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소를 100곳 넘게 묵으면서 배운 게 있다. 여행 경비는 숙소 사진보다 결제 화면을 끝까지 봐야 제대로 보인다. 파리도 마찬가지다. 객실 요금이 괜찮아 보여도 위치가 멀면 교통비와 이동 시간이 붙고, 현지에서 내는 세금까지 더하면 처음 생각한 금액과 달라진다. 파리 여행 경비를 잡을 때 나는 항공권 다음으로 숙소의 실제 지출부터 계산한다.
4박 5일이면 1인당 얼마를 잡을까
인천 출발, 성인 2명이 객실 하나를 쓰는 4박 5일을 가정해보자. 환율은 계산하기 쉽게 1유로에 1,600원으로 놓았다. 실제 결제액은 출발일, 예약 시점, 환율에 따라 달라지니 아래 금액은 예약 견적이 아니라 예산을 짜기 위한 예시다.
- 왕복 항공권: 1인 100만~160만 원 가정
- 숙소: 객실 1박 140유로 × 4박 ÷ 2명 = 1인 280유로, 약 45만 원
- 식비: 1일 45유로 × 5일 = 225유로, 약 36만 원
- 교통비: 공항 왕복과 시내 이동을 합쳐 1인 약 55유로, 약 9만 원
- 입장료: 미술관과 전망대 등에 1인 100유로, 약 16만 원
- 기타 비용: 간식, 생수, 짐 보관 등에 80유로, 약 13만 원
이렇게 더하면 1인당 약 219만~279만 원이다. 여기에 숙박세와 예상 밖의 지출을 위한 여유금 10만~20만 원을 따로 두면 마음이 편하다. 다만 항공권 100만 원이나 1박 140유로는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고정 가격이 아니다. 출발 날짜를 먼저 정하고 항공권과 숙소를 같은 날 검색해 합산하는 게 정확하다.
파리 숙소는 싼 객실보다 이동 동선을 봐야 한다
숙소 리뷰를 볼 때 나는 사진 속 침대보다 지하철역까지 걷는 길을 먼저 확인한다. 지도에는 도보 8분이라고 떠도 늦은 밤 짐을 끌고 걷거나 환승을 두 번 해야 한다면 체감은 다르다. 관광지와 멀리 떨어진 객실이 1박에 30유로 저렴해도, 4박 동안 두 사람이 매일 이동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무조건 이득이라고 보기 어렵다.
둘이 쓰는 객실은 1박 차이가 사람당 얼마인지 계산하면 판단이 쉬워진다. 예를 들어 중심부 숙소가 외곽보다 1박에 40유로 비싸다면 4박 총차액은 160유로, 1인당 80유로다. 그 돈으로 숙소에서의 편한 밤과 짧은 이동을 살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면 된다. 반대로 낮에는 계속 밖에 있고 숙소에서는 잠만 잘 사람이라면, 환승이 편한 외곽 숙소가 잘 맞을 수도 있다.
사진만 믿고 예약하는 건 권하지 않는다. 오래된 파리 건물은 방이 생각보다 작거나 엘리베이터가 없을 수 있다. 객실 면적, 욕실 사진, 최근 후기에 적힌 소음과 냉난방 상태를 같이 본다. 특히 큰 캐리어를 가져간다면 계단과 엘리베이터 이야기는 중요하다. 예약 마지막 화면에서 숙박세 포함 여부와 무료 취소 기한도 확인해야 한다. 숙박세는 숙소 유형과 등급에 따라 달라져, 객실 가격만으로 총액을 판단하기 어렵다.
식비와 교통비는 하루 단위로 쪼개야 보인다
식비를 하루 45유로로 잡았다면 매 끼니 식당에 앉아 먹는 일정은 빠듯하다. 아침은 빵이나 마트 식품, 점심은 간단한 식사, 저녁 한 끼는 식당에 쓰는 식의 예산이다. 카페를 하루 두 번 들르고 와인이나 디저트를 자주 더하면 45유로는 금방 넘는다. 음식에 돈 쓰는 여행이 좋다면 처음부터 하루 60~70유로로 올려 잡는 편이 덜 답답하다.
교통은 시내 이동과 공항 이동을 따로 계산한다. 2026년 일드프랑스 모빌리테 기준 메트로·기차·RER 일반 단일권은 2.55유로, 샤를드골 또는 오를리 공항을 오가는 전용 승차권은 편도 14유로다. 공항 왕복만 28유로이니 시내 교통비에 슬쩍 묻어 두면 예산이 어긋난다. 매일 몇 번 탈지 세어 보고 단일권과 일일권 중 맞는 쪽을 고르면 된다. 걷는 일정이 많은 날까지 일일권을 사 둘 필요는 없다.
입장료와 작은 지출도 따로 남겨두자
유명 관광지를 여러 곳 들어갈 계획이라면 입장료 100유로는 넉넉한 돈이 아니다. 2026년 루브르 박물관 안내에는 유럽경제지역 밖의 성인 방문객 입장료가 32유로로 표시돼 있다. 에펠탑도 층수와 계단·승강기 선택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사진을 찍고 외관만 볼 곳과 실제로 입장할 곳을 나누면 예산이 훨씬 또렷해진다.
나는 여행 예산에서 작은 지출을 따로 적는다. 체크아웃 뒤 짐 보관,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첫 이동, 비 오는 날 갑자기 타는 택시, 피곤해서 사 먹는 저녁 한 끼가 그런 돈이다. 각각은 작아 보여도 며칠 쌓이면 미술관 입장료 몇 장 값이 된다. 쇼핑을 할 계획이라면 기타 비용 80유로에 끼워 넣지 말고 별도 예산으로 빼는 게 좋다.
파리에서는 가장 싼 숙소를 찾는 것보다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낼지 먼저 그리는 편이 경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밤늦게 돌아올 일정이라면 위치에 조금 더 쓰고, 숙소에서 쉬는 시간이 길다면 방 상태에 더 쓰고 싶다. 같은 250만 원을 써도 어디에 돈을 남겨뒀느냐에 따라 여행의 피로감은 꽤 다르다.
