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대출 상담에서 한 고객이 “금리가 0.5%포인트만 낮으면 그 상품이 제일 좋은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금리 차이는 분명 큽니다. 그런데 같은 금리라도 갚는 기간과 방식이 달라지면 매달 나가는 돈이 크게 달라집니다. 상담할 때 저는 금리표보다 먼저 다섯 가지 숫자를 함께 적어 봅니다.
1. 한도보다 매달 갚을 수 있는 금액
은행이 빌려줄 수 있다는 금액과 내 생활비에서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세후 월소득이 400만 원인 가정에서 주거비와 생활비 250만 원, 보험료와 기존 대출 상환액 50만 원이 나간다면 남는 돈은 100만 원입니다. 새 대출의 월 상환액을 100만 원에 딱 맞추면 자동차 수리비나 병원비가 생긴 달에는 바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최근 6개월 통장을 봅니다. 성과급처럼 매달 들어오지 않는 돈은 빼고, 실제로 꾸준히 남은 금액을 확인합니다. 위 사례라면 월 상환액 100만 원을 목표로 잡기보다 비상 지출을 위해 여유를 남기는 편이 낫습니다. 대출 한도가 적게 나와 아쉬운 경우도 있지만, 한도를 전부 쓰지 않는 선택이 생활을 지키기도 합니다.
심사 기준도 따로 봐야 합니다. 금융위원회가 설명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즉 DSR은 모든 가계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값입니다. 연소득 6,000만 원에 연간 상환액이 1,800만 원이라면 단순 계산으로 30%입니다. 실제 심사에서는 대출 종류와 기존 채무를 반영하고, 금리 상승 위험을 고려한 스트레스 DSR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계산기로 낸 한도와 은행의 심사 한도가 다른 이유입니다.
2. 금리 0.5%포인트가 만드는 총이자 차이
숫자로 보면 금리 비교의 무게가 선명해집니다. 2억 원을 30년간 원리금균등으로 갚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연 4.0%라면 월 납입액은 약 95만 5,000원, 전체 이자는 약 1억 4,374만 원입니다. 연 4.5%라면 월 납입액은 약 101만 3,000원, 전체 이자는 약 1억 6,481만 원입니다. 금리 0.5%포인트 차이로 매달 약 5만 9,000원, 30년 전체로는 약 2,107만 원이 벌어집니다. 중간에 갚거나 금리가 바뀌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나온 값입니다.
그런데 광고에 보이는 최저금리가 곧 내 금리는 아닙니다. 급여 이체, 카드 사용, 자동이체 같은 우대 조건을 모두 채워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대금리 0.3%포인트를 받으려고 쓰지 않던 카드에 매달 30만 원을 결제한다면, 그 소비가 원래 필요했던 것인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상담 화면의 최저금리보다 내가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적용한 금리를 비교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3. 월 납입액을 낮출 때 늘어나는 기간 비용
앞의 2억 원을 연 4.0%에 빌리되 30년이 아닌 20년 원리금균등으로 갚으면 월 납입액은 약 121만 2,000원입니다. 30년 상환 때보다 매달 약 25만 7,000원을 더 내지만, 전체 이자는 약 9,087만 원으로 줄어듭니다. 두 기간의 이자 차이는 약 5,287만 원입니다.
그렇다고 짧은 기간이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육아휴직이나 이직을 앞두고 있다면 월 납입액이 낮은 쪽이 현금 흐름에 안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매달 소득이 안정적이고 비상자금도 충분하다면 기간을 줄여 이자를 아낄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월 납입액을 정할 때 적어도 소득이 줄어드는 몇 달을 버틸 수 있는지도 같이 묻습니다.
상환 방식도 확인해야 합니다. 원금균등은 초기에 내는 돈이 많고 시간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원리금균등은 매달 납입액이 대체로 일정해 예산을 짜기 쉽습니다. 거치기간에 이자만 내는 방식은 당장의 부담이 작아 보이지만, 원금 상환이 시작되는 달부터 납입액이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첫 달 납입액 하나만 보고 결정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4. 갈아타기 전에 빼야 할 비용
기존 대출 금리가 연 5.0%이고 새 대출 금리가 연 4.5%라면 갈아타고 싶어집니다. 남은 원금이 2억 원일 때 금리 차이 0.5%포인트는 처음 1년의 이자를 단순 계산하면 약 100만 원 줄이는 효과입니다. 하지만 기존 대출을 갚을 때 중도상환수수료가 0.5%라면 수수료만 100만 원입니다. 새 대출의 인지세나 담보 관련 비용까지 더하면 첫해에는 오히려 손해일 수 있습니다.
이 숫자는 비교 방법을 보여 주는 가정일 뿐, 실제 수수료율은 계약마다 다릅니다. 금융위원회 안내에 따르면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 조기 상환에 따른 실제 비용 범위에서 산정하도록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계약의 수수료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기존 약정서에서 남은 부과 기간과 수수료 계산 방식을 확인하고, 새 대출의 모든 비용을 합쳐야 합니다. 금리만 낮아졌다는 이유로 바로 갈아타지 않는 까닭입니다.
5. 금리가 바뀌었을 때 버틸 금액
변동금리 대출은 지금의 납입액이 끝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2억 원을 30년 원리금균등으로 갚는 단순 예시에서 금리가 연 4.0%면 월 약 95만 5,000원이고, 연 6.0%면 월 약 119만 9,000원입니다. 처음부터 각 금리가 유지된다고 가정한 비교라 실제 금리 변경 시점의 납입액과는 다르지만, 월 24만 원가량의 차이를 생활비가 견딜 수 있는지는 점검할 수 있습니다.
고정금리는 금리 변동에 대한 걱정을 줄여 주지만, 처음 제시된 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높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안에 집을 팔거나 대출을 갚을 계획이라면 보유 기간의 이자와 상환 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오래 보유할 계획이라면 금리가 오를 때의 월 납입액을 먼저 적어 보는 게 좋습니다.
대출 계약서 앞에서 제가 확인하는 숫자는 승인 한도가 아니라 다음 달 통장 잔액입니다. 금리 0.1%포인트를 아끼는 일도 중요하지만, 예상 밖의 지출이 생긴 달에도 약속한 날짜에 갚을 수 있는 금액이어야 좋은 대출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