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2022년 포르투갈전 하이라이트를 다시 봤다. 김영권의 동점골이 터질 때는 반가웠고, 손흥민이 황희찬에게 결승골을 연결할 때는 결과를 아는데도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런데 경기를 끄고 나서 더 오래 남은 건 득점 장면이 아니라 김영권의 말이었다. 2026년 6월 스포츠조선 인터뷰에서 그는 손흥민을 두고 “지금 흥민이가 가장 힘들 것”이라고 했다. 함께 월드컵을 세 번 치른 선배가 꺼낸 걱정이라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전화기를 내려놓았다는 말의 무게
김영권은 손흥민에게 연락하려다가 멈췄다고 했다. 자신도 외부 연락이 부담스러웠던 때가 있어, 손흥민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얻은 뒤 축하 연락을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대를 걱정하면서도 지금 필요한 거리를 헤아린 셈이다.
그가 손흥민의 부담을 짐작한 이유도 분명했다. 김영권은 막내일 때는 형들을 따라가면 됐지만, 베테랑으로 맞는 월드컵은 달랐다고 말했다. 실패했을 때 돌아올 반응을 알고, 후배들의 마음까지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팬들은 주장의 슈팅과 도움을 기록으로 보지만, 동료들이 흔들릴 때 건네는 말이나 경기 뒤 분위기를 붙드는 일은 숫자로 남지 않는다. 김영권의 한마디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몫을 향해 있었다고 느껴진다.
2018년엔 두 사람이 나란히 골을 넣었다
김영권과 손흥민이 공유한 시간을 떠올리면 2018년 독일전이 먼저 나온다. 한국은 조별리그 앞선 두 경기에서 졌고, 독일전도 90분이 지날 때까지 0대 0이었다. 국제축구연맹의 경기 기록에 따르면 김영권이 후반 추가시간 3분에 선제골을 넣었고, 손흥민이 추가시간 6분에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최종 점수는 2대 0. 두 선수의 골이 한 경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다만 그 승리가 16강 진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대목까지 함께 기억해야 당시의 무게가 보인다. 디펜딩 챔피언을 꺾고도 한국의 대회는 끝났다. 결과표에는 승리 한 줄이 남지만, 선수에게는 앞선 패배와 탈락의 기억도 같이 남았을 것이다. 김영권이 훗날 ‘실패의 후폭풍’을 말한 데에는 이런 경험이 깔려 있다고 읽힌다. 이는 그의 심리를 단정하는 말이 아니라, 그가 직접 꺼낸 경험과 경기 결과를 함께 놓고 본 해석이다.
2022년엔 동점골과 도움으로 흐름을 바꿨다
4년 뒤 포르투갈전은 전개가 또 달랐다. 한국은 전반 5분 히카르두 오르타에게 먼저 실점했다. 김영권이 전반 27분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 추가시간 1분에는 손흥민의 패스를 받은 황희찬이 역전골을 넣었다. 대한축구협회와 국제축구연맹 기록 모두 2대 1 승리를 전한다. 이 승리로 한국은 조 2위에 올라 16강에 진출했다.
김영권의 골은 쫓기던 경기를 다시 같은 출발선에 세웠다. 그렇지만 1대 1로는 원하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손흥민이 막판 역습에서 수비를 끌고 가며 황희찬에게 공을 내준 장면이 그래서 중요했다. 골과 도움이라는 서로 다른 기록이지만, 두 장면 모두 팀에 필요했던 순간에 나왔다. 2018년에는 함께 골을 넣고도 탈락했고, 2022년에는 둘의 기여가 16강 진출로 이어졌다. 비슷한 이름이 기록지에 남아도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기억은 같을 수 없다.
주장의 기록에는 잡히지 않는 시간이 있다
2026년 김영권은 세 차례 연속 출전했던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들지 못했다. 손흥민은 네 번째 월드컵을 맞았다. 김영권이 인터뷰에서 준비 과정과 동료 사이의 믿음을 거듭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그는 카타르 대회를 돌아보며 팀 내부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대표팀 내부 사정은 정확히 모른다고 선을 그었으니, 그 말을 당시 팀의 상황에 대한 증언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다.
나는 김영권의 걱정을 손흥민의 경기력에 대한 평가로 읽지 않는다. 월드컵에서 함께 득점하고, 승리 뒤의 탈락도 겪어본 선수가 주장이 감당할 시간을 떠올린 말에 가깝다. 앞으로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경기 기록을 볼 때면 골이 터진 분뿐 아니라 그때 팀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도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김영권이 전화를 걸지 않고 남긴 한마디는 그 숫자 바깥의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