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집을 알아보던 지인이 연말정산 때 세금을 아끼려고 IRP에 돈을 더 넣어도 될지 물었다. 몇 년 안에 계약금으로 쓸 돈이라면 답은 간단하지 않다. IRP는 노후자금을 모으는 데 유용하지만, 주택 구입 일정과 함께 따져봐야 하는 계좌다.
IRP에 넣을 돈과 집 살 돈부터 구분하기
IRP는 개인형 퇴직연금이다. 퇴직급여를 받아 보관할 수도 있고, 본인이 돈을 추가로 납입할 수도 있다. 두 돈이 같은 계좌에 들어 있어도 세금이 매겨지는 방식은 다르다. 퇴직급여를 IRP로 옮긴 금액은 그 자체로 연말정산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며, 퇴직소득세는 인출 시점까지 미뤄진다. 본인이 추가로 납입한 금액은 정해진 한도 안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집을 살 계획이 있다면 계약금, 잔금, 취득 관련 비용을 먼저 계산하는 편이 좋다. 가령 2년 뒤 집을 사면서 현금 8천만 원이 필요하고 지금 모은 돈이 6천만 원이라면, 부족한 2천만 원을 채우는 일정이 우선이다. 이때 연말정산 혜택만 보고 해마다 900만 원씩 IRP에 넣으면 정작 계약 시점에 현금이 모자랄 수 있다. IRP 납입액은 가까운 시일에 쓰지 않을 돈으로 정하는 게 현실적이다.
세액공제 금액은 이렇게 계산하기
국세청 안내에 따르면 연금저축과 IRP를 합친 연간 세액공제 대상 납입액은 최대 900만 원이다. 이 가운데 연금저축만으로 인정되는 금액은 최대 600만 원이다. 연금저축에 이미 600만 원을 넣었다면 IRP에 300만 원을 추가해 합산 한도를 채울 수 있다. IRP에만 납입한다면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퇴직급여를 옮겨 받은 금액은 이 계산에 넣지 않는다.
총급여가 5,5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는 납입액의 15%, 이를 초과하면 12%가 세액공제율이다. 지방소득세까지 감안하면 통상 각각 16.5%, 13.2%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공제 대상 납입액이 300만 원이면 계산상 세금 감소액은 각각 49만 5천 원, 39만 6천 원이다. 900만 원을 채우면 각각 148만 5천 원, 118만 8천 원이다. 실제로 돌려받는 금액은 이미 낸 세금과 다른 공제 항목에 따라 달라진다. 세액공제가 곧 납입액만큼 현금을 돌려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한도를 반드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올해 주택 계약 가능성이 높다면 IRP 납입액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는 선택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반대로 주택자금과 생활비를 따로 마련했고 오래 운용할 돈이 남는다면, 그 범위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활용할 수 있다.
주택 구입 때 중도인출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IRP에 넣은 돈은 보통예금처럼 필요할 때 원하는 금액만 자유롭게 꺼내 쓰기 어렵다.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해야 중도인출을 신청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안내에는 무주택자의 본인 명의 주택 구입, 무주택자의 주거 목적 전세금·임차보증금 부담 등이 관련 사유로 제시돼 있다. 그렇다고 집을 산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인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청 당시 무주택 여부, 계약 명의, 인출 시기와 증빙서류를 금융회사에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배우자 명의로만 집을 계약한 뒤 본인의 IRP를 인출하려 한다면 본인 명의 주택 구입 요건을 충족하는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부부 공동명의로 소유권을 취득하는 경우와 배우자 단독명의인 경우도 판단이 같지 않다. 분양권이나 임대차 계약은 사실관계에 따라 필요한 서류가 달라진다. 청약 당첨이나 계약 전에 인출 가능액을 확정 자금처럼 잡지 않는 이유다.
중도인출이 허용되는지와 세금이 얼마나 나오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세액공제를 받은 본인 납입액과 운용수익을 연금 외 방식으로 받으면 원칙적으로 기타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 반면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납입액, 옮겨 받은 퇴직급여는 적용되는 과세 방식이 다르다. 계좌에 여러 종류의 돈이 섞여 있다면 금융회사에서 재원별 예상 세액을 받아봐야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을 알 수 있다.
가입 전에 운용 방식과 비용도 보기
IRP는 계좌를 만든 것만으로 수익이 나는 상품이 아니다. 계좌 안에서 예금이나 펀드 등 어떤 상품을 담을지 결정해야 하고, 상품마다 수익률과 위험이 다르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의 비중에는 운용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 금융회사별 계좌 수수료와 상품 비용도 장기간 쌓이면 차이가 커진다. 가입 화면에서 수수료 면제 조건, 살 수 있는 상품, 만기 자금의 재투자 방식을 함께 확인하는 게 좋다.
IRP를 고를 때는 예상 세액공제액을 먼저 계산하되, 그 돈을 언제 쓸지도 같은 무게로 봐야 한다. 특히 집을 살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계약금과 잔금을 제때 낼 수 있는 현금이 중요해진다. 절세액이 매력적이어도 주택자금까지 묶어 두는 선택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