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입찰을 준비하며 1층 상가 앞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감정가보다 낮아진 최저매각가격도 눈에 들어왔지만, 영업 중인 가게의 보증금부터 확인해야 했습니다. 상가는 낙찰받은 뒤 문을 열어볼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임차인의 권리가 살아 있으면 보증금 반환 문제부터 풀어야 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먼저 볼 것은 영업 여부가 아니다
가게 간판이 달려 있고 손님이 드나든다고 임차인이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은 건물을 인도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한 다음 날부터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현장에서 누가 점포를 쓰는지 확인하고, 서류에서는 점유 시작일과 사업자등록 신청일을 따로 확인합니다.
그 날짜를 등기부의 근저당권 등과 나란히 놓아야 합니다. 임차인의 대항력이 앞서는지, 경매로 소멸하는 권리인지에 따라 낙찰자의 부담이 달라집니다. 특히 먼저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하면 임차권이 매각만으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점포를 비워달라는 요구와 보증금 문제를 떼어 생각하면 입찰가부터 틀어집니다.
현황조사서에 적힌 사업자등록일만 보고 끝내기도 어렵습니다. 실제 점유 공간이 계약서의 호수와 일치하는지, 점포 일부를 다른 사람이 쓰고 있지는 않은지 현장에서 다시 봅니다. 자료가 서로 어긋나면 임차인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미리 단정하지 않습니다. 확인할 수 없는 보증금은 제 돈으로 떠안을 가능성까지 가격에 반영합니다.
확정일자가 있어도 배당액은 따로 계산한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이름이 비슷해도 쓰임이 다릅니다. 임차인이 건물을 인도받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한 데 더해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으면, 경매·공매 대금에서 후순위 권리자보다 보증금을 먼저 변제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춥니다. 경매에서 배당을 받으려면 배당요구 종기까지 필요한 신고와 배당요구도 챙겨야 합니다.
입찰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확정일자 있으니 배당받고 나가겠죠.” 그 말에는 금액이 빠져 있습니다. 가령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보증금이 1억 원이고 실제 배당이 6천만 원이라면, 남은 4천만 원을 누가 부담하는지가 낙찰가를 좌우합니다. 이 숫자는 계산을 보여주기 위한 예시입니다. 실제 배당액은 선순위 채권, 집행비용, 다른 임차인과 조세채권 등을 놓고 따져야 합니다.
또 배당요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명도가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보증금 전액을 받았는지, 잔액이 남는지에 따라 협의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저는 예상 배당표를 한 장 만들어 본 뒤에야 입찰가를 적습니다. 잔액을 모르면 싸게 낙찰받았다는 기분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월세를 빼먹으면 보호 범위를 잘못 읽는다
상가 물건에서 가장 흔한 계산 실수는 보증금만 보는 것입니다. 법 적용 범위를 따질 때는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환산보증금을 씁니다. 보증금 3천만 원, 월세 100만 원인 점포라면 환산보증금은 1억 3천만 원입니다. 월세를 빼면 전혀 다른 물건처럼 보입니다.
현재 시행령상 서울의 일반적인 적용 기준은 환산보증금 9억 원 이하입니다. 다만 그 금액을 넘는다고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모든 보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항력과 계약갱신요구권 등 일부 규정은 기준을 초과하는 임대차에도 적용됩니다. 반대로 우선변제권까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어떤 권리를 따지는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는 기준이 또 다릅니다. 서울은 환산보증금 6천500만 원 이하인 임차인이 대상이며, 요건을 갖춘 경우 보증금 중 최대 2천200만 원을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먼저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금액도 매각대금만 있으면 무조건 지급되는 돈은 아닙니다. 점유와 사업자등록의 시점, 배당요구, 건물가액의 절반 한도, 선행 담보권의 설정 시기에 따른 적용 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래된 근저당이 보이면 당시 규정까지 확인하는 이유입니다.
입찰표 쓰기 전에는 보증금과 시간 비용을 함께 적는다
제가 상가를 볼 때는 등기부,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임대차 자료를 펼쳐 놓고 날짜를 한 줄로 적습니다. 근저당권 설정일, 점유 시작일, 사업자등록 신청일, 확정일자, 배당요구일 순서입니다. 그다음 점포에 가서 실제 영업자와 사용 구역을 확인합니다. 서류상 공실인데 셔터 안에서 영업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조사 당시 영업 중이던 가게가 이미 나간 경우도 있습니다.
- 임차보증금 중 배당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금액
- 점포를 넘겨받기까지 예상되는 기간의 대출이자와 관리비
- 협의 명도 비용과 시설 철거·원상복구 비용
- 취득세 등 취득 비용과 인근 실거래·현재 임대료의 차이
권리금도 보증금과 섞어 계산하지 않습니다. 기존 임차인이 들인 인테리어와 영업가치는 따로 다툴 수 있는 문제지만, 경매 낙찰자가 권리금을 보증금처럼 자동 승계한다고 놓고 계산할 일은 아닙니다. 점포를 직접 쓸 계획이라면 더더욱 인도 시점과 시설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날 제가 보던 물건은 서류만으로 임차인의 실제 점유 범위와 보증금 잔액을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입찰을 접었습니다. 법 조항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순간은 숫자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입니다. 상가는 한 번의 낙찰로 끝나는 투자가 아니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