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크리스마스 여행에서 조용한 교토를 걸어봤다

일본 크리스마스 여행에서 조용한 교토를 걸어봤다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교토에 갔을 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화려한 조명이 아니었다. 이치조지의 작은 철길 건널목과 해가 일찍 기울던 주택가였다. 연말의 일본이라면 번화한 거리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그날은 동네를 천천히 걷는 시간이 더 좋았다.

이치조지와 슈가쿠인 주변은 관광 명소를 촘촘히 찍고 다니기보다 책방에 들렀다가 강가까지 걸어보기에 어울렸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여행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면 심심할 수도 있다. 대신 평소처럼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도시의 겨울 하루를 잠깐 빌려 쓰는 느낌이 있었다.

데마치야나기에서 작은 전철을 탔다

출발점은 데마치야나기역으로 잡았다. 에이잔 전철을 타면 이치조지역까지 낮 시간 기준 약 6분이다. 교토시 관광 안내에서도 이치조지로 갈 때 이 노선을 소개한다. 짧은 구간이라 창밖을 오래 볼 틈은 없지만, 큰 역을 벗어나 동네 안으로 들어가는 감각은 분명했다.

이치조지역에서 내리면 목적지를 향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역 가까운 길에는 자전거와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가게가 늘어선 길을 조금 걷다가 한 블록 옆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금세 달라졌다. 이런 동네에서는 유명한 간판 하나보다 길의 속도를 따라 걷는 편이 재미있다.

기차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돌아오는 방향만 미리 봐두면 편하다. 이치조지에서 다음 역인 슈가쿠인까지는 전철로 약 2분이라, 발이 시리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걷던 길을 짧게 접을 수 있다. 운행 시각은 날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그날 역 안내를 확인하는 게 마음 편하다.

책방에 머문 시간이 길어졌다

이치조지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이었다. 책을 고르러 들어갔다가 표지를 구경하고, 선반 사이를 한 바퀴 더 돌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꼭 사야 한다는 마음이 없으니 오히려 가벼웠다. 작은 물건 하나를 고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읽을 책을 천천히 찾았다.

이 일대가 온통 고요한 건 아니다. 식사 시간에는 가게 앞이 북적일 수 있고, 골목에도 생활 소음이 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비밀 장소’를 기대하면 어긋난다. 내가 좋았던 건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동네의 리듬이 그대로 보였다는 점이다. 관광객인 나는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도를 비켜 걷고, 집 앞에서는 사진기를 들지 않았다.

점심은 특정 가게를 목표로 삼지 않고, 지나가다 자리가 있는 곳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당일이나 연말에는 가게마다 쉬는 날이 다를 수 있다. 한 곳에 꼭 가야 한다면 출발 전에 영업 여부를 확인하고, 아니라면 몇 군데를 눈여겨두는 정도가 이 동네와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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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골목 끝에서 강 쪽으로 걸었다

책방을 나온 뒤에는 넓은 길만 따라가지 않고 주택가를 지나 서쪽의 다카노강 쪽으로 걸었다. 이치조지 서쪽에 강이 흐른다는 지리를 알고 가면 방향을 잡기 쉽다. 골목은 주민들이 매일 쓰는 길이라 조용히 지나갔다. 낮은 건물 사이로 겨울 하늘이 보이고, 큰길의 차 소리가 멀어질 때마다 걸음도 느려졌다.

강가에서는 한동안 멈춰 섰다. 풍경이 특별히 극적인 곳은 아니다.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지나갈 뿐인데, 그래서 더 오래 보고 싶었다. 연말 여행에서는 무엇을 봤는지 계속 확인하게 될 때가 있다. 그날은 다음 장소까지 몇 분 남았는지를 잊고 서 있을 수 있었다.

강변은 바람을 그대로 맞는 편이라 낮에 괜찮던 손끝도 금세 차가워졌다. 교토 관광 안내에는 12월 평균 기온이 약 7도로 소개돼 있다. 같은 7도라도 걷다가 멈추면 체감이 달랐다. 두꺼운 겉옷 하나에만 기대기보다 목을 가릴 옷과 장갑을 챙기면, 벤치 앞에서 서둘러 돌아설 일이 줄어든다.

크리스마스의 교토를 이렇게 기억한다

시간이 더 있다면 슈가쿠인 쪽으로 걸음을 이어도 좋다. 다만 골목을 오래 걷는 게 목적이라면 코스를 길게 채우지 않아도 된다. 내가 걸은 날에도 책방과 점심, 강가에서 보낸 시간만으로 오후가 금방 지나갔다. 해가 짧은 계절이라 늦은 오후부터는 돌아갈 역을 향해 천천히 방향을 잡았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풍경을 기대하고 왔다면 이 동네는 조금 담백하다. 대신 동네 책방에서 오래 서성이고, 강바람을 맞고, 전철 한 정거장만큼의 거리를 걸을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떠올려보니 반짝이는 장면보다 건널목 앞에서 잠시 기다리던 시간이 선명했다. 다음 겨울에도 교토에 간다면, 하루쯤은 그렇게 동네의 평범한 오후를 보내고 싶다.

일본 크리스마스 여행에서 조용한 교토를 걸어봤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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