입 안에서 홀로 남는지가 판단 기준입니다.

핸드드립은 한 번에 작은 폭으로 조절합니다

집에서 시작할 때는 원두 15g, 물 240g, 물 온도 93~95℃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종이 필터를 적신 뒤 원두를 담고, 물 40g을 부어 약 30초 뜸을 들입니다. 이후 120g, 180g, 240g까지 나누어 붓습니다. 붓는 높이와 속도는 매번 비슷하게 유지하고, 마지막 물을 부은 뒤 물이 거의 빠질 때까지 시간을 잽니다. 이 레시피에서 2분 30초~3분 30초는 출발점으로 쓸 만한 범위입니다. 목표 시간에 억지로 맞추기보다 맛과 함께 기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분도 안 돼 끝났고 맛이 묽고 시다면, 다음 잔에서는 그라인더를 가는 방향으로 한두 눈금만 움직입니다. 단맛이 늘고 산미의 모서리가 둥글어지면 방향이 맞습니다. 반대로 물이 오래 고이고 혀가 마를 만큼 떫거나 뒷맛이 무겁다면 조금 굵게 갑니다. 너무 곱게 갈면 미세한 가루가 필터를 막고 물이 일부 길로만 흐를 수 있어서, 무조건 가늘수록 좋은 것도 아닙니다.

같은 날 두 잔을 비교할 수 있다면 더 쉽습니다. 원두량과 물 온도, 붓는 방식은 그대로 두고 분쇄도만 바꿉니다. 첫 잔이 2분 10초에 끝나 날카로웠고 두 번째가 2분 50초에 끝나 달아졌다면, 그 원두에서는 두 번째 눈금이 더 잘 맞은 셈입니다. 시간은 맛을 설명하는 단서이지 맛의 점수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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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쇄도를 바꿔도 시다면 다른 조건을 봅니다

가늘게 갈았는데도 신맛이 그대로라면 물 온도를 확인합니다. 특히 연하게 볶은 원두는 낮은 온도에서 단맛을 끌어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90℃ 안팎으로 내리고 있었다면 분쇄도는 그대로 두고 93~95℃로 올려 비교해 봅니다. 분쇄와 온도를 동시에 바꾸면 어느 쪽이 맛을 바꿨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원두를 산 날짜보다 볶은 날짜도 살핍니다. 볶은 지 얼마 안 된 원두는 가스가 많이 남아 뜸 들일 때 크게 부풀고, 물이 고르게 닿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래 열어 둔 원두는 향과 단맛이 줄어 같은 산미도 더 앙상하게 느껴집니다. 로스팅 날짜와 개봉 뒤 보관 상태를 기록해 두면, 어느 날부터 맛이 달라졌는지 찾기가 한결 쉽습니다.

물도 변수입니다. 평소 마시는 물로 맛있게 내려지던 원두가 여행지에서 유난히 시거나 밋밋했다면 분쇄도만 계속 돌릴 일이 아닙니다. 물에 녹아 있는 미네랄의 양과 구성에 따라 맛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우선 같은 물을 계속 쓰면서 분쇄도를 맞추는 편이 비교하기 좋습니다.

기구가 달라지면 같은 눈금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에스프레소는 핸드드립보다 훨씬 곱게 갑니다. 처음에는 원두 18g을 담아 커피 36g을 받는 비율을 잡고 맛을 봅니다. 너무 빠르게 흘러 20초 남짓 만에 끝나고 시다면 조금 더 곱게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추출 시간이 길어졌는데도 신맛과 떫은맛이 함께 난다면 물길이 고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때는 원두 가루를 고르게 펴고 수평으로 눌렀는지부터 살핍니다.

프렌치프레스처럼 원두가 물에 잠겨 있는 기구는 드립과 물의 흐름이 다릅니다. 드립에서 맞춘 눈금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같은 원두와 물 비율로 시작해 맛을 보고 조절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라인더 눈금보다 주방 저울이 먼저 도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원두 15g을 쓰던 날과 18g을 쓰던 날의 맛을 분쇄도 탓으로 돌리면 답을 찾기 어렵거든요.

저는 산미 좋은 원두를 내릴 때 신맛을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한 잔에 단맛이 차오를 자리를 만들어 주고, 그 옆에서 산미가 어떤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지 듣습니다. 집에서도 분쇄도를 한 칸씩 움직이며 그 차이를 맛보면, 같은 원두가 어느 순간 훨씬 편안하게 느껴질 겁니다.

산미 원두 분쇄를 맞추는 방법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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