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제주에 갈 때는 항공권검색 화면보다 숙소 지도를 먼저 오래 들여다봤다. 바다 앞 유명한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 아침에 동네가 천천히 깨어나는 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곳이 구좌읍 세화리였다. 목적지를 정하고 다시 항공권을 찾으니, 같은 제주행이라도 어떤 시간에 도착하느냐가 훨씬 중요하게 보였다.
싼 표보다 마을에 닿는 시간을 먼저 봤다
처음 검색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늦은 밤 도착편이었다. 화면에 보이는 항공권 값은 낮았지만, 세화까지 이동하고 나면 그날은 숙소에서 잠만 자게 될 것 같았다. 숙박비 하루를 더 쓰면서 마을에서는 몇 시간도 보내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출발일을 하루 앞뒤로 바꿔 보고,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제주에 닿는 편을 함께 비교했다.
내가 항공권검색을 할 때 적어 두는 건 세 가지다. 항공권의 최종 결제 금액, 공항에 도착하는 시각, 돌아오는 날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각. 왕복 가격이 같아도 마지막 항목에 따라 여행의 길이가 달라진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너무 이르면 세화에서 맞을 수 있는 마지막 아침이 사라진다.
검색 결과에 보이는 금액은 결제 단계에서 다시 확인한다. 한국공항공사 통합예약 화면도 표시된 상품 가격이 여행사에서 결제하는 실제 가격과 다를 수 있다고 안내한다. 수하물 조건과 변경·취소 수수료까지 보고 나서야 두 표를 제대로 비교할 수 있었다. 작은 가방 하나로 떠나는 짧은 여행이라도 내가 고른 운임에 어떤 수하물이 포함되는지는 확인하는 편이다.
제주공항에서 세화까지 가는 길
제주공항에 내려 세화로 갈 때는 101번 급행버스를 탔다. 제주버스정보시스템에 나온 공항 출발 노선에 세화리 정류장이 있다. 공항에서 바로 마을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버스 창밖으로 제주시 건물들이 지나가고, 어느 순간 낮은 지붕과 밭이 가까워졌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관광지를 하나 더 넣고 싶다는 생각이 옅어졌다.
버스 시간은 여행 날짜에 맞춰 제주버스정보시스템에서 다시 확인했다. 노선과 시간표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편을 고를 때도 도착 시각만 보지 않고 공항에서 짐을 찾고 정류장까지 걸어갈 시간을 남겨 뒀다. 예약 화면에서는 한 시간 차이가 작아 보여도, 버스 한 대를 놓친 뒤 마을에 들어가는 길에서는 꽤 길게 느껴진다.
세화리 정류장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었다. 큰길을 벗어나니 문 앞에 놓인 화분, 낮은 돌담,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없는 사진을 찍으려고 찾은 길은 아니었다. 실제로 누군가 살고 있는 골목이라 발걸음을 늦추고, 집 안을 향해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세화에서 좋았던 건 별일 없는 오후였다
짐을 놓고 해변 쪽으로 걸어가다가 가게 앞에 잠깐 앉았다. 세화해변은 동네와 가까워서 바다를 보고 다시 골목으로 들어오기가 편했다. 오래 머물 만한 이름난 장소를 찾지 않아도 괜찮았다. 바다를 한 번 보고, 점심을 먹고, 다른 골목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오후가 지나갔다.
세화해녀민속오일시장도 기억에 남는다. 비짓제주 안내에는 매달 날짜 끝자리가 5와 0인 날에 장이 열린다고 나온다. 장날에는 생활용품과 먹거리를 고르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고, 점심 무렵부터 가게들이 차츰 문을 닫는 분위기였다. 이곳은 내가 구경하는 동안에도 누군가 장을 보는 일상의 공간이었다. 길을 막지 않고 필요한 것 한두 가지를 사서 나왔다.
한적한 동네를 좋아한다고 해서 늘 조용한 것은 아니다. 장날의 시장과 해변 근처는 방문객이 모일 수 있다. 대신 숙소로 돌아가는 안쪽 길은 한결 느긋했다. 같은 마을 안에서도 시간과 길 하나에 따라 분위기가 달랐다. 그래서 세화에서는 하루에 여러 곳을 찍기보다, 같은 길을 아침과 오후에 한 번씩 걸어 보는 쪽이 더 좋았다.
다음 항공권검색에도 남겨 둘 기준
이번에는 가격표 옆에 작은 메모를 해 뒀다. ‘세화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녁 늦게 도착하는 편과 낮에 도착하는 편의 차이를 항공권 값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숙소 1박, 공항에서 마을까지의 이동, 돌아오는 날 아침까지 함께 놓고 보니 내가 원하는 일정이 조금 선명해졌다.
물론 날짜를 바꿀 수 없는 여행도 있다. 그럴 때는 여러 날의 최저가를 끝없이 뒤지기보다 정해진 일정 안에서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는 편을 고른다.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비행기라면 공항까지 가는 길도 여행 경비와 피로에 넣어 생각한다. 현지에 도착한 뒤 쉬어 갈 힘이 남아 있어야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세화에서 돌아온 뒤 사진첩에는 특별한 장면보다 평범한 길이 더 많이 남았다. 항공권검색 화면을 다시 열 때면 싼 표 하나를 찾는 마음과 함께, 그 표가 나를 어느 시간의 골목에 내려놓을지도 떠올린다. 내게는 그 시간이 여행의 값에 포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