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터리에서 손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집에서 마실 커피머신을 고를 때 가장 먼저 가격을 묻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루 한 잔을 3분 안에 마셔야 하는 사람과 주말마다 원두를 갈아 라테를 만드는 사람에게 같은 머신을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13년 동안 커피를 내리며 느낀 건, 좋은 머신보다 내 생활에 맞는 머신이 더 오래 쓰인다는 점입니다.
먼저 매일 마시는 한 잔을 떠올리기
커피머신 추천 비교를 시작할 때는 에스프레소, 우유 음료, 큰 잔의 블랙커피 중 무엇을 가장 자주 마시는지부터 나눕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더한 아메리카노와 드립커피는 같은 검은 커피여도 향과 질감이 다릅니다. 아메리카노는 짧고 진하게 뽑은 커피의 묵직함이 남고, 드립은 물이 원두층을 지나며 향이 길게 펼쳐지는 편입니다.
아침에 버튼 한 번이 중요하면 캡슐이나 전자동이 편합니다. 분쇄도를 바꾸며 맛을 조절하고 싶다면 반자동이 맞고, 맑은 블랙커피를 여러 잔 내린다면 드립 머신이 더 쓸모 있습니다. 우유 음료를 거의 마시지 않는데 스팀 기능 때문에 큰 머신을 살 이유는 없습니다.
- 준비와 세척에 3분 정도만 쓸 수 있다면 캡슐 머신
- 원두를 직접 고르고 에스프레소를 조절하고 싶다면 반자동 머신
- 원두는 쓰고 싶지만 분쇄와 추출은 맡기고 싶다면 전자동 머신
- 맑은 블랙커피를 한 번에 2잔 이상 마신다면 드립 머신
간편함이 우선이라면 캡슐 머신
20만 원 안팎에서 시작한다면 네스프레소 에센자 미니 같은 오리지널 캡슐 머신이 이해하기 쉬운 선택입니다. 자리도 적게 차지하고, 출근 전 한 잔을 일정하게 만들기 좋습니다. 오리지널은 작은 에스프레소와 룽고에 초점을 둡니다. 큰 머그잔으로 마시는 일이 많다면 버츄오 팝 같은 버츄오 계열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두 계열의 캡슐은 서로 호환되지 않으니, 머신 색보다 평소 마시는 컵 크기를 먼저 봐야 합니다.
캡슐 머신의 값은 구매할 때 한 번만 치르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 캡슐을 800원으로 잡고 하루 두 잔씩 마시면 한 달 캡슐값이 약 4만 8천 원입니다. 여기에 우유를 쓰면 비용이 더 붙습니다. 반대로 일주일에 서너 잔만 마신다면 원두 한 봉지를 열어 두고 향을 잃는 것보다 캡슐이 실용적일 수 있습니다. 캡슐마다 맛의 폭은 있지만, 분쇄도와 투입량을 만지며 원하는 맛을 좁혀 가는 재미는 적습니다.
추출을 배우고 싶다면 반자동 머신
반자동에서는 드롱기 데디카와 브레빌 밤비노를 자주 비교합니다. 데디카는 폭이 약 15cm라 좁은 조리대에 놓기 편하고 스팀 노즐도 있습니다. 밤비노는 54mm 포터필터에 약 18g의 커피를 담는 구성을 제시하고, 예열이 빠른 편입니다. 둘 다 원두를 직접 갈아 담고 눌러 추출하는 방식이라 손이 갑니다. 머신만 사면 카페의 맛이 바로 나리라고 기대했다면 여기서 차이를 크게 느낄 겁니다.
처음에는 원두 18g을 넣고 음료 36g을 약 25~35초에 받는 식으로 출발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 수치는 정답이 아니라 조절을 위한 기준입니다. 너무 시고 묽다면 분쇄도를 조금 곱게, 쓰고 텁텁하다면 조금 굵게 바꿔 봅니다. 원두의 로스팅 정도에 따라서도 편한 범위가 달라집니다. 밝게 볶은 원두는 추출이 부족하면 날카로운 산미가 두드러지고, 진하게 볶은 원두는 과하게 뽑으면 탄맛과 쓴맛이 쉽게 올라옵니다.
반자동 예산에는 머신과 함께 에스프레소용 그라인더를 넣어야 합니다. 좋은 원두를 써도 분쇄 입자가 들쭉날쭉하면 물이 일부만 빠르게 지나가 맛이 흔들립니다. 머신 본체 가격만 비교한 뒤 남은 예산으로 아무 그라인더나 고르는 방식은 아쉽습니다. 매일 두세 잔씩 뽑을 계획이라면 그라인더와 저울에 쓸 돈을 먼저 남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전자동과 드립 머신은 쓰는 장면이 다르다
전자동은 원두를 넣으면 분쇄와 추출을 한 번에 처리합니다. 가족마다 여러 잔을 마시거나, 캡슐 대신 원두를 쓰고 싶은 집에서 편합니다. 다만 추출구만 닦으면 끝나는 기계는 아닙니다. 커피 찌꺼기 통과 물받이를 자주 비워야 하고, 우유 기능이 있다면 사용 후 세척할 부분이 더 늘어납니다. 가격이 높은 전자동일수록 맛이 저절로 좋아진다기보다 음료 메뉴와 편의 기능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매 전에는 하루에 몇 잔을 만드는지와 세척할 시간을 함께 계산하는 게 좋습니다.
블랙커피가 주력이라면 자동 드립 머신도 비교 대상입니다. 스페셜티커피협회는 인증 드립 머신을 평가할 때 커피 가루에 닿는 물의 온도와 추출의 일관성을 살핍니다. 물이 닿는 온도는 추출 중 대체로 92~96℃ 범위가 기준입니다. 드립 머신을 고를 때는 화려한 메뉴보다 물을 고르게 뿌리는지, 보온판에 오래 올려둔 커피가 졸아들지 않도록 보온병형 서버를 쓸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한 번에 두세 잔을 내려 천천히 마신다면 에스프레소 머신보다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가격표보다 한 달 사용 비용을 보기
예산을 나눌 때 저는 20만 원 안팎은 캡슐, 수십만 원대는 반자동 머신과 그라인더 조합, 더 큰 예산은 편의 기능을 갖춘 전자동까지 생각합니다. 실제 판매가는 할인과 구성품에 따라 달라지니 이 구간은 구매 계획을 세우는 기준 정도로 보면 됩니다. 반자동을 고른다면 저울, 청소 도구, 원두값도 더해야 합니다. 전자동은 세척제와 필터 같은 소모품 비용을 확인해야 하고요.
원두를 쓴다면 로스팅 날짜도 봅니다. 아주 오래된 원두는 향이 약하고, 갓 볶아 가스가 많은 원두는 에스프레소 추출이 불안정할 수 있습니다. 소량씩 사서 개봉 뒤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록하면 머신을 바꾸지 않고도 한 잔이 달라집니다. 집에서 원하는 맛이 안 날 때 저는 먼저 원두의 상태, 물 온도, 분쇄도를 확인합니다. 그 세 가지가 맞아 들어간 뒤에야 더 비싼 머신이 필요한지 선명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