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역대 흥행작 목록을 다시 봤는데, 익숙하던 2위 자리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2026년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가 《극한직업》을 넘어선 겁니다. 오래된 목록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번 순위가 낯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대 박스오피스 흥행 순위는 한국 극장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를 합쳐, 국내 누적 관객 수가 많은 순서입니다. 전 세계 매출 순위와는 기준이 다릅니다. 아래 수치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2026년 10월 집계를 바탕으로 만 명 단위에서 반올림했습니다. 재개봉이나 집계 보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내 관객 수 상위 10편은?
- 1위 《명량》(2014) — 약 1,762만 명
- 2위 《왕과 사는 남자》(2026) — 약 1,692만 명
- 3위 《극한직업》(2019) — 약 1,626만 명
- 4위 《신과함께-죄와 벌》(2017) — 약 1,441만 명
- 5위 《국제시장》(2014) — 약 1,426만 명
- 6위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 약 1,393만 명
- 7위 《겨울왕국 2》(2019) — 약 1,375만 명
- 8위 《아바타》(2009) — 약 1,362만 명
- 9위 《베테랑》(2015) — 약 1,341만 명
- 10위 《서울의 봄》(2023) — 약 1,313만 명
상위 10편 중 한국 영화가 7편, 외국 영화가 3편입니다. 1위 《명량》과 2위 《왕과 사는 남자》의 차이는 약 69만 명, 2위와 3위의 차이는 약 66만 명입니다. 숫자로 보면 두 작품 모두 선두권에 바짝 붙어 있지만, 관객 수의 크기만으로 영화의 완성도나 취향까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 2위에 오른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요?
《왕과 사는 남자》는 2026년 2월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사극 드라마입니다. 유배된 어린 왕 이홍위와 마을 촌장 엄흥도의 만남을 중심에 놓습니다. 유해진과 박지훈이 두 인물을 연기했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상반기 흥행 집계에서도 관객 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관람 전에는 역사적 배경을 빌린 인물 드라마라는 점을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실제 인물과 시대를 바탕으로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감정과 사건을 영화적으로 구성한 작품입니다. 사료에 적힌 사실을 장면마다 확인하려 하기보다 어떤 관계를 그리는지에 눈을 두면 영화의 성격이 더 또렷해집니다.
반면 《극한직업》은 잠복 수사 중 치킨집을 운영하게 된 형사들의 코미디입니다. 두 영화는 관객 수가 가까워도 기대할 재미가 전혀 다릅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인물의 관계와 정서에 무게를 둔다면, 《극한직업》은 빠른 대사와 상황의 반복에서 웃음을 끌어냅니다. 순위만 보고 다음 관람작을 고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객 1위와 매출 1위가 다른 이유
박스오피스라는 말 때문에 매출액 순위와 관객 수 순위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서 《왕과 사는 남자》는 국내 개봉작 누적 매출액 1위에 올랐고, 누적 관객 수에서는 《명량》 다음인 2위입니다. 《명량》이 더 많은 사람을 모았어도 두 작품의 표값과 관람 환경이 같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봉 시기가 2014년과 2026년으로 12년 차이 나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일반 상영과 특별관의 가격, 할인 적용, 재관람 비중에 따라 관객 한 명당 매출액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역대 1위’라는 문구를 만나면 관객 수인지 매출액인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해외 흥행 기사에서 자주 쓰는 달러 매출과 국내 누적 관객 수를 바로 맞대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순위표를 볼 때 놓치기 쉬운 점
통합전산망에는 전날까지 들어온 발권 데이터를 보여주는 박스오피스 통계와 월별로 마감한 공식통계가 따로 있습니다. 상영 중인 영화는 집계 시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질 수 있고, 재개봉작이 별도 작품으로 등록되면 원작 관객 수에 자동으로 합쳐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글에서 몇천 명 또는 몇만 명 차이가 난다면 먼저 기준일과 집계 방식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래된 작품과 최근 작품을 비교할 때는 관객 수를 기록한 환경도 생각할 만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과거 전국 극장 자료가 지금처럼 일관되게 수집되지 않았다고 안내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상위권 표는 국내 극장 흥행의 큰 흐름을 읽는 자료로 유용하지만, 모든 시대의 영화를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 겨룬 결과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게 이 순위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왕과 사는 남자》의 등장입니다. 한동안 《명량》과 《극한직업》으로 이어지던 맨 위 줄에 사극 드라마가 들어왔으니까요. 관객 수는 사람들이 극장에 발걸음한 규모를 보여줍니다. 영화를 고를 때는 그 숫자 옆에 장르와 이야기의 결도 함께 놓고 보는 편이 더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